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이야기, 집 앞 도랑물)
눈이 뜨여 본 시계는 새벽 3시 30분, 왠지 밖이 시끄럽다. 앞 도랑의 엄청난 물소리와 뒤뜰에서 나는 빗소리다. 정신을 차리고 들어 보니 늦은 장맛비 소리다. 문명의 혜택이 귀를 막아주는 시골살이, 이중창을 닫으면 깜깜 절벽이었다. 밖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전혀 알 수 없다. 분수를 모르는 이웃 닭이 잠을 깨워 문을 닫고 자는 골짜기다. 오늘은 예사롭지 않은 빗소리가 잠을 깨운 것이다. 깜짝 놀라 창문을 열자 장대 같다는 말이 맞는 말이다. 눈을 둘 수 없을 정도의 빗줄기가 앞을 가로막는다. 얼른 옷을 입고 이리저리 분주해진다.
열어 놓은 창문을 모두 닫아야 한다. 성급한 빗줄기가 들어올까 걱정이다. 가까스로 문을 닫고 들어선 방안, 아직도 들려오는 빗소리가 가슴을 뛰게 한다. 지난밤에 보았던 모습들이 아른거려서다. 내로라하는 서울거리, 그중에서도 강남의 물폭탄 소식이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그들의 삶이 순식간에 꼼짝을 못 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자연의 위대함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그렇게도 방비가 없었다던가? 대선과 지방선거가 지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별이라도 따 줄 것 같이 시민을 위한다는 그들의 목소리가 가시기도 전이다. 우리 정치꾼들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서민들의 삶에 멍들게 함을 보면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밤이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안고 누운 잠자리에 잠이 올리가 없다. 컴퓨터를 켜고 이것저것을 뒤적이는 시간이 새벽 4시가 넘어가고 있다. 창문 너머에 들려오는 빗소리는 아직도 요란하다. 이젠, 그만 왔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언제나 힘겹고 피해를 보는 것은 서민들이기 때문이다. 낮은 지대에 사는 사람이 그러하고, 위험한 지역에는 언제나 그들 차지이기 때문이다. 반지하에 몸을 뉘고 사는 사람들, 컴컴한 방 안에서 빗소리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빗소리는 잦아들 기미가 없다. 먼산에서 사선으로 쏟아붓는 빗소리가 요란한 새벽이다. 보잘것없는 인간들이 거들먹거림을 비웃나 보다.
날이 밝아지면서 얼른 밖으로 나서자 사방이 물난리다. 작은 텃밭에 물이 가득하다. 물이 나갈 곳이 없는 텃밭이었다. 얼른 호미를 찾아 물길을 터주고, 뒤뜰로 나서자 물이 가득하다. 장맛비가 쏟아지는 아침, 어떻게 해 볼 방법을 찾을 수 없다. 할 수 없이 삽을 들고 이곳저곳에 물길을 터 주는 수밖에 없다. 삽을 들고 어슬렁거리지만 감당할 수 없는 물줄기다. 어서 비가 그쳐 주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앞 도랑은 흙탕물로 가득하다. 쫑알거리던 도랑물이 어느새 왁자지껄 난리가 났다. 몇 년 만에 들어보는 도랑물의 아우성이다. 오래전, 시골집 작은 도랑물이 내 지르는 소리다. 싱그러움이 가득한 시원하고도 명쾌한 소리였다.
가느다란 도랑을 타고 내리는 도랑물 소리, 장맛비가 준 소리였다. 길게 자란 풀들이 물의 힘을 이길 수 없다. 늘어지게 몸을 뉘인 풀들은 물살에 몸을 맡기고 있다. 하루 종일 도랑물에 몸을 맡기고 일렁인다. 가끔은 도랑물이 넘치며 멀쩡한 길을 허물고 말았다. 허물어진 길을 따라다니던 철부지들이었다. 서서히 비가 주춤하는 사이엔 할 일이 있었다. 송사리를 찾아서, 붕어를 찾아 나서는 일이었다. 한동안 뒤 울을 지키고 있던 얼기미가 역할을 할 때가 온 것이다. 얼기미와 작은 양동이를 들고 도랑을 따라나선다. 물길 따라 누운 풀숲 밑에 얼기미를 대고 위에서부터 발을 굴러댄다. 기어이 발에 얼기미에 도달할 즈음, 얼른 얼기미를 들어내면 붕어가 있었고, 미꾸라지가 있었으며 송사리가 있었다.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놀이였다.
고기 잡는 재미에 옷이 젖는 줄도 모른다. 장맛비의 시원함이 온몸을 흔들어 준다. 한동안의 놀이 끝에 그릇이 그득해지면 집을 찾는다. 언제나 매운탕을 좋아하시던 어머니, 비가 오면 고기가 많이 잡힌다 하셨다. 새물을 따라 고기가 올라온다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비가 그치면 늘 고기를 찾아 나섰던 이유다. 어머니는 언제나 민물고기를 좋아하셨다. 어머니가 좋아하셨기에 고기잡이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다. 얼큰한 매운탕을 좋아하셨고, 언제나 칭찬이 곁들여졌다. 감자와 풋고추를 넣어 끓인 얼큰한 매운탕, 언제나 맛있게 드시던 어머니였다. 잊을 수 없었던 장마철의 고기잡이, 도랑물이 그득해지면서 떠오르는 그리움이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도랑물 소리는 소란스러웠다. 오래전에 만난 경쾌함은 오간데 없다. 아침부터 하염없는 장맛비는 그칠 줄 모른다. 산을 타고 넘어오는 장맛비가 지붕을 따라 내려온다. 산새들도 자취를 감추어 잔잔한 골짜기다. 산 짐승들은 어디로 몸을 피했을까? 이웃집 닭도 빗소리에 겁을 먹었나 보다. 빗소리를 빼곤 조용한 골짜기에 불어난 도랑물만 아우성이다. 서러움 속에 삶을 잃은 소리도 같고, 서민 삶을 업신 여김에 질책 소리도 같다. 비가 와야 사진이 잘 나온다는 헛소리도 들린다. 장맛비가 난리를 피우는 중에 맛난 음식을 자랑하는 철부지 어르신도 있다. 소양강만 안전하면 된다는 소갈머리 없는 인간도 내가 뽑아 주었음에 더없이 슬픈 장맛비 소리다. 왜 그랬을까?
언제 비가 그칠지 두렵기만 한 아침이다. 으르렁거리는 도랑물은 거침이 없다. 하지만 오래 전이 맑고 투명했던 그 소리가 아닌, 아우성으로 들리는 것은 왜 일까? 장맛비 내리는 아침,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진다. 삶이 그러하고 세상이 그러하니 투명한 소리일 수 없나 보다. 같은 물소리가 밝기도 하지만, 투박해지기도 함은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이리라. 언제나 모두 웃는 삶이 될 수 있을까? 갑자기 허무맹랑한 생각에 웃고 마는 아침이다. 밝은 햇살이 찾아오는 날, 모두 웃는 낯으로 대할 수 있는 하루이면 좋겠다. 우렁찬 도랑물 소리가 울부짖음이 아닌 명쾌한 삶의 소리였으면 좋겠다. 아직도 도랑물은 으르렁거리며 골짜기를 호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