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가 익어가는 계절, 뜰 보리수 열매)
자그마한 수돗가에는 언제나 꽃으로 가득하다. 초봄부터 앵두나무가 하얀 꽃으로 화답하고, 위로는 뜰 보리수가 하얀 꽃을 피워준다. 옆으로는 개키버들이 초록과 하양에 보랏빛까지 얹어주는 여유가 있고, 만첩 빈도리도 빼놓을 수 없는 봄날의 손님이다. 빨간 장미가 방긋 웃고 있는 사이, 황금달맞이꽃도 활짝 피었다. 초봄에 심어 놓은 체리나무는 잎만 보여주며 느긋하다. 하지만 수돗가의 지배자는 수돗가를 가득 덮고 있는 뜰 보리수나무다. 하얀 꽃으로 꽃을 피웠던 뜰 보리수, 이웃들이 보리수라 했다. 머릿속에 언뜻 떠오르는 것은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보리수다. 불교에서 중요한 나무인 보리수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보리수, 언제나 부처님이 생각나는 나무인데?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진 것은 몇 년 전 시골집으로 이사를 하고 서다. 하는 일은 없어도 바쁜척하다 보니 잊고 살았던 세월이다. 수돗가에 있는 나무가 보리수라 하는데, 불교를 연상시키는 보리수와 관련이 있나? 가끔 고민은 해봤지만 지금껏 미적거리고 있었다. 하얀 꽃으로 화답하던, 이웃들이 보리수라 불러주는 나무는 뜰 보리수나무였다. 덩달아 보리수라 했던 뜰 보리수가 꽃이 지고 초록 열매를 맺더니 어느덧 붉게 익어가는 계절이 왔다. 여름이 온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초록과 붉음이 함께하는 수돗가 터줏대감, 보리수는 뜰 보리수나무가 옳은 이름이란다. 보리수는 어떤 나무이고 어떻게 생겼을까?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다. 학교를 파한 코찔찔이 조무래기들, 멀쩡한 길을 두고 산길을 오른다. 혹시 먹을 것이 없을까 해서다. 봄이면 진달래를, 봄이 더 깊어지면 찔레순과 아카시 꽃을 찾아서 나선 것이다. 가끔 버찌도 있었고 가시가 달린 나무에 달린 붉은 보리똑도 있었다. 보리 똑, 왜 하필이면 보리똑이라고 했을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시원하게 대답해 줄 사람은 없었다. 한참이 지나 알고 나니 보리똑이 아닌 보리똥이었다. 표면에 있는 점 때문에 보리똥이라 한다는 열매가 달리는 나무는 보리수나무란다. 약간은 달큼한 붉은 열매 즉, 보리똥을 찾으러 헤매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보리수나무 열매가 보리똥이었던 것이다.
초봄에 싹이 돋아나면서 하얀 꽃으로 화답했던 뜰 보리수는 곳곳에 가시가 있어 쉽게 접근할 수 없다. 봄철이면 어김없이 힘찬 줄기가 우뚝 우뚝 솟아난다. 어떻게 저렇게도 잘 자랄 수 있을까를 의심할 정도로 쉽게 자란다. 며칠 사이에 큰 키를 자랑하는 뜰 보리수 가지였다. 할 수 없어 가지를 자르며 모양을 잡아 주던 뜰 보리수나무다. 서서히 하얀 꽃을 지우고 잠잠하던 뜰 보리수나무, 서서히 연초록 열매를 달았었다. 줄기에 가시가 달려있고 푸른 열매가 붉게 익어가는 뜰 보리수나무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어 불교의 성수로 불리는 보리수는 어떤 나무 일까? 보리수나무, 뜰 보리수나무 그리고 보리수 등으로 혼돈스럽다. 불교에서 성스러운 나무로 여기는 보리수는 인도가 원산인 보오나무(Bo tree)인데 인도보리수라 부른단다. 보리수는 꽃이 피지 않는 무화과나무로 꽃이 피지 않고 열매를 맺는단다. 기후 관계로 한국에서 자랄 수 없고, 인도 가야산에서 자라는 보트리(Bo tree) 또는 인도보리수라 하는데, 우리나라의 보리수는 어떤 나무일까? 불교가 들어오면서 보리수는 어떻게 들어왔을까?
보리수가 유명한 것은 석가모니가 그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원래 이름은 산스크리트어 ‘보디 브리쿠샤(Bodhi-vtksa)’, ‘깨달음의 나무’라는 뜻으로, 보리수는 브리쿠샤의 음을 우리식으로 한역한 이름이다. 불교와 떼어놓을 수 없는 나무다 보니 우리나라 사찰에도 보리수가 한 그루씩 있다. 석가모니에게 깨달음을 준 그 특별한 나무를 어떻게든 사찰에 들이고 싶었던 불자들이 비슷한 나무를 찾았는데, 잎 모양이 조금 닮은 피나무란다(다음 백과)
인도보리수는 기후가 맞지 않아 우리나라에 자랄 수 없는 것이다. 중국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인도보리수 대용으로 심은 보리수는 인도보리수와 잎이 닮은 피나무과(Tiliaceae)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다 하는 보리수와는 다른 나무다. 중국이 원산지인 이 나무는 보리자나무로 열매가 둥글고 단단하여 염주를 만든단다. 슈베르트의 가곡에 나오는 보리수나무도 염주를 만드는 보리자나무가 옳다는 것이다.
여름으로 들어가는 계절에 뜰 보리수나무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푸름과 붉음이 섞인 모습은 마치 방울토마토가 익어가는 모습과 비슷하다. 맑은 이슬을 얹고 있은 방울토마토, 여름을 기다리게 하는 텃밭의 보물이다. 한 알을 따서 입어 넣는 기분은 잊을 수가 없다. 익어가는 뜰 보리수 열매가 방울토마토를 떠오르게 하는 아침이다. 방울토마토가 가득 열려있고 따가운 햇살 아래 하루가 다르게 익어가고 있다. 아내는 뜰 보리수 열매를 딴다. 많이 달린 뜰 보리수로 쨈을 만들고 싶어서다. 가시가 달린 나무에 조심스레 다가가 붉은 열매를 따는 기분도 상쾌하다. 얼마나 많이 달렸는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밝은 햇살 아래 뜰 보리수 열매를 따는 아침이다. 뿌연 안개가 산을 넘어왔다. 오늘도 한없이 더움을 선사할 모양이다. 어떻게 하루를 슬기롭게 버티며 살아갈까? 오래전 어머님의 힘겨워하던 여름 나기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붉은 열매를 달고 있는 뜰 보리수나무, 보리똥을 따러 헤매던 산등성이 나무가 보리수나무다. 인도보리수를 떠올리며 사찰에 심어져 염주를 만드는 나무는 보리자나무이며, 불교에서 신성시하는 나무는 인도보리수 또는 보오나무라 하는 것이었다. 아침나절에 만난 뜰 보리수 열매를 보면서 먼 고민 속에 묻혀있던 보리수 이야기를 오늘에야 해결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