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초록빛 앞산에 숨이 멎었다.

(봄이 주는 초록, 서재 앞산의 초록)

by 바람마냥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지는 봄날 골짜기, 엊저녁에 불던 바람도 잦아들었다. 가느다란 산바람만이 초록을 간질이는 골짜기다. 가느다란 바람을 못 이기는 척 연초록은 몸을 맡긴다. 초록이 흔들리며 산을 흔든다. 멀쑥한 진한 초록도 덩달아 몸을 흔든다. 앞 산이 흔들리는 골짜기는 봄날의 흔들림이다. 껑충한 참나무가 기다랗게 몸집을 불려 연초록을 이고 있다. 연한 초록이 촉을 내밀던 봄날, 작은 이슬이 간간히 내려왔다. 눈을 뜬 연초록에 이슬이 앉아 연한 초록 물감이 되었다. 얼기설기 자란 가지에 연초록이 흘러내렸다. 무뚝뚝한 참나무에 연한 초록 붓질이 된 것이다. 잣나무의 진초록이 우두커니 바라본다.


계절의 변화가 주는 신비함에 아침이 놀란 봄날이다. 앞산에서 벌어지는 초록의 어울림 때문이다. 새벽 산을 넘은 진초록 앞에 연초록이 서 있다. 진초록은 잣나무가 주는 초록이요, 연초록은 참나무가 얹고 있는 초록이다. 작은 바람에도 날아갈 것 같은 연한 초록이다. 야리야리한 연초록의 조화가 진초록을 멀쑥하게 한다. 누가 저런 빛깔을 만들어 놓았을까?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의 빛깔이다. 연한 초록에 노랑이 조금 섞인 옐로운 그린에 가까운 색깔이다. 형광빛 초록에 옅은 노랑이 조금 섞였나 보다. 작은 바람에도 견딜 수 없음에 바르르 떨고 있다.

앞 산엔 가끔, 안개가 찾아온다.

연초록에 햇살 가득한 형광빛 노랑이 스며들었다. 연한 초록을 만난 형광빛은 예로우 그린이다. 작은 바람에도 흘러내릴 것 같은 연한 초록이 된 것이다. 진한 초록을 이고 있는 잣나무, 가을을 지나고 겨울이 찾아왔다. 잣나무는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며 마음을 다잡았다. 골짜기의 겨울에 초록은 멍이 들었다. 무던히도 견뎌내는 사이 멍든 진함은 그대로 남았다. 연한 초록이 찾아온 아침, 진함이 부끄러워 몸을 움츠렸다. 연초록이 넘실대는 사이, 겨울을 이겨낸 진한 초록이 가슴을 폈다. 연한 초록을 넘어선 진한 초록의 자부심이다. 연함과 진함이 교묘하게 어울린 자연의 숲이 아름다운 이유이다.


잣나무의 진초록이 깜짝 놀랐다. 느닷없이 찾아온 연초록 때문이다. 자신 뿐인지 안 초록앞에 느닷없이 연초록 출연했다. 진함의 아름다움을 넘어서 여린 연초록이다. 연초록도 진함에 깜짝 놀람은 같다. 진초록의 묵직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두 초록이 머뭇거리는 사이, 두 초록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었다. 산을 넘은 맑은 햇살, 두 초록의 머뭇거림을 섞어보기 위함이다. 맑게 빛나는 이슬 속 연초록이 빛을 발한다. 연초록을 지난 햇살이 초록을 머금고 빛을 되받아 친다. 진한 초록을 연한 초록으로 초대한 것이다. 초록의 어울림은 이렇게 어울리고 있다. 아침나절 앞산에서 벌어지는 초록의 어울림이다.

야광나무가 꽃을 피웠다.

초록이 어울리는 사이 밝은 꽃이 피어났다. 봄을 한참 즐긴 후, 밝은 하양이 찾아온 것이다. 벚꽃이 피고 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추운 봄바람을 이겨낸 벚꽃이었다. 서서히 봄이 익어 갈 무렵, 하얀 벚꽃이 저물면서 연초록이 물들었다. 작은 새싹이 스며 나온 것이다. 어느새 찾아온 이슬을 먹고 연초록 물감이 되었다. 연초록으로 벚나무가 치장을 하는 사이, 하얀 꽃이 피어났다. 밤에 빛이 난다고 하는 야광나무다. 연초록으로 치장한 벚나무 밑에 야광나무가 꽃을 피웠다. 초록의 잔치에 하양이 어울린 골짜기에 빛이 나고 있다. 중천에 뜬 하얀 달이 수더분한 빛을 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질세라 분홍빛 꽃이 등장했다. 골짜기 곳곳에 피어난 병꽃이다.


꽃 모양이 병 모양과 같다 하여 병꽃이라 하는 꽃이다. 골짜기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병꽃, 뒤뜰에도 서너 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성장이 너무 빨라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분홍이 적당이 섞인 꽃을 피워줌이 언제나 고마운 꽃이다. 어렸을 적, 울타리로 심어져 있던 병꽃나무다. 허름하지만 반드시 있어야 하는 울타리, 거기엔 주렁주렁 애호박이 있어야 제격이었다. 애호박이 늘어진 곳에 분홍빛 병꽃이 가득했었다. 어린 시절을 기억하게 해주는 병꽃나무가 흐드러진 꽃을 달고 있다. 초록에 하얀 야광나무가 빛을 더하고, 거기에 분홍빛 병꽃나무가 어울러주는 골짜기다. 자연이 만들어주는 교묘한 어울림이 가득한 골짜기다.

도랑엔 소박한 다리가 있다.

아침 햇살이 넘어온 골짜기, 거기엔 자연이 만들어 준 고귀한 색깔이 나란히 서 있다. 연초록에 진한 초록이 어울림을 주고, 하얀 야광나무가 빛을 발한다. 달이 뜨는 밤이면 그득한 하양이 맑음으로 변하는 야광나무다. 하얀빛이 골짜기를 부자로 만들어 주는 맑은 빛이다. 연한 분홍빛 병꽃나무도 꽃을 피웠다. 애호박이 덜렁거리는 울타리, 거기엔 병꽃나무가 있었다. 초록의 애호박이 불러주는 어머니가 그리운 병꽃나무 울타리다. 초록과 하양이 어울리고, 분홍 속에 작은 도랑이 옹알대는 산골이다. 신비한 자연이 주는 색들의 잔치, 여기는 조용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산골짜기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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