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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Mar 29. 2022

겹겹의  세월은 이길 수 없었다.

(전화를 받고 나서, 라싸에서 칭짱열차를 타고)

오고 가는 전화도 드문 요즈음이다. 별로 전할 말도 없고, 전달받을 전화도 없는 사람이다. 전해 줄 내용은 대부분 카톡이나 문자로 오가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난 오후, 오랜만에 거실에 앉아 책을 읽었다. 조금 서늘해도 봄기운이 서서히 다가오는 날이다. 창가엔 따스한 바람이 불지만 뿌연 먼지가 산을 덮고 있다. 언제쯤 이 먼지가 물러날까? 인간의 오만과 아집은 먼지투성이 세상을 말았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시 쉬고 있을 때, 갑자기 전화가 울린다. 아내가 전화를 한 것이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빨리 요양원으로 오란다. 장모님이 위독하시단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서둘러 달려간 요양원엔 장모님이 계신다. 3년 전에 요양원으로 가신 장모님, 올해가 아흔이 되셨다. 자식들이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요양원에 계심에 늘 죄송한 생각이었다. 코로나가 오기 전엔 자주 찾아뵈었었다. 혼자 계신 것이 안쓰러워서다. 자주 찾아가는 사위, 아들이 왔다는 말을 듣기도 했었다. 느닷없이 찾아온 코로나, 모두의 발길을 막고 말았다. 두터운 비닐로 막고 면회만 가능하더니 어느 순간에 면회가 중단되었다. 전화로만 의사 전달이 될 수 있는 현실, 답답한 하루하루가 이어져 갔었다. 가끔 호흡이 곤란해 병원엘 모시고 가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었다. 그런 세월이 흐른 지 3년이 되었다.


면회를 하기 전에 담담 의사를 만났다.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조금은 각오하라는 말을 전한다. 갖가지 처방을 하고 있지만 언제 변할지 모르는 어르신이란다. 연세가 90이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호전될 수도 있으나 갑자기 악화될 수도 있어 면회를 시켜 준단다. 의사의 또 다른 말, 장모님이 다른 병원엔 갈 생각이 없다 하셨단다. 다른 병원에 가봐야 치료가 될 리도 없으니 생각도 하지 말라 하셨단다. 오죽했으면 그런 결정을 하셨을까? 완전히 의사의 말만 믿어야 하는 상황에 고개를 끄떡이는 수밖에 없다. 마지막이 될 수 도 있는 면회, 가슴이 답답하다. 면회를 하려 하자 절차가 까다롭다.


신속항원검사를 한 후, 겹겹의 코로나 방호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방호복을 입고 근무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하루 종일 이 복장으로 근무하니 얼마나 어려울까? 방호복을 입고 면회실로 향했다. 모든 절차를 준수하여 올라간 병실, 장모님은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계셨다. 간신히 앉아 반가워하신다. 얼굴은 예전만 못하지만 아직은 괜찮은 듯하다. 곳곳에 누워 있는 어르신들, 어느 곳에도 눈 둘 곳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오랜만에 만난 장모님이지만 할 말이 없다. 무슨 말로 위로를 드려야 할까? 알고 있는 단어를 총동원해도 찾을 수가 없다. 이렇게도 말을 할 줄 몰랐다던가? 자랑스럽다던 우리나라 말, 한참을 궁리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아파했던 딸아이가 완쾌된 후였다. 얼마 전 딸아이가 A형 간염으로 고생을 했다. 아파서 찾아 올 아비가 돼줌이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돌봐줄 아이가 있다는 것만도 행복했었다. 간신히 서울 유명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 후 몸을 추스르고 내려갔다. 온갖 정신이 나갔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여기에 장모님이 위독하시다는 전갈이 온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장모님, 다른 병원엔 갈 생각이 없단다. 의사가 전한 말을 확인하신다. 다른 병원에 가봐야 치료가 될 수도 없고 고생만 한단다. 엊그젠 돌아가신 장인어른도 꿈에 봤단다. 친정아버지도 왔다 가셨단다. 정신이 혼미하시니 별 꿈을 다 꾸신 모양이다. 몸이 불편하시고 정신까지 혼미해 삶을 포기하셨나 보다. 우두커니 서서 듣는 수밖에 없는 산 사람의 모습이다. 내가 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아내와 함께 면회를 하고 나오는 길, 인간의 무력함에 다리가 풀린다. 간신히 면회를 했지만 도와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딸아이의 아픔에도 아비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 보이는 장모님,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아무 말도 없이 도착한 집, 아내와 할 말이 없다. 코로나가 오기 전, 가까스로 시골 주택을 구경시켜드린 것이 작은 위안이다. 그때 하지 않았더라면 두고두고 후회를 했으리라. 최소한의 위로를 하며 들어선 집, 모든 것이 정지된 삶인 듯하다. 며칠 전에 퇴원한 딸아이가 서서히 회복되는 듯해 조금은 편안한 하루이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날이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삶, 날로 새로워지는 과학이지만 어쩔 수 없나 보다. 이제 칠십 년 가까이 살아온 삶이다. 세월의 무게를 실감할 수밖에 없다. 가까이 있던 친구들도 더러는 삶을 등진 지 오래되었다. 남의 일이라 치부하던 일들이 현실이 되었다. 언제나 준비해 가면서 살아야 하는 삶이다. 벌써부터 알아 채린 세월의 무게, 가능하면 건강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삶이다. 웬만하면 운동을 밥을 먹듯이 하고, 무슨 일이든지 하고 있다. 산을 자주 오르내리고, 매주 자전거를 탄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땀을 흘리며 삶을 위로한다. 스스로 약해짐을 허락하고 싶지 않아서다. 어떻게 하면 끝까지 잘 살고, 마무리를 잘할 수 있을까? 조용히 잠을 자다 가고 싶다는 장모님의 말이 떠오른다. 남일 같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잔인한 3월의 하루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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