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준 뒤뜰은 행복한 놀이터다.

(봄의 축복, 바위취의 초록)

by 바람마냥

아침부터 산새들이 재잘거린다. 할 말이 그렇게도 많은지 궁금하다. 뭐 그렇게도 할 말이 많아 새벽부터 저렇게도 소란할까? 얼른 일어나 연 창문, 밝은 햇살이 창문을 얼른 넘어온다. 부지런히 차리고 나선 뜰앞은 여전히 봄이 가득하다. 어젯밤에 만난 봄이 아닌, 오늘 아침은 다른 봄이다. 푸름이 부쩍 짙어지고, 잎새는 키를 불려 놓았다. 가뭄 속에 물을 주는 수고에 보답을 하나 보다. 여전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잔디밭의 잡초다. 구부려 뽑으로는 잡초, 잠시 생각이 머문다. 무엇이 잡초란 말인가? 잡초, 그건 인간이 정해 놓은 그들만의 놀음이 아니던가? 괜한 쓸데없는 생각을 접고 잡초를 뽑아낸다. 갑자기 나오느라 안경을 두고 나왔다.


언젠가부터 갑자기 나빠진 시력이다. 원거리부터 가까운 거리까지 거칠 것이 없었던 천리안이었다. 순식간에 보이지 않던 신문 글자가 이상했다. 왜 안 보이지? 안과에 들렀더니 노안이란다. 그대로 살던가 아니면 안경을 쓰라는 의사의 퉁명스러운 말이 야속했었다. 세월의 흐름이야 어쩔 수 없다는 위안으로 안경을 쓰고야 말았다. 안경을 쓰지 않고 나온 아침이 다행스럽다. 작은 잡초는 보이지 않으니 그냥 발걸음을 뗄 수 있지 않은가? 안경을 썼더라면 몇 걸음도 뗄 수 없는 잔디밭이다. 잔디밭을 지나 뒤뜰이 궁금해 발길이 옮겼다. 참 신기한 봄이 선물을 한가득 안겨주는 아침이다. 우선은 돌나물이 어제와 전혀 다른 색이다. 크기도 다르다.

IMG_1513[1].JPG 싱그러운 돌나무

지지난해에 아내가 이웃에게 얻어 심은 돌나물이다. 수분이 풍부하고 칼슘과 인 그리고 비타민C가 풍부한 봄나물이다. 아내가 가끔 한 줌 뜯어 초고추장에 무쳐 주는 생나물이다. 아삭한 식감에 상큼함을 주는 돌나물이 가득 번졌다. 오래전 어머니는 돈나물이라 하셨었다. 그리움 속 어머니다. 어떻게도 저렇게 푸를 수 있을까? 자연이 주는 초록의 빛을 감히 인간이 당해낼 수 있을까? 어느 화가가 저런 빛을 만들 수 있을까? 아침마다 푸름에 보답하기 위해 물을 주는 보답인가 보다. 돌나물 위로는 황겹매화가 치렁치렁 키를 불렸다. 몇 년 전에 심어 놓은 황겹매화다.


오래전, 고향집 둘레에는 황겹매화가 가득했었다. 치렁치렁 키를 불려 황금빛 꽃을 달고 바람 그네를 즐겼다. 넋을 놓고 바라보던 황겹매화, 몇 해전에 몇 뿌리를 캐다 심은 것이다. 가끔 물을 주고 돌봐준 보답이다. 봄이 되자 싹을 틔우기 시작한 황겹매화가 꽃을 피울 모양이다. 다복한 식구들을 불려 놓아 오래 전의 추억을 불러준다. 꽃을 피우려는 꽃몽우리가 가득한 황매화, 오늘도 어김없이 바람 그네를 즐긴다. 뒤뜰 언덕에는 벌써 진한 봄이 와 있었다. 갖가지 식구들이 어김없이 얼굴을 보여준다. 푸름에 보랏빛이 잘 어울리는 도라지와 더덕도 촉을 내밀었다. 이웃에게 얻어 심은 도라지가 불쑥 올라온 것이다.

IMG_1514[1].JPG 황겹매화가 노랗게 피었다.

자그마한 뛰 뜰 밭에 심은 도라지다. 보랏빛으로 꽃을 피우면 여간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도라지를 먹으려는 것이 아닌 꽃을 보기 위한 도라지 밭이다. 어떻게 저리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푸름이 주는 평안함은 온몸을 나른하게 한다. 시골에 사는 축복을 듬뿍 받은 곳엔 향을 위한 더덕이 자리를 잡았다. 뒤뜰에 돌아서면 풍겨주는 더덕도 먹기 위함보단 향을 위해 심었다. 길게 줄기 따라 오른 더덕향은 떨칠 수 없는 시골의 맛이다. 가끔 먹어보는 더덕 맛에 숨이 멎지만, 더덕이 주는 향은 발길을 잡기에 충분하다. 여기저기에 싹을 틔워 줄기가 넘실댄다. 기어오를 이웃을 찾고 있는 중이다. 어서 몸을 지탱할 이웃을 만들어 줘야겠다. 여기에 취나물이 그냥 있을 리 없다.


취나물, 시골에서 만나는 단골 식구다. 아내가 심어 놓은 취나물이 그득해졌다. 곳곳에 심어 놓은 취나물이 짙은 향을 뿜어낸다. 참취와 곰취 그리고 바위취도 뒤뜰 식구다. 참취가 가득한 마당 가장자리엔 난리가 났다. 벌써부터 자리싸움에 급급한 참취의 놀이터다. 어느새 세력을 불려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에 심어 놓은 곰취는 자리를 감추었나 했는데, 갑자기 순을 내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지난해 아름다운 곰취 꽃을 보고 내박쳐 둔 것이 싹을 틔운 것이다. 미안하고 안쓰러움에 물을 주고 봐준 덕에 세력을 한껏 불렸다. 자연의 위대함과 생명력에 고개가 숙여진다. 바위를 가득 덮은 바위취도 빠질 수 없다. 뒤뜰 바위를 가득 덮었다.

IMG_1515[1].JPG 병꽃나무가 꽃을 피웠다.

범의귀라고도 하는 바위취, 자잘한 잎이 아름답다. 초록빛 잎에 하얀 줄이 선명하게 자란 바위취다.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바위취다. 하얀 꽃대가 올라와 꽃을 피워 보기만 하고 나 몰라라 했던 바위취다. 어떻게 그늘 밑에서 고단한 겨울을 지냈을까? 누구 하나 돌보는 이 없어도 끄떡없이 촉을 내밀었다. 햇살이 찾아오고 봄바람을 맞고 잎새를 키웠다. 뒤뜰 바위를 가득 덮은 바위취가 나 여기 있음을 알려주는 뒤뜰이다. 뒤뜰을 찾아 만난 봄 식구들이 반가운 아침이다. 차가운 겨울을 굳건히 견디고 나온 소중한 식구들이다. 아름다움을 준만큼 지켜줘야 함을 언제나 잊고 사는 인간이다. 줄 때는 고마워하지만 늘 소홀했던 소중한 식구들이 반갑게 반겨줌이 고마운 아침이다. 올해도 아름다운 봄날의 친구가 되어 한해를 또 보내고 싶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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