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의 화단엔 봄꽃이 한아름이다.

(손녀의 화단, 튤립이 피고)

by 바람마냥

골짜기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지도 몇 년이 되었다. 누구도 아는 이 없는 곳, 어떻게 살아갈까 막막하기도 했던 곳이다. 다행히 다정스러운 이웃을 만났고, 풍요한 자연을 만났다. 자연스레 정이 들고 어우러지면서 살아가는 골짜기의 삶이다. 지금 해보지 않으면 후회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언제 또 이런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겠는가? 그럴 바엔 한번 살아보고 후회를 해도 될 듯했다. 후회할 것을 각오하고 골짜기에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잘했다는 생각이다. 한 번 살아가는 삶 중에 내가 좋아하는 곳에 자리를 잡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새 삶을 꾸렸으니 내 마음대로 해 보고 싶었다.


골짜기에 자리를 잡으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화단을 만드는 일이었다. 오래전 어머니의 화단이 그리워서다. 봉숭아가 있고 분꽃이 피며 맨드라미가 있었다. 잔잔하면서도 푸르른 잔디밭을 만들고, 곳곳에 꽃이 피는 화단을 갖고 싶었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나무를 심고, 꽃을 심고 싶었다. 텃밭에 채소를 가꾸고 꽃을 보면서 살아가는 삶이 그리웠다. 또 한 가지는 손녀에게 작은 선물을 해주는 것이었다. 손녀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 손녀의 화단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서둘러 만든 화단에 눈이 내려 막막하기도 했었지만, 풀을 뽑아 주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아침, 저녁으로 아내가 돌보며 만들어 가는 손녀의 화단이다.

IMG_1444[1].JPG 수선화도 피었다.

가끔 찾아오는 손녀는 늘 화단을 좋아했다. 꽃을 사다 심기도 하고, 물을 주면서 한 나절을 놀기도 했다. 엄마와 어울려 꽃을 심고, 꽃이 피는 것을 바라보곤 했다. 여기에 아내의 발걸음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봄철이 오면 늘 하는 일, 아내가 서둘러 소녀의 화단으로 위해 나서곤 했다. 올해는 보랏빛 제비꽃을 가득 심어 놓았다. 씨가 번지면 잔디밭으로 옮겨갈까 걱정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보랏빛 제비꽃이 핀 화단을 선물하고 싶었나 보다. 철 따라 찾아가는 여행지에서 아내의 눈빛은 언제나 빛났다. 꽃이 핀 것을 보면 손녀의 화단에 심어주고 싶은 욕심에서다. 언젠가 선운사를 찾았던 봄날이었다.


선운사 입구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고 나오는 중, 화단에 노란 수선화가 가득했다. 한참을 망설이다 주인에게 사정을 해 두어 뿌리 얻어왔던 수선화, 화단에서 노랗게 꽃을 피워 주고 있다. 먼 곳에서 이주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꽃으로 가득한 손녀의 화단, 봄부터 꽃이 피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고개를 든 꽃은 돌단풍이다. 하얀 꽃대를 높이 들고 하햫게 핀 돌단풍이 작은 바람에 너울거린다. 널따란 잎으로 자리 잡고 앉은 하얀 돌단풍이 화단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여기에 주황색 튤립이 밝게 꽃을 피웠다. 지난해에 손녀가 심어 놓은 것이 싹이 돋아 꽃을 피운 것이다.

IMG_1437[1].JPG 금낭화가 제철이다.

손녀가 심어 놓은 주황색 튤립이 으뜸이고, 거기에 야생화들도 한몫을 한다. 주황색에 노랑이 적당히 곁들여진 튤립, 지난해 꽃을 보고 나서 무심했었다. 무심함에 골이 난 듯 겨울이 되어 자취를 감추었던 튤립이다. 추운 겨울을 무사히 넘기고 아름다운 꽃을 보여줌이 고마울 뿐이다. 어디서 찾아왔는지 달맞이꽃이 자리를 했다. 번식력이 대단한 달맞이꽃이다. 노랗게 필 꺽다리 달맞이꽃이 기대되지만, 작은 꽃들을 해칠까 언덕으로 옮겨 놓고 말았다. 몇 년 전부터 자리한 국화는 벌써부터 싹을 틔웠다. 파란 싹이 벌써 돋아 나와 화단을 가득 메우고 있다. 가을이 되면 노란 꽃으로 뜰을 환하게 비추어 줄 국화다. 아름다운 금낭화가 꽃을 피웠다.


작은 싹으로 봄 인사를 하던 금낭화, 두어 뿌리 심어 놓은 것이다. 잔디밭 가장자리에서 관심을 두지 않아도 피어났던 금낭화다. 어떻게 자리를 잡았는지 돌 틈에 자리를 잡았다. 어떻게 거기에서 자랄 수 있을까? 안타까워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며 돌봐왔다. 바위틈에서 겨울을 지낸 금낭화 꽃이 아름다워 화단으로 옮겨 놓았더니 부지런이 꽃을 피워 놓았다. 분홍에 하양이 적당히 섞인 금낭화가 화단을 밝게 빛내 주고 있다. 꽃만 보면 욕심이 많은 아내, 많은 꽃도 부족한지 어느 틈에 또 꽃을 심어 놓은 분홍빛 앵초가 꽃을 피웠다. 작지만 분홍빛이 가득한 앵초, 이웃집에서 얻어 심은 꽃이란다. 다양한 꽃으로 가득한 손녀의 화단이 가득해졌다.

IMG_1500[1].JPG 자잘한 앵초도 꽃을 피워 으스댄다.

시골살이의 재미는 자연과의 어울림이다. 꽃을 심고 나무를 심으며 자라나는 모습에 숨이 멎는다. 두터운 대지를 뚫고 나오는 어린싹, 대견하기도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사이에 어느덧 꽃을 피워내고 만다. 추운 바람도 이겨내고, 사나운 골바람에도 끄떡없다. 올 테면 와보라는 느긋함으로 버티어 내는 작은 꽃들이다. 거기엔, 손녀의 작은 화단이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면, 손녀는 외갓집을 어떻게 기억할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가끔은 궁금해지는 생각들이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심심할 때 색소폰과 하모니카 소리가 들리는 외갓집이면 어떨까? 무덤덤한 외갓집이 아닌, 꽃이 피고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한 그런 집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았다고 기억해주면 어떨까? 그냥, 시골에 있는 외갓집만이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도 가끔 해보는 시골살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