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골짜기엔 사랑꾼들이 가득하다.

(임을 찾아가는 밤)

by 바람마냥

커다란 감나무 밑에 자리한 초가집, 뒤쪽으로 나있는 문을 열었다. 감나무에서 명을 다한 감이 툭하고 떨어진다. 감나무 꽃을 피운 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아기 조막만 한 풋감이 삶을 떠나가는 소리다. 고요한 시골집의 저녁 풍경이다. 작은 바람 따라 감나무 잎이 몸을 비비며 바스락거릴 때, 여기에 어우러지는 소리가 있다. 앞 논에서 울어대는 개구리울음 소리다. 몇 마리나 될까? 왜 밤에 울고 있을까? 언젠가는 들리지 않던 개구리가 목청을 높이는 소리다. 순간 멈추었던 떼창이 한꺼번에 울려온다. 한없이 평화스러움을 던져주는 개구리 소리와 함께 소쩍새 소리는 잊을 수 없다. 개구리가 떼창을 하고, 멀리서 소쩍새가 처절하게 님을 찾고 있다.


오래전,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다. 아내를 만나 결혼식을 하고 시골집으로 향했다. 도시 생활에 익숙했던 아내였고, 시골생활에 익숙했던 신랑이었다. 화려한 호텔보다는 푸근한 시골집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싶었던 신랑이었다. 어른들을 모셔놓고 폐백을 드리고 어설픈 저녁을 먹었다. 모든 것을 낯설어하는 아내, 어떻게 도와줄 수 없는 시골집이다. 저녁이 되자 사방은 어두웠고 보이는 건 빠꼼한 하늘뿐이다. 천지가 조용한 골짜기에 들리는 소리는 텃논의 개구리울음소리였고, 가슴을 파고드는 소쩍새 소리였다. 신랑에겐 너무나 익숙한 소리였지만 새댁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생전 처음 서 있는 컴컴한 골짜기에서 들리는 소리, 어쩔 줄을 몰라했던 아내의 기억이었다. 고희쯤 되어 어렵게 마련한 골짜기에서 새 삶을 살아가고 있는 늙어가는 청춘들이다.

IMG_8813.JPG 고즈넉한 골짜기의 밤

근처 시내에서 아내와 볼일이 보고 골짜기로 스며드는 저녁이다. 닫혀있는 차 문이 답답해 슬며시 창문을 열자 깜짝 놀라게 하는 소리가 창문을 넘어왔다. 한 덩어리의 개구리울음 소리다. 와, 이 소리였다. 한없는 그리움을 주는 소리, 아내가 그렇게도 어색해했던 그 소리였다. 창문을 넘어온 한아름의 개구리 소리가 골짜기에 가득 숨어 있었다. 오래전 그리움 속 골짜기에서 나던 살아 있는 소리다. 시골집에 도착해 차를 세우고 도랑가를 얼쩡거린다. 개구리 소리를 듣고 싶고, 작은 도랑물 소리를 듣고 싶어서다. 작은 가로등 불이 비추는 골짜기의 보금자리, 여기에 소쩍새가 거들어 준다. 참 행복한 보금자리에서 들어보는 그 소리들이다.


개구리는 왜 밤에 그렇게도 처절하게 울까? 비 오는 날에는 더 큰 소리를 낸다. 왜 그럴까? 개구리가 우는 것은 짝을 찾거나 세를 과시하기 위한 수놈들의 울음소리란다. 암놈은 울음주머니가 없어 울지 못하며, 피부 호흡을 하는 개구리는 피부가 젖어 있을 때 산소를 받아들이기 쉬워진단다. 습기가 많은 저녁이나 비 오는 날에 개구리가 살맛이 나는 이유인 것이다. 낯보다는 서늘한 밤이 좋고, 맑은 날보다는 비 오는 날이 살아가기 좋은 날이니 신나게 울며 님을 찾을 수밖에 없단다. 모내기를 하려면 논에 물이 있어야 하고, 따스한 5월 즈음이 개구리가 살아가기 최적의 시기가 되는 것이다. 임을 찾는 개구리의 합창이 벌어질 때, 없어서는 안 될 음이 또 소쩍새의 울음이다.

IMG_1732[1].JPG 두런 대는 이야기가 있는 밤

심심한 한낮의 골짜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하나의 점이 나타났다. 여름 뻐꾸기가 마실을 가는 모양이다. 뻐꾸기도 심심한지 뻐어꾹, 기어코 한 음절 뱉어 놓고 홀연히 산을 넘는다. 꾸뻑거리며 졸던 산골은 뭔 소린가 하여 고개를 드는 사이 햇살도 산을 넘었다. 서서히 골짜기 다락논에 어둠이 깔리면서 개구리는 신이 난 것이다. 신나는 합창 속에 잠시 멈추었는가 하면, 또 울음은 계속된다. 여기에 소쩍새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구성진 소리가 골짜기를 흔들어 놓는다. 뻐꾸기가 한 나절 울고 간 골짜기 밤을 소쩍새가 소쩍거리며 가슴을 적셔준다. 소쩍새는 밤에 울어야 제격이다. 낮게 드리워진 어둠이 그렇고, 분위기가 그러하다.


올빼미과의 야행성 조류 소쩍새의 울음에는 슬픈 사연은 숨어 있다. 또,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이야기다. 며느리를 구박하던 시어머니, 며느리에게 밥을 주지 않으려 작은 솥을 내주었다. 결국 며느리는 굶어 죽었고 불쌍한 영혼은 '솥이 적다, 솥이 적다'를 외쳤고 이내 소쩍, 소쩍이 되었단다. 왜 그렇게도 시어머니를 앞세운 며느리의 구박이 많았을까? 앞 산에서 들려오는 소쩍새의 구성진 소리가 골짜기를 흔들며 님을 찾는다. 떼로 모여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에 쓸쓸히 홀로 울어대는 소쩍새가 있는가 하면, 가끔 님을 찾는 고라니의 처절한 울음소리도 들려온다. 가끔 오르는 골짜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라니다. 여름이 깊어지는 골짜기다.

IMG_1731[1].JPG 산 식구들을 키워내는 앞산

어느새 심은 모가 검푸름으로 자리를 잡았고, 비탈밭에는 배추가 잎을 널찍이 불려 놓았다. 산을 타고 내려온 녹음이 논에서 올라간 녹음을 맞이했다. 여기에 어스름 달빛이 마을에 내려왔다. 어스름 달빛이 찾아온 골짜기에 임을 찾는 소리가 가득하다. 어둑한 골짜기에 개구리가 합창을 하는 사이 소쩍새도 구성지게 임을 찾고 있다. 여기에 어둠 속을 가르며 임을 찾는 소리가 있었으니 고라니의 울부짖음이다. 가끔 두런거리는 닭소리가 들리면 동네 지킴이가 매칼없이 짖어 주는 골짜기에 작은 도랑물도 참견을 한다. 어둠 속 꽃들이 함박웃음을 짓는 사이, 사랑꾼들의 노래가 구성지게 어우러지는 골짜기의 밤은 깊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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