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이 물든 정원은 작은 골짜기의 선물이다.

(노란 꽃들의 세상, 기린초)

by 바람마냥

붉은 병꽃 그리고 빨강 패랭이가 신나는 계절이었다. 서서히 병꽃나무가 꽃을 내려놓으면서 여름으로 스며드는 계절이다. 수돗가의 뜰 보리수가 빨강으로 물들어 가는 날, 노랑꽃이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잔디밭 가장자리에 숨죽이고 있던 큰 금계국이다. 몇 해 전엔 아침, 저녁으로 물을 준 덕에 엄청나게 키를 키웠던 큰 금계국이었다. 잔디밭 가장자리에서 울타리가 되어 집을 감싸 안았다. 큰 키에 바람을 이기지 못해 허덕이는 것이 안타까워 세심하게 물을 주었더니, 적당한 키에 노란 꽃이 일품이다. 작은 키에 노란 꽃이 가득한 정원이다.


노랑으로 물든 골짜기가 신났던 여름날이었다. 서서히 여름이 깊어지면서 큰 금계국이 꽃을 지웠고, 풍성하던 노란 꽃이 지고 난 가을은 쓸쓸했다. 곳곳에 꽃이 있지만 가득한 노랑이 지워진 잔디밭 가장자리가 허전해서였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중에 생각난 것이 여행길에 만난 하얀 구절초였다.

세종시 장군산 영평사의 구절초, 가을이면 빼놓을 수 없는 진객이었다. 절집을 둘러싸고 하얗게 꽃을 피운 구절초는 가을마다 찾아가는 멋진 풍경이었다. 고민 끝에 생각난 것이 영평사 구절초 축제였다. 언뜻 하얗게 핀 구절초가 생각난 것이다. 부랴부랴 구절초를 구입해 심기로 했다.

IMG_1764[1].JPG 여름날의 선물, 큰 금계국

잔디밭 가장자리는 구절초의 세상으로 변했다. 얼마나 번식력이 좋은지 잔디밭 가장자리를 가득 메우고 꽃을 피웠었다. 가을을 하얀 꽃으로 장식한 구절초, 겨울을 굳건히 버티어 냈다. 봄이 되자 곳곳에 자리를 잡고 큰 금계국 자리까지 차지하고 말았다. 설 곳이 없던 큰 금계국이 곳곳에 웅크리고 싹을 틔웠다.

반송 밑으로 자리를 잡았고, 빨간 단풍나무 밑으로 자리를 잡은 듯했었다. 하지만 번식력이 엄청난 큰 금계국,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고개를 내미는 것이 아닌가? 구절초한테 구박을 받던 것을 앙갚음이라도 하듯이 세력을 불려 나갔다. 엄청난 세로 공격을 하면서 영역을 점점 넓히더니, 여름이 되자 환성을 지르고 있다.


온통 큰 금계국의 세상이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나서는 들녘도 노랑이고, 도로변의 곳곳에도 노랑 천국이 되었다. 드디어 골짜기의 잔디밭 가장자리도 큰 금계국 세상이 되었다. 금계국과 큰 금계국, 화려한 금계(金鷄)처럼 예쁜 꽃이 피는 국화라 하여 금계국(金鷄菊)이라 한다고도 하고, 꽃이 닭의 벼슬처럼 갈라져 있어 금계국(金鷄菊)이라 한다고도 한다.

한두 해살이인 금계국은 노란 꽃잎 밑쪽으로 자색이 있으며, 여러해살이 큰 금계국은 키도 크고 전체가 노란 꽃잎을 하고 있다. 큰 금계국은 여러해살이 풀로, 한 번 심어 놓으면 매년 꽃을 볼 수 있어 길거리에서 만나는 것은 거의 큰 금계국이다. 번식력이 너무 강해 일본에서는 생태교란종으로 지정되어 있어 마음대로 심을 수도 없는 식물이란다.

IMG_1738[2].JPG 돌나물이 꽃을 피웠다.

서서히 큰 금계국의 노란 세상에 잔잔함으로 꽃을 피운 것도 있다. 잔디밭에 우뚝 서 있는 모과나무 밑에 자리 잡은 기린초다. 자전거를 타고나서는 시골길, 언덕 위로는 밤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밤나무 밑으로 있는 바위틈에 잔잔한 꽃이 가득 피어 있다. 바위틈 곳곳에서 노랑으로 물들인 것이 바로 기린초였다.

기린초가 마당가에도 꽃을 피웠다. 기린초, 기린을 닮았다 하여 기린초라 하는 꽃이다. 길 떠난 님이 언제나 돌아올까 목을 빼고 기다리다 죽은 여인이 꽃으로 태어났다. 기린처럼 목이 길게 늘어났으니 꽃대도 기린모양을 하고 있어 기린초(麒麟草)라 한다는 꽃이다. 기린처럼 커다란 꽃은 아니지만, 꽃대가 길게 올라와 기린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꽃이다. 노랑은 또 있었으니, 뒤뜰에 가득했던 돌나물이다.


무기질이 풍부하다는 돌나무, 한 뿌리만 던져 놓아도 충분히 살아가는 돌나물이다. 기어이 뿌리를 내리고 푸름을 과시했었다. 한 움큼 뜯어 초고추장을 얹어 놓으면 되는 멋진 봄나물이었다. 상큼함과 신선함을 함께 주는 돌나물도 세월을 따라 변하고 있었다. 햇살이 깊어지면서 점점 쇠어지던 돌나물, 봄이 점점 익어가면서 서서히 꽃을 피울 태세였다. 어느 날 갑자기 노란빛이 보이더니, 노란 꽃을 가득 피웠다. 도저히 꽃이 필 것 같지 않던 푸르름이었지만 자연의 섭리를 거역할 수는 없나 보다. 뒤뜰 돌나물이 노란 꽃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이에 뜰에는 한 무더기의 노랑이 또, 세를 과시하고 있다.

IMG_1763[1].JPG 황금 낮 달맞이꽃

손녀의 정원에 속 노란 달맞이꽃이다. 울타리 근처에 분홍 달맞이꽃이 긴 덩굴로 인사를 하는 사이에 노란 황금 낮 달맞이꽃이 환하게 웃고 있다. 이웃집 도랑 옆으로 길게 황금 낮 달맞이꽃이 있다. 중간에 드문드문 빈자리가 있어 보기가 흉하기에 이웃이 없는 사이, 조밀하게 심어진 곳에서 솎아 얼른 빈자리에 메꿔줬다. 긴 행렬을 이루는 황금 낮 달맞이꽃이 열을 맞추어 서 있는 모습이 그럴듯해 보인다.

햇살이 더 찾아오면 노란 달맞이꽃이 긴 행렬을 이루며 꽃을 피우리라. 꺽다리 달맞이꽃이 노란 꽃을 피우고, 분홍빛 분홍 달맞이꽃이 피며 황금빛 달맞이꽃이 구색을 갖추어 줄 것이다. 자그마한 동네가 꽃으로 가득한 여름날이 될 것이다. 정원에도 꽃들의 행진을 계속된다.


잔디밭 한 복판에 있는 아내의 정원, 수많은 꽃을 심어 놓았다. 꽃범의 꼬리가 가득하고 작약과 나리꽃이 자리를 잡았다. 돌무덤 사이로 라일락도 보이고, 잔잔한 국화도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다. 여기에 노랑 무더기가 자리 잡고 있으니 황금 조팝나무다. 5월에 접어들어 한가한 언덕 위에 하얀 꽃이 가득했었다.

꽃 모양이 조밥 모양과 비슷하다 하여 조팝나무로 불리는 나무다. 하얗게 꽃을 피운 조팝나무는 꽃이 지고 푸른 잎으로 장식하고 있다. 아내의 화단에 있는 황금 조팝나무, 노란 금빛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노랑으로 가득한 황금 조팝나무, 화단을 황금빛으로 물들여놓았다. 여름이 깊어지면서 서서히 꽃을 피운 황금 조팝나무가 아내의 화단에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IMG_E1741[1].JPG 황금 조팝나무

여기저기에서 노랑으로 계절에 화답을 하고 있는 사이, 토마토도 노랑꽃으로 물들였다. 언젠가는 푸름을 이기고 붉게 물들 토마토가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잘하면서도 노란 꽃으로 여름을 준비하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었더니 마디마다 꽃을 피웠다. 하루가 다르게 키를 불린 토마토, 마디마다 노란 꽃을 피웠다. 저렇게도 많은 꽃을 피우면 저렇게도 많은 열매를 달고 지탱할 수 있을까?

가끔은 걱정도 되지만 마디마다 달고 있을 붉음과 노랑 토마토 욕심으로 모른 척하고 있다. 노랑빛 방울토마토와 붉은 토마토가 열리는 날, 손녀가 찾아와 따먹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다. 계절의 순환 속에 곳곳에서 붉음이 자리를 감추려 하자, 노랑으로 화단은 가득 메우고 있는 골짜기다. 노랑이 자취를 감출 무렵이면 무슨 색으로 화단이 물들까? 보랏빛이 가득할까 아니면 푸름일까? 오늘도 싱그러움 속에 화단에서 어정거리는 늙어 가는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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