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벚꽃의 맑은 하양을 아십니까?

(산골에 벚꽃이 피다)

by 바람마냥

새벽 창문을 열어주는 아침, 맑은 하양이 가득하다. 어제까지도 망설이고 있던 산벚꽃이 하얗게 꽃을 피운 것이다. 대부분의 벚꽃이 봄비에 젖어 꽃비가 되었지만, 우리 동네 벚꽃은 이제야 제 세상을 만났다. 하양이 이렇게도 맑을 수가 있을까? 하양은 그냥 하양인지 알았다. 수채화를 만나고부터 달라진 색의 진심, 하양도 나름의 빛과 색이 있음을 알았다. 창문 너머에 있는 하얀색은 맑은 하양이었다. 무엇으로도 그려 낼 수 없는 하양을 그냥 눈으로 보는 수밖에 없다. 이층 서재에서 일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창문 너머에도 맑은 하양이 와 있다. 시골집 뒤뜰에 있는 벚나무도 꽃을 가득히 피운 것이다. 여기에도 하양이 내려왔구나!


겨울을 버틴 새봄이 찾아왔다. 봄이 왔음을 알리는 첫 손님이 벚꽃이다. 벚나무 계열 나무에서 피는 벚꽃, 대표적인 봄꽃으로 남부 지역은 3월 말부터 피기 시작하여 중부 지역은 4월 초중순에 절정을 이룬다. 봄이 오면 진해 군항제를 시작으로 전국이 벚꽃으로 흰 물결을 이룬다. 산동마을의 산수유꽃을 시작으로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봄의 전령이다. 곳곳에 벚꽃 소식이 전해지며 봄꽃축제로 전국을 들썩이게 한다. 남쪽에서 시작한 꽃이 서서히 북쪽으로 기수를 돌리면 전국은 꽃의 향연으로 가득해진다. 바람 따라 내리는 꽃비를 맞는 산길, 고즈넉한 산사에서 만나는 꽃의 행렬은 잊지 못할 봄날의 추억이다. 벚꽃의 향연이 잦아들면 서늘한 산골의 산벚꽃이 서서히 피기 시작한다. 사는 골짜기가 높기 때문에 벚꽃으로 늘 호강하며 살아간다.

IMG_1401[1].JPG

벚나무의 종류도 다양해 왕벚나무, 산벚나무외에도 올벚나무, 개벚나무 등 자생종과 개량종을 합하면 600 여종이나 된다고 한다. 요즈음엔 꽃을 감상하기 위한 원예품종이 많은데, 꽃잎이 적개는 두세 개부터 여러 장으로 이루어진 벚꽃도 있다. 여러 겹으로 핀 벚꽃은 다복함을 안겨주고, 색깔도 하양을 벗어나 분홍색과 붉음의 벚꽃 등 색깔도 다양해졌다. 대지를 향해 축 늘어져 작은 바람에도 일렁이는 수양벚꽃도 봄날의 품위를 지켜 주는 아름다운 꽃이다. 겹꽃으로 피는 겹벚꽃나무는 한없이 아름답지만, 씨방과 꽃잎이 퇴화되어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하니 슬픈 사연을 간직한 꽃이기도 하다. 저마다의 색깔과 모습으로 한껏 아름다움을 주는 벚꽃도 순식간에 지고 만다. 모두가 때가 있고, 시기가 있음을 알려주기도 하는 벚꽃이 뒷산에도 피기 시작했다.


푸르름 속에 하얗게 핀 벚나무 한 그루, 언제나 봄이면 만날 수 있었다. 진한 푸르름 속에서도 뛰어난 하양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어린 철부지는 때를 기다린다. 꽃이 피고 한동안 기다려야 열매가 맺기 때문이다. 얕은 숲을 뚫고 올라선 산 언덕, 그곳엔 굵은 벚나무가 우뚝 자리 잡고 있었다. 하양 꽃이 푸름의 열매를 맺더니 어느덧 검은빛으로 변했다. 약간은 달큼함에 떫은맛을 섞여 있는 검은색 버찌 열매다. 봄마다 잊을 수가 없는 버찌였다. 굵은 벚나무를 타고 올라 작은 가지를 꺾었다. 가지마다 올망졸망 열려있는 버찌를 맛보기 위해서다. 한 움큼 따서 입안에 넣으면 약간은 떨떠름하지만 달큼함이 조금 섞여 있는 맛이다. 혀의 고단함을 빌려 씨를 뱉어내고 넘기는 맛이 통쾌하다. 봄이면 만날 수 있는 산골짜기의 맛이었다.

IMG_1442[1].JPG 밤이 부시도록 하얀 뜰 앞 벚꽃이 한창이다.

산벚나무와 만남을 뒤로하고 내려오면 어머니는 금방 알아보신다. 온 입안이 검게 물들었고, 손과 옷에도 버찌의 흔적이 흥건했기 때문이다. 봄마다 만나는 골짜기 봄의 축제를 포기할 수 없었다. 봄이면 뒷동산에서 만날 수 있는 즐거운 놀이이기 때문이다. 진달래가 지천이었던 뒷동산, 그곳엔 삶의 추억과 즐거움이 있던 곳이었다. 산벚나무와 긴긴 만남의 세월이 흘러갔다. 혹시 남아 있을까 걱정했던 산벚나무, 그곳엔 흔적이 없었고 많은 벚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가 없었는지 오래 전의 친구는 자리에 없고, 수많은 벚나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세월 속에 그 벚나무를 오늘 아침에 만났다. 문을 연 창문 너머에서도 만났고, 서재에서 내려오는 창문에서 또 만난 것이다.


하양이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도 있었다. 하양이 그냥 하양이 아닌 청량한 하양 빛이었다. 하양에 맑은 하양이 더해져 마음까지 하얘지는 그런 하양이었다. 맑은 햇살이 찾아온 아침, 촉촉한 아침 이슬이 하양 꽃에 멎었다. 투명하고도 맑은 물빛이 하얀 햇살을 받았다. 하양에 맑은 이슬이 내려온 사이 햇살이 찾아온 것이다. 반짝이는 햇살이 맑은 이슬을 뚫고 맑은 하양을 만났다. 하양을 지난 작은 빛은 대지를 만났고, 나머지는 튀어 허공으로 올랐다. 대지에 닿은 햇살은 맑은 하양을 알지 못했다. 맑고도 투명한 햇살이 맑은 하양을 보지 못한 것이다. 옥빛이 가미된 하양에 햇살이 넋을 놓고 말았다. 하양이 주는 신비스러움이다.

IMG_1422.JPG 뒤뜰에서 만난 벚꽃이 만개했다.

놀란 하양이 바람에 일렁인다. 얼른 알아차린 맑은 햇살이 머뭇거린다. 맑은 하양 빛에 깜짝 놀란 것이다. 하양에 앉은 이슬에 햇살이 튀어 올랐다. 눈이 부신 햇살이 맑은 하늘을 헤매고 있다. 하양이 주는 아침의 상쾌함을 햇살이 더해 준 것이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맑은 햇살이 맑고도 투명한 하양을 만난 것이다. 다시 만난 벚꽃은 그냥 하양이 아니었다. 하얗다는 표현으론 역시 부족했다. 하얗다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었고, 진정한 맑음에 투명이 더해진 하양이었다. 옥빛이 가미된 벚꽃의 하양을 아직도 그냥 두질 않는다. 어느새 햇살이 찾아왔고, 이슬이 찾아왔으며 하얀 달빛이 찾아왔다. 달빛이 내린 하양은 어떻게 변했을까?


맑은 달빛에 옥빛이 곁들인 하양이 만났다. 하양을 뚫고 지날 수도 없고, 튀어 오를 수도 없다. 맑은 하양에 투명한 달빛이 만난 것이다. 하양과 하양의 만남에 놀람이 없었다. 하양의 만남은 수더분했고 적적했으며, 고요함 속의 맑음이었다. 옥빛의 하양이 품어내는 고고함에, 맑은 달빛이 주는 하양의 절묘함이었다. 살며시 찾아온 바람 속에 하양의 만남은 심심했고 고요했다. 요란스러움이 없는 하양이었고, 고즈넉한 하양의 만남이었다. 심술이 난 바람이 더 다가오면 하양의 만남을 흔들렸다. 하양의 만남이 어긋났고 가끔은 어둠 속에 떨어지는 달빛의 하양이었다. 대지를 만난 하양이 더듬거리면 작은 바람이 찾아와 하양의 만남을 찾아준다. 달빛 속에 만나는 순수한 하양과 옥빛 하양의 밤이 깊어가는 골짜기 풍경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