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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Apr 17. 2022

봄의 4월, 골짜기 아침은 찬란하다.

(4월의 아침, 손녀의 화단)

창문 너머 새벽바람이 상쾌한 아침, 깊은 골짜기엔 서늘한 바람이 여전하다. 여기가 높은 골짜기임을 알려주려나 보다. 어느새 산새들이 처마 밑을 어정거린다. 올해의 처소를 마련할 모양이다. 벌써부터 찝쩍거리는 참새떼, 봄이 왔으니 알을 낳고 살림을 차릴 곳을 찾는 것이다. 해마다 하는 행사이지만 매번 세입자 마음대로 하는 전세계약이다. 세대주와는 전혀 상관없는 골짜기의 무법자다. 해마다 양지바른 이층 서재 앞이 최고의 거래처다. 가끔 두 팔 벌려 손사래를 처 봐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새머리가 아님을 알려주려나 보다.


골짜기 아침은 이웃집 닭이 먼저 알려준다. 동이 텄음을 알아 채린 닭이 먼저 울어대기 때문이다. 한 마리가 시작한 여명의 소리, 서서히 떼창이 시작된다. 불협화음으로 시작한 음은 점점 자리를 잡아간다. 함께 부르던 떼창은 가끔, 튄 소리로 존재감을 알려준다. 동물 속엔 삶의 모습이 여전한가 보다. 반드시 조화된 소리만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려준다. 앞 산을 넘어온 햇살이 밝아오며 시작되는 골짜기의 아침이다. 산을 넘어 곡선을 그리는 새들의 군무가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에도 일사불란함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 무리를 벗어난 불협화음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산새들이다. 햇살이 밝아졌다.

여린 새싹이 맑은 물을 달았다. 서서히 햇살이 찾아오며 생기는 영롱함이다. 파릇한 새싹이 돋아난 곳곳에 봄을 알리는 소리가 가득하다. 역시 공작단풍이 으뜸이다. 마디마다 달린 작은 새싹이 맑은 이슬을 달고 햇살에 반짝인다. 붉음에 치렁치렁한 잎을 자랑할 공작단풍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수돗가 앵두나무도 신이 났다. 올봄에 심은 앵두나무가 어느새 꽃을 달고 기지개를 켜고 있다. 앙증맞은 하양에 분홍이 섞인 꽃이다. 서서히 봄이 짙어지면 혹시 열매를 달고 있을까? 쓸데없는 희망인지 알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다. 잔디밭 푸름이 짙어지며 서서히 잡초와의 암투가 시작되었다.


해마다 암투의 대상이 바뀐다. 잔디밭의 무법자 크로바는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가끔 보이는 한두 개는 애교로 보아주는 크로바다. 지난해에는 작은 민들레가 주류를 이루었다. 어느새 자라난 작은 민들레, 노란 꽃을 달고 있다. 아침마다 이슬을 맞고 흔들림에 마음이 약해진다. 꽃이 피었으니 그냥 두라는 아내와 꽃이 피면 씨가 퍼질 테니 뽑아야 한다는 나의 주장이다. 잔디밭엔 잔디만이 있어야 한다는 고집스러운 나의 주장이지만, 살아보려 내민 작은 민들레가 안쓰럽도 하다. 올해는 암투의 상대가 바뀌었다. 잔잔한 잎으로 잔디 속에 숨어 있는 풀, 오래전에 만났던 '벌금자리'다. 곳곳에서 보이는 벌금자리가 푸름을 과시하고 있다.

서서히 푸름이 자리 잡아가고 있는 텃밭, 허연 수건을 질끈 맨 어머니가 계셨다. 초록이 물들어가는 초봄에 무엇인가를 찾고 계신다. 드문드문 푸름이 가득한 풀, 어머니는 '별금자리'라 하셨다. 잔잔한 뿌리를 제거하고 흙을 털어 낸다. 깨끗이 씻은 벌금자리와 잘게 썰은 무생채를 초고추장에 무쳐낸다. 따스한 밥 한 숟가락에 어우러지는 벌금자리 무침, 봄철에만 만날 수 있는 별미였다. 봄철이 되면 언제나 등장하는 벌금자리는 텃밭이 생각나고, 그리운 어머님이 떠오르는 벌금자리를 잔디밭에서 만났다. 봄이면 시골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봄 나물이다. 이파리가 벼룩 크기만 하다 해서 벼룩나물, 나락을 닮았다 하여 나락 나물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고단한 잔디밭의 암투, 일 년 내 끊이지 않는 일이다.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아침, 저녁의 소일거리다. 가끔 제초제도 생각해보지만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상쾌한 삶의 터전을 더럽히기가 부끄러워서다.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바람을 맞으며 벌이는 암투, 삼국지를 넘어서게 하는 처절한 싸움이다. 가끔은 소금이 등장하기도 한다. 잔디와 같은 나란히 맥을 가진 외떡잎식물은 염분에 강하지만, 크로버와 같은 그물맥을 가진 쌍떡잎식물은 염분에 약하다. 나란히 맥을 가진 외떡잎식물은 염분에 강해 세포변화가 없지만, 그물맥을 가진 쌍떡잎식물은 염분에 취약함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 원리를 이용하여 잔디는 보호하기 위해 소금을 뿌려 잔디는 살리고, 쌍떡잎식물을 제거하는 방법을 쓰지만 한계가 있다. 꾸준한 인내심을 기르며 오늘도 잔디밭을 서성인다.

서서히 햇살이 밝아 오면서 동네가 살아나고 있다. 푸르름이 산에서부터 내려오면 꽃이 피어난다. 노랑의 산수유와 생각나무가 으뜸이다. 노란 꽃을 피운 생각나무와 산수유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생각나무는 줄기가 미끈하고, 가지 중간중간에서 꽃이 핀다. 산수유는 줄기에 껍질이 붙어 미끈하지 못하고, 꽃은 가지 끝에서만 피어난다. 노랑이 주를 이루는 정원에 벚나무가 서서히 움직이고, 꽃잔디와 영산홍이 빨강을 드러내고 있는 골짜기다. 갑자기 동네가 시끄러워진다. 알을 낳은 이웃집 닭이 저만 낳은 듯이 울어댄다. 맥 놓고 앉아 있던 이웃 닭이 품앗이로 울어준다. 느닷없이 동네 지킴이가 매칼없이 짖어댄다. 밝은 햇살 따라 골짜기의 작은 동네가 깨어나는 봄 언저리 4월 아침이다. 


찬란한 4월의 잔치를 서서히 준비하고 있다. 곳곳에 금낭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떨어질 듯하면서도 어림없다는 금낭화가 한없이 아름답다. 누가 금낭화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꽃 모양에 아름다움까지 이름값을 하고 있는 사이, 튤립도 꽃을 피워냈다. 손녀의 작은 화단을 아내가 치장해 준 튤립이다. 주황에 노랑이 약간 섞여 핀 튤립, 그 옆엔 수선화가 꽃을 피웠다. 봄을 알려주는 꽃들의 잔치가 벌어진 것이다. 앵초가 그냥 있을 리 없는 손녀의 화단, 곳곳에서 머리를 든 꽃들이 소란스럽다. 돌단풍도 참견하기 시작했고, 국화도 잎을 내밀었다. 서서히 꽃들의 잔치가 절정에 달하면 4월의 정원은 푸름이 넘치도록 처절해, 여기가 시골집의 정원임을 넉넉히 알려줄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4월이 주는 아름다운 시골 정원, 찬란한 아침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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