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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Apr 14. 2022

봄날 아침이 주는 골짜기 풍경.

(창문을 열면, 앞 산 진달래)

아침부터 이웃집 닭들이 소란을 떤다. 아침이 밝아온지 한참 지난 시간인데, 창문을 열고 목을 늘여 본다. 가끔 닭을 노리는 매가 하늘에서 맴을 돌고 있나 보다. 어떻게 알았는지 닭들은 긴장을 한다. 눈은 하늘로 향해 있으면서도 숨을 곳을 찾는 닭들이다. 잠시 후, 위험이 없어졌는지 닭들의 민방위 훈련은 해제되었다. 일상으로 돌아간 닭들은 먹거리를 찾아 나선다. 역시 닭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이, 처마 밑을 노리는 새들이 찾아왔다. 언제나 자기들 마음대로 드나드는 새들이다. 제집인양 드나들며 집을 짓고, 새끼를 기르며 한없이 소란을 피운다. 골짜기의 내 보금자리는 내 것이 아니다. 


수도 없고, 때도 없이 찾아오는 새들의 집이다. 새들의 집에 내가 전세를 사는 느낌이다. 그들이 사는 골짜기에 내가 집을 지었으니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새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수밖에 없음은 안다. 새들 등살에 시끄러운 골짜기에도 햇살 가득한 봄이 찾아왔다. 맑은 공기가 살갗에 닿는 느낌이 예사롭지 않다. 슬쩍 소매를 걷어 팔뚝을 들이민다. 서늘함은 어디로 갔고 상쾌함만이 남아있다.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짜릿함이 온몸을 깨워준다. 몸서리 쳐지도록 상큼함이 짜릿한 아침이다. 싱그러운 바람을 맞으며 나선 잔디밭, 곳곳에 푸름이 야단 났다. 서로 고개를 내밀며 아우성이다. 

누런 잔디를 부여잡고 푸름이 솟아난다. 하루 밤 사이에 눈에 보이도록 자라났다. 곳곳에 잔디가 자라났지만 잡풀도 자리를 넓혀 나간다. 고단하고도 지루한 싸움을 해야 한다. 당분간 용서(?)하기로 하고 눈길을 거둔다. 지난여름을 빛내주던 개키버들이 초록의 새싹을 밀어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푸름이 앙증맞다. 눈물겹도록 연한 푸름이 눈에 시리도록 다가온다. 여기에 햇살이 찾아오자 눈을 거둘 수가 없다. 성스러운 자연이 주는 봄날의 아침, 지난겨울의 흔적을 지우기로 했다. 길게 자랐던 누런 잔디가 나무 밑에 있는 모습이 남루해 보여서다. 누런 잔디를 자르려는 마당 언덕에도 푸름이 자리를 잡았다. 계절이 주는 신비함이다.


돌 틈 곳곳에 푸름이 가득한 마당가, 금낭화가 훌쩍 올라왔다. 지난봄에 꽃을 보면서 아름다움에 홀딱 반했던 금낭화다. 짙은 분홍으로 온 마당을 혼란스럽게 했던 금낭화다. 주렁주렁 달린 분홍빛 주머니가 바람에 달랑거린다. 금방 떨어질 것 같지만 어림도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아름다움을 지운 금낭화, 무심하게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었다. 여름과 가을을 지나, 긴긴 겨울을 무던히 견뎌낸 것이다. 작은 틈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었을까? 눈물겹도록 신비하지만 미안한 생각이다. 얼른 돌 틈을 열어 밝은 햇살을 안내했다. 봄이 무르익으면 진분홍 주머니를 달고 세상을 환하게 비추어 줄 것이다. 계절의 신비함에 감탄하는 아침이다. 갑자기 창문 너머가 시끄럽다. 아내가 이웃과 만난 모양이다. 

끝 봄을 장식하는 뒤뜰 벚꽃

언제나 활기차고도 신이 나는 이웃이다. 밭을 갈고 채소를 가꾸어 이웃에게 나누어 주기만 하는 이웃이다. 냉이를 캐왔다고 나눠주고, 미나리를 얻었다고 또 나눠준다. 옥수수를 처음 땄다고 모이라하고, 밤을 주웠다고 또 나누어 준다. 늘 고마움에 무엇으로 보답할까 고민 중인 이웃이다. 서둘러 아내가 들어오더니, 이웃과 운동하러 간단다. 앞산을 오르며 운동도 할 겸, 지난해에 뜯어 왔던 머위도 있으면 뜯어 온단다. 쌉쌀함을 얹어주는 머위 맛을 잊을 수 없었나 보다. 도시에서 낳고 자란 아내는 전혀 시골살이를 모른다. 엉겁결에 시골로 이사 온 아내는 잘 적응하며 어우러져 살아간다. 서둘러 아내가 나간 집은 조용하기만 하다. 온 동네가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여전히 새소리만이 가끔 들려오는 아침이다. 


잔디밭 가장자리를 정리하기 위해 발길을 옮겼다. 지난해에 구절초를 심어 놓았던 곳이다. 하얀 꽃으로 동네를 하얗게 밝혀주는 신비함을 보여 주던 구절초다. 나무 밑 돌 틈 사이에 푸름이 가득하다. 지난해 심어 놓은 구절초가 온통 자리를 잡은 것이다. 스멀스멀 땅을 밀고 올라오는 푸름이 난리가 났다. 잎이 쑥과 비슷한 구절초가 씩씩하게 움을 틔우고 있다. 하얀 가을을 수놓을 구절초가 꽃잔디 옆을 가득 메우고 있다. 붉은 꽃잔디가 꽃을 피우는 봄이 지나고, 긴긴 여름이 지나면 동네를 밝혀줄 구절초다. 긴긴 겨울을 용감히 버티고 싹을 밀어낸 구절초가 대견스럽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이웃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난여름을 수놓았던 개키버들

아내와 운동을 나섰던 이웃이 돌아오는 소리다. 언제나 유쾌하고 거침이 없다. 나물을 뜯고 밭을 일구며 이웃과도 잘 어우러지는 이웃이다. 아내는 빈손이다. 운이 좋게 머위잎을 얻었으면 좋으련만 오늘은 운동으로 만족해야 하는가 보다. 아내 차지가 될 리 없는 머위다. 봄이면 자연이 주는 선물이 가득한 동네다. 일찍이 홑잎 나물이 나올 테고, 고사리와 두릅이 촉을 밀어낼 것이다. 봄이 더 익어가면 서서히 취나물이 곳곳에 자리 잡을 것이다. 봄이면 떠오르는 달래와 냉이가 있고, 수만 가지 선물을 주는 골짜기다. 여기에도 수많은 발길이 멈추지 않으니 아내의 손길이 닿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계절이 주는 계절 음식이 으뜸이니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골짜기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얻어 가더라도, 나무가 망가지고 자연이 훼손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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