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 전시회, 알려야 할까? 말아야 할까?

(수채화 전시회를 하면서, 수채화 가을의 색깔)

by 바람마냥

어렵게 시작한 수채화를 한 세월도 꽤 되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동호회원들과 전시회를 한다. 어렵게 작품을 준비하고 전시장을 마련했다. 유명하다는 거리에 있는 갤러리에 그림을 걸었다. 내가 작가라는 이름으로 그림을 그렸고 전시회를 한단다. 처음으로 전시회를 하던 때가 생각난다. 그림과는 멀어도 너무 멀었던 사람이 작가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함이 너무나 뿌듯했었다. 오래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다 보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 수채화 전시회였다. 하지만, 매년 전시회를 하면서 고민이 있었다. 수채화 전시회를 지인들에게 알려야 할까, 아니면 말아야 할까? 자식들한테는 알려야 할까? 연말엔 또 색소폰 연주회가 있지 않은가? 어떻게 해야 할까?


수채화를 하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늘 뿌듯함이 있었다. 오랫동안 가슴에 있던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한테나 자랑도 하고 싶고, 또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도 싶었다. 망설임 끝에, 한 해 동안 준비한 수채화 전시회이니 최소한 나에게는 알려주고 싶었다. 나에게 알려주는 방법은 다름 아닌 카톡 대문 사진으로 올려놓는 것이었다. 일주일 정도 올려놓았다 내리는 것으로 늘 만족해 왔다. 최소한의 뿌듯함을 간직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지인들은 용케도 알아보고 축하전화도 하고, 축하 화분도 보내주곤 한다. 늘 고마운 일이지만 가까운 지인이라도 전시회장을 찾아오는 것은 보통 일은 아니다. 늘 부담스럽고도 미안한 생각이 드는 이유이다. 올해도 전시회를 하면서 이전과 같이 알리지 않았다.

수채화 전시회.png 지방신문 소개 기사

전시회를 한다면 우선은 가봐야 할까 말까를 망설이기 시작한다. 그냥 지나도 될까? 아니면 가봐야 하는 것 아닌가? 화분만 보내면 실례가 될까? 고민 끝에 가기로 결정했으면 시간을 조정해야 한다. 시간이 결정되었으면 어떻게 하고 갈 것인가 또 고민이다. 꽃다발을 가지고 가야 할까 아니면 화분을 들고 갈까? 얼마만 한 화분이나 꽃다발을 해야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까? 축하 화분을 결정하고 전시회장을 찾아갔다. 전시회에서 작가를 만나 설명을 듣고, 다시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입장을 생각해 봐도 생각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일 년에 최소한 두 번은 부담을 주어야 하는 일이다. 알릴까 말까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올해의 전시회는 많은 변수가 생겼다. 여러 명의 친구가 찾아왔고, 동호회 회원들이 화분을 들고 축하해 주러 찾아왔다. 얼른 전시회장으로 찾아가 설명을 해주고 조촐한 식사를 대접했다. 집에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또 온다. 지인들이 전시회장에 와 있다는 것이다. 얼른 달려가 설명을 하고 식사대접을 한다. 즐거움과 행복함이 있기도 하고, 더운 여름날에 찾아온 사람들이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부담스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운 여름날, 아이들이 먼 거리를 마다하고 찾아왔다. 아내와 함께하는 전시회이니 자식들이야 와야 한다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부산에서 와야 하고 서울에서 와야 한다.

수채화 전시회2.png 지방신문 소개 기사

서둘러 삼겹살을 준비하고 술자리가 마련했다. 어렵게 찾아온 아이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다. 먼 거리를 찾아온 아이들이 고맙지만, 시간에 쫓기며 사는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는 듯도 했다. 한편으론 이런 일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를 생각도 해 본다. 부모가 있기에 또, 아이들이 있기에 소식을 전하고 축하도 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바쁜 와중에 찾아와 주는 아이들에겐 고맙지만 미안한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전시회장을 찾아온 지인들이 온갖 칭찬을 다해 준다. 파도를 이렇게 실감 나게 그릴 수 있느냐 한다. 그림에 소질이 있다 한다. 어림도 없는 소리라며 손사래를 친다. 언제나, 내가 했으니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로 대변해 준다. 늙어가는 청춘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시작한 수채화가 많은 생각을 안겨주는 전시회다.


수채화 전시회장, 커다란 화분이 놓여 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화분이 와 있다. 과분한 축하를 해주고 있는 지인들이다. 생각하지도 못한 친구와 친지들이 찾아왔다. 생각하지도 않은 일이 많이 벌어졌다. 지방신문 서너 곳에도 소개되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큼직한 나의 파도 작품이 대문을 장식한 기사다. 무더운 여름이고, 시원함을 주는 그림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뿌듯한 신문기사다. 작가라는 이름만으로도 충분한데, 기사거리가 되고 친지들의 인사를 받는 호사를 누린다.


살면서 좋은 일은 알리고 축하해주는 것이 삶이지만, 쑥스럽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나에게는 행복함과 뿌듯함을 안겨주는 잊지 못할 거대 행사다. 연말에 주최하는 색소폰 연주회는 더 많은 신경이 쓰이는 행사다. 색소폰 연주회가 끝나면 일 년을 끝냈다는 후련함과 뿌듯함이 가득한 행사다. 언제 전시회를 해보고, 연주회를 해 볼 수 있단 말인가?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겐 뿌듯하고도 대견한 일이다. 하지만 색소폰 연주회도 똑같은 심정이다. 매년 벌어지는 행사에 찾아 준 지인들에겐 감사함에 더 많은 미안함이 섞여 있다. 수채화 전시회, 알려야 할까? 말아야 할까? 아직도 망설이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