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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Apr 25. 2022

나가기 전 우산을 꼭 챙겨가세요!!!!

(비가 오고 있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피트니스 클럽을 간다. 십수 년간 해 온 운동, 거의 중독 수준에 달해 있다. 준비운동과 체력 운동이 끝나면 5km 정도 달리기를 한다. 하프 마라톤을 했었지만 이젠, 5km라도 뛰면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서다. 가끔은 숨이 가쁘지만 웬만하면 두어 시간씩 하는 일상 운동이다. 밥 먹기와 같이 꼭 해야 하는 일상의 일이다. 운동 후 샤워를 하고 체육관 문을 나선다. 온몸이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오늘따라 출구에 우산 꽂이 통이 크게 보인다. 우산을 훔쳐가지 말라는 표시와 함께, 반드시 챙겨가라는 문구도 있다. 우산이 흔해 훔쳐 갈리는 없을 터이니 놓고 가지 말라는 문구에 방점이 있으리라. 몇 개의 우산이 꽂혀 있지만, 체육관 곳곳엔 운동화도 수북이 쌓여 있다. 누가 이렇게 많은 운동화를 놔두었을까?


운동하던 사람이 체육관을 그만두어도 가져가지 않은 것이다. 피트니스 사장님, 전화를 해도 그리고 사정을 해도 그냥 둔단다. 할 수 없이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필요한 곳에 모아 전달한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수채화를 배우러 화실을 오간다. 수채화 선생님의 하소연이다. 화실에 나오지 않는 사람 가방이 가득 쌓여 있지만, 가져가질 않아 고민이란다. 버릴 수도 없는 이유는 몇 년이 지난 후 생각이 나면 전화를 한단다. 기십만원은 주고 산 물건들이 곳곳에 쌓여 있는 것이다. 요긴하게 쓰이는 우산이 그렇고, 운동화가 그러하며 비싼 화구가 그렇다. 곳곳에 내박쳐진 물건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물건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너무 흔한 것인가?


컴컴한 새벽, 비가 오는 소리가 들린다. 초가지붕을 타고 내린 빗줄기가 마당으로 떨어진다. 마당에 떨어지는 물소리가 요란스럽다. 세차게 내리는 비는 뒤뜰 감나무에도 여지없다. 감나무 잎이 비를 맞으며 나는 소리, 어린것은 새벽부터 걱정이 된다. 어른들이 '오리'라고 일컫는 먼 학교길을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집안에 변변한 우산이 있을 리 없고, 여느 집에도 있을 법한 지우산 조차 없음을 알고 있다. 세찬 여름 비를 맞으며 어떻게 학교를 가야 할까? 기껏해야 농사용 비닐을 몸에 두르고 가는 수밖에 없다. 비를 피하며 등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대략 키 정도의 비닐을 사람을 두를 만큼 잘라냈다.


머리를 둘러 얼굴만 보이도록 턱밑으로 묶는다. 손을 넣고 허리춤을 다시 한번 묶어 주면, 세찬 여름 비를 뚫고 고난의 길을 가야 한다. 가끔은 야속하기도 한 집안 살림이다. 버젓이 우산을 들고 가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나와 같은 행색이다. 누구나 그랬으니 불평 한마디 있을 리 없다. 어럽게 도착한 학교, 옷은 흥건하게 젖어 있다. 온종일 온몸으로 옷을 말려 집으로 돌아오는 꼴이다. 공부가 될 리 없고, 비가 세차게 오면 학교도 일찍 파하고 만다. 집에 가는 길에 있는 커다란 개울물이 불기 전에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이 개울물을 건너 주는 수고를 해야 했다. 일명 삽다리라고 하는 동네를 흐르는 개울이다. 


세차게 비가 오는 날은 여지없이 지각을 한다. 빗속을 뚫고 학교 가기 싫은 철부지들은 또 묘수를 찾아낸다. 동네 앞을 오가는 버스기사의 선심을 기대하는 것이다. 가는 길에 공짜로 태워주는 경우가 있기에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운전기사의 선심으로 학교를 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세찬 비를 뚫고 늦은 학교길을 서둘러야 한다. 빗 속을 뛰어가는 수밖에 없다. 지각으로 책상 위에 올라 종아리를 걷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닐로 책가방만 싸서 둘러메고 오리길을 뛰어가야 한다. 뛰어가도 늦을라 치면 또 고민이 생긴다. 학교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생각해야 한다. 


오늘은 학교를 그만 두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이르다. 학교에 가지 않은 것이 탄로날 경우엔 종아리가 남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 가는 길엔 늘, 피난처가 있었다. 과수원이 있고, 참외와 수박을 지키기 위해 세워 놓은 원두막이다. 이른 아침이니 주인은 밤새 밭을 지키고 집으로 향했다. 주인처럼 원두막에 올라 시간을 보내다 보면 주인이 나타난다. 주인은 바로 알아차린다. 비가 오는 먼 거리를 가기 싫어 원두막에 있음을 알고 있다. 인심 좋은 이웃동네 어르신은 가끔 인심을 쓰기도 하지만, 매번 그냥 줄 수는 없다. 가끔은 못 생긴 참외를 주기도 하지만 은밀히 협상을 한다. 배가 고픈데 무엇이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물음이다. 어린 철부지들은 방법을 알지만 머뭇거린다. 


참외를 사 먹어야 하지만, 어린것들의 주머니에 돈이 있을 리 없다. 밭주인이 거래를 제안한다. 집에 있는 쌀을 가져올 수 있느냐는 제안이다. 머뭇거리던 철부지들은 얼른 수긍하고 말았다. 허기진 배를 참외로 채우고 이젠, 집에서 쌀 도둑질을 해야 한다. 고민이 생긴다. 쌀 단지가 크기도 하지만 귀한 쌀의 양을 어머니가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어 퍼내 온 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해보는 도둑질(?)이다. 쌀 단지에 얼마의 양이 있는지 늘 꿰고 있는 어머니다. 어머니가 그것을 모르실리 없다. 하지만 모르는 척하시는 어머니, 철부지의 짓임을 다 알고 있었으리라. 어려운 시절의 기억이다. 초가지붕이 처마를 맞대고 살던 시절이었다. 


가난에 찌들어 학교에 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었다. 어려운 살림에 모든 것을 아끼며 살아옴이 몸에 익었다. 가능하면 아끼고 모으며 살아온 삶이었다. 돈의 소중함을 손수 깨달았고 돈의 값어치를 실감하며 자랐다. 오랜 세월이 흘러 교직에 재직하게 되었다. 어제 수업시간에도 자던 아이는 오늘도 꾸준히 자고 있다. 아주 곤하게 자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 망설인다. 몇 번을 깨워 보지만 쓸데없는 짓임을 알고 있다. 할 수 없이 학부형과 전화 상담을 한다. 고단해서 자고 있는 아이, 그냥 두면 안 되겠느냐 한다. 매일 잠만 잔다고 하자 그래도 그냥 두면 좋겠단다. 어려운 환경에서 처절하게 살아온 사람이 이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제는 가르침이 필요 없다는 소심한 생각을 하게 한 사건 중 하나였다. 


모든 것이 흔하고 쉽게 만날 수 있는 좋은 시절이다. 교과서가 교실에 흔히 나뒹굴고 있다. 달력을 찢어 표지를 싸서 쓰던 시절은 지나갔다. 비닐로 우산을 대신하고, 떨어진 운동화를 신던 시절은 멀리 가버렸다. 어려운 시절을 고집하며 아이들을 지도할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이유와 과정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어려운 여건에 등교한 학교,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아비는 고단한 농사를 짓고, 생계를 이어감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어렵게 마련한 우산과 운동화를 귀히 여겨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으론 살아남을 수 없는 시절이 되었다. 늘 뒤 처져서 살아간다는 핀잔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늙어 가는 청춘, 한마디는 해야 되지 않을까도 생각해 본다. 


옛날이야기를 또 한다고 핀잔이다. 내가 쓰던 우선을 버려야 하고, 멀쩡한 운동화를 두고 또 사야 하는 것일까? 운동을 하러 온 체육관에서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것이 옳은 것일까? 모든 것이 흔해 보이는 시절이다. 교과서도 무상지원이요, 점심도 무상으로 먹여준다. 하지만 무상이 아닌 아비의 주머니 돈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낸 세금임을 알아야 한다. 작은 것에서부터 아끼고 절약하는 검소한 생활이 나의 가정을, 나의 사회를 나아가 국가를 살기 좋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다. 국가는 소중하게 써야 하고, 국민들은 값을 해야 한다. 누구의 돈인지 모르고 있어도, 검소하게 살아감이 비판을 받아야만 하는지 묻고 싶다. 꼰대라는 말을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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