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덕향을 찾아서, 뒤뜰의 더덕 줄기)
새벽 4시 반, 부지런한 이웃집 닭이 잠을 깨운다. 왜 그렇게 부지런한지 이 시간이면 여지없이 목을 길게 늘이기 때문이다. 새 빛이 내려왔다는 울음이다. 저만 알았다는 듯이 길고도 쉼이 없는 울음이다. 앞산의 신선한 맛을 보고 위해 창문을 열었다. 언제나 신선한 녹음이 있고, 싱그러움이 있는 앞산이다. 창문을 열자 신선한 공기에 섞여 나는 향기, 앗 하며 깜짝 놀랐다. 공기 속에 숨어 있는 향긋함의 정체는 요즘 들어 날마다 찾아오는 더덕 냄새다. 야, 더덕 냄새가 이렇게 향기로울 수 있구나! 이맘때쯤이면 언제나 맡는 냄새지만, 아침 공기에 담긴 맛은 전혀 다르다.
시골에 자리를 잡고 이것저것을 여기저기에 심었다. 꽃도 심고 나무도 심었으며, 잔디도 정성껏 가꾸고 있다. 여기에 빠질 수 없었던 것이 더덕이었다. 순전히 아마추어 농부이니 전문성도 없고 지식도 없다. 무조건 심어 놓으면 자란다는 무식함(?)을 앞세워 이것저것을 심었다. 재래시장에 들러 씨 더덕을 사다 심기로 했다. 3천 원어치를 달랬더니 너무 많은 씨 더덕이다. 이렇게 저렴한가? 왜 이렇게 많은가? 깜짝 놀라 한 움큼 덜어내고 50여 뿌리를 집 뒤 언덕에 심었다. 햇살이 있는 쪽은 물론이고 음지쪽에도 심었다. 하지만 햇살이 없는 곳에 식물이 살아남을 수 있으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같은 날에 심은 고추도 심어진 장소에 따라 다르다. 햇살이 풍부한 곳에 자리한 고추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열매가 달린다. 하지만 햇살이 부족한 곳에 자리 잡은 고추는 잎만 무성하다. 도대체 열매는 보이지 않는다. 열매가 달려도 길쭉하기만 하고 살이 없다. 붉은빛은 볼 수가 없고, 시름시름 앓다 떨어지고 만다. 햇살이 풍부한 곳에 자리 잡은 것은 투실투실하게 살이 찌고, 빛깔에 윤기가 흐른다. 금방 붉은빛을 보여주는 신기함에 놀라고 만다. 역시 햇살을 외면하고는 살 수 없는 자연임을 금방 알려준다. 뒤뜰에 심어진 더덕도 예외일리 없다. 햇살이 조금이라도 비추는 곳엔 길게 줄기를 뻗었지만 그늘에 자란 것은 어림도 없다.
더덕, 초롱꽃과에 속하는 다년생 덩굴식물로 사삼(沙蔘)이라고도 한다. 뿌리에 작은 혹들이 더덕더덕 붙어 있어 더덕이라 한다는 더덕, 더덕이 많아 이름이 붙여진 섬이 부산의 가덕도이기도 하다. 창문을 통해 훅 넘어온 더덕의 근원지는 어디일까? 구름이 끼고 습기가 많은 날은 더덕향이 집 주위로 나지막이 풍겨온다. 뒤뜰에 심어진 더덕에서 풍겨오는 향기다. 오늘도 어김없이 향긋함을 쏟아내고 있다. 뒤뜰로 나가 코를 킁킁거리며 이곳저곳을 거닌다. 언덕에서 배어 나오는 향긋함이 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덕을 심었으면 키워서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냄새만 맛고 있다. 참, 이상한 농법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하나 둘인가?
뒤뜰에 심어진 하얀 도라지가 그렇고, 커다란 잎을 자랑하는 토란잎이 그렇다. 옆에 자란 생강은 또 어떠한가? 하얀 꽃이 신기해 심어 놓은 것이 백도라지요, 넓은 잎이 보고 싶어 심어 놓은 것이 토란이며 뾰쪽한 잎이 신기해 심어 놓은 것이 생강이다. 가끔 산에 올라 만나는 하얀 도라지 꽃이 있다. 맑은 하얀색으로 피어 있는 백도라지 꽃에 이슬이 맺혔다. 여기에 햇살이 내려온 모습은 숨을 멎게 한다. 어찌 도라지 꽃을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뒤뜰에 있는 커다란 토란 잎은 어떠한가? 오래 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토란이다. 춥기도 그렇게 추울 수 없는 겨울이 지나고 새해가 왔다는 설날이다.
어머니는 부엌 구석에 숨겨진 토란을 꺼내신다. 모질게도 추운 겨울을 무사히 넘긴 토란을 떡국에 넣기 위함이다. 미끌하지만 구수함을 주던 떡국 맛이었다. 어머니는 이 거대 행사를 위해 해마다 토란을 심어야 했다. 마당 구석에 심어진 토란, 작은 싹이 돋아나더니 줄기가 올라왔다. 여기에 커다란 잎이 몸집을 불렸다. 점점 커지던 잎에 이슬이 내렸다. 널찍한 잎 중앙으로 모인 이슬은 어디로 갈지 중심을 잃었다. 마침 찾아온 바람이 몸을 흔들기 때문이다. 바람결에 따라 일렁이는 이슬이 어지럽기 이를 데 없다. 한참의 흔들림으로 중심을 잃은 이슬은 기어이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만다. 아스라이 추억을 주던 토란잎은 곳곳에서 만났다. 다시 만난 곳은 거부할 수 없는 맛을 주는 육개장이다.
널찍한 솥단지에 갖가지 양념이 섞여 펄펄 끓는다. 붉음과 푸름이 어우러진 모습이다. 오랜만에 만날 수 있는 초등학교 운동회가 열리는 운동장 구석이다. 포장이 드리웠고 마을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곳곳에 막걸리잔이 오가는 운동회날이 동네잔치 날이다. 펄펄 끓는 솥단지 안에 자리 잡은 것이 굵직한 토란줄기였다. 쫀득함에 아삭한 식감을 주는 토란대가 있고, 철부지들의 우산을 대신하던 토란잎이었다. 먹거리 역할을 했던 토란을 심어 놓고 잎을 바라보고 있다. 잎을 보기 위해 토란을 심었고, 잎이 신기해 생강을 땅에 묻어 놓은 시골집이다. 둥글둥글한 생강이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생강 잎이다. 어찌도 저렇게 모습이 다를까? 여기에 하얀 도라지가 꽃을 피웠고, 그 위를 오가는 것이 더덕 향이었다. 근원지는 뒤뜰도 있지만 앞산에도 여러 곳이 있다.
뒤뜰에서 나와 마을 길을 걷는다. 여기서도 외면할 수 없는 더덕 향기다.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무리 코를 벌름거려도 찾을 수가 없다. 한 곳에서 나와야 찾기가 수월한데, 여러 곳에서 나오는 향에 방향을 잡을 수 없다. 도랑으로 내려가 산아래를 살펴보고 이웃집을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향이다. 코를 벌름 거리며 동네길을 오간다. 긴 여운이 남는 더덕향을 맡기 위해서다. 도저히 찾을 수 없는 더덕 향기, 산 아래에서 풍김은 알 수 있지만 어느 곳인지 알 수는 없다. 수풀이 풍성하게 우거져서다. 숲이 우거진 곳에서 향이 나길 다행이다. 혹시, 누군가의 눈에 띄면 남아 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다. 요즈음에 날마다 더덕향을 맡으며 산다.
새벽에 만난 더덕 향을 온종일 맡으며 사니 말이다. 더덕 향이 오가는 시골집엔 하얀 도라지꽃이 피어 좋다. 어떻게 저렇게도 하얗게 필 수 있을까? 몇 해 전 이웃이 건네준 씨 도라지가 큰 것이다. 이웃이 건네준 것은 도라지뿐이 아니다. 몇 개의 토란도 울을 넘어왔다. 아내는 정성껏 심어 놓고 아침, 저녁으로 물을 준 토란이다. 제법 커다랗게 자란 잎이 오래 전의 추억을 불러준다. 여기에 뾰쪽함을 드러낸 생강, 생강 잎이 신기했다. 둥글둥글한 생강과는 다르게 저렇게도 뾰쪽한 잎을 가지고 있었단 말인가? 참, 희한한 초보 농부의 농법이다. 더덕을 먹기보단 향을 즐기고, 도라지는 꽃을 보며 좋아한다. 토란을 보며 어머님을 추억하고, 생김과 다른 생강 잎에 지난 삶을 바라보는 어설프고도 작은 농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