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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Aug 30. 2022

창문 넘은 새벽 공기는 그리운 추억이었다.

(새벽 공기를 맞으며,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눈을 비볐다. 일어나긴 해야 하는데 몸이 무거운 새벽이다. 먼동이 트려면 아직 인가 보다. 왜 이렇게 눈이 떠지지 않나? 어린것이 새벽부터 눈을 비비고 일어나기엔 너무 이른 아침이다. 하지만 일찍 일어나야 한다.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감나무 밑 수풀을 뒤져도 소용없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모두 주워가기 때문이다. 이른 봄철이 지나 감나무엔 감이 열리기 시작했다. 벌써 한 여름이 되었으니 감은 제법 몸집을 불렸다. 소금물에 우려내면 떫은맛을 없애고 먹을 만한 크기가 되었다. 여름이면 새벽부터 이웃집 아주머니와 눈치싸움을 해야 한다. 눈을 뜨기 어렵지만 새벽부터 두터운 눈꺼풀과 씨름을 해야 하는 이유다. 


서둘러 나선 뒤뜰 감나무 밑, 얼마나 사람들이 드나들었는지 울타리가 허전하다. 울타리라 해야 여기가 울타리임을 보여주는 정도지만 말이다. 서둘러 풋감을 줍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뒤뜰 감나무에서 떨어진 풋감을 줍기 위함이다. 언제나 같은 새벽 공기지만 맛은 다르다. 야, 새벽 공기 맛이 이렇게 달콤하구나! 새벽에 맞이하는 공기 맛은 더 새롭다. 아, 이렇게도 싱그러울 수가 있을까? 신선한 공기 맛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새벽이다. 서둘러 감을 줍는다. 수풀을 헤쳐보면 여기저기에 감이 떨어졌다. 어제 밭일이 고단했는지 이웃집 아주머니는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다 싶은 생각에 서두르는 발길이다. 

골짜기에 신선한 밤이 내려왔다.

서둘러 수풀을 헤치고 어린 감을 줍는 손길, 누가 올까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아직은 인기척이 없는 새벽이다. 서둘러 수풀을 헤집는 손이 바쁘기만 하다. 어서 큰 감나무 밑을 지나 이웃집 감나무 밑을 차지해야 한다. 드디어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한다. 감나무 밑이 밝아지니 훨씬 수월하다. 들고 간 소쿠리에 풋감이 그득하다. 농사일로 몸을 일으키기 힘든 어머니가 좋아하실 만큼 풋감이 모아졌다. 미지근한 물에 소금을 적당이 넣는다. 떫은 감을 넣고 하루를 견디면 먹을 만한 주전부리 감이 된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풋감을 찾으러 나선 새벽 공기는 언제나 싱그럽고 매력 있는 맛이었다. 같은 공기 같지만 맛이 달랐다. 오묘하고도 싱그러운 맛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새벽이었다.  


이른 새벽에 눈을 떠다. 다시 잠을 자려 뒤척이지만 가망이 없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 창문을 열었다. 상큼한 공기가 창문을 넘어왔다. 오래 전의 추억 속 새벽 공기 맛이다. 야, 오래전 울타리를 넘나들며 맛보던 공기 맛이다. 싱그러움에 새로움이 있는 공기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리움과 추억 속의 맛이 새벽부터 찾아온 것이다. 시골에 집을 마련하고 뒷산을 오고 간다. 나물을 뜯으러도 가고, 산을 구경삼아 오르기도 한다. 이른 새벽 몸에 스치는 공기 맛, 피부에 닿는 느낌이 다르다. 이렇게 신선할 수 있을까? 얼른 옷소매를 걷고 공기 속으로 팔을 들이민다. 웃통을 벗어 버리면 좋을 듯한 상쾌함이다. 여기에 나물까지 얻을 수 있으면 더 무엇을 바랄 것인가? 새벽에 만났던 신선함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가을이 오고 있다.

오래전부터 드나들던 외국여행, 친구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배낭을 메고 수십 나라를 드나들었다. 어렵게 여행지를 결정하고 세부 계획을 세운다. 날짜가 정해지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는 날, 새벽에 일어났다. 덜덜거리는 캐리어를 끌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기분, 피부에 닿는 공기 맛이 다르다. 온몸으로 넘어오는 바람이 신선하고 설렘을 준다.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 나서는 설렘에 산뜻한 공기까지 맛볼 수 있다. 여행지의 설렘보다 피부로 느끼는 맛이 훨씬 좋았다. 여행의 설렘에 푸름의 공기 맛이 가슴을 두드린다. 아내와 서둘러 걷는 발걸음이 그렇게도 달콤했다. 야, 신기한 공기 맛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고, 뼛속까지 남아 있었다. 서서히 여름이 익어가는 골짜기다. 


앞산에 밤나무가 서서히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다시 싱그러운 공기 맛에 설렘을 맛볼 수 있는 계절이다. 동네를 가득 메운 밤나무 향이 사라지고 밤꽃의 시체는 대지를 덮었다. 서서히 밤나무에 푸름이 뭉치기 시작했다. 초록의 뭉치가 늘어나더니 벌써 바람 그네를 타고 있다. 싱그러운 저녁, 수채화를 마치고 골짜기로 스며들었다. 시원한 바람이 산골짜기에 가득하다. 앞산에 머문 눈길에 푸름 뭉치가 들어온다. 벌써 아기 주먹만 한 밤송이가 어른거린다. 가을을 채워 줄 밤송이가 몸집을 불린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알밤을 주으러 가는 발걸음, 설렘과 시원함이 함께하는 발걸음이었다. 가을이면 다시 만날 수 있는 오래전 추억의 공기 맛이다. 

네팔 사랑콧 언덕에서 만난 웅장한 히말라야

얼른 일어나 앞산으로 향한다. 앞산으로 가는 가느다란 도랑을 건너야 하는데, 도랑 위에는 소박한 나무다리가 있다. 간신히 넘어선 나무다리는 오래 전의 울타리였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나무다리다. 동네를 있게 한 도로와 앞산을 이어주는 통로다. 울타리를 무색게 하며 드나들던 길이 아닌, 사람이 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나무다리다. 나무다리를 건너는 순간부터 마음이 설렌다. 시원한 공기와 함께 오늘은 얼마나 알밤이 떨어져 있을까? 밤을 먹으면 얼마나 먹을까? 두어 톨이면 족한 알밤이다. 시원함과 설렘을 맛보며 건너는 다리가 있고, 아내가 좋아하는 알밤이 있다. 어머님이 좋아하시던 풋감이 아내가 좋아하는 알밤이 된 것이다. 소쿠리에 그득한 풋감을 좋아하셨던 어머니, 주머니에 가득한 알밤은 아내가 좋아한다. 가을이 되면 할 수 있는 즐거운 놀이가 밤을 줍는 일이다. 


초봄부터 여름까지 밥상을 가득 메워준 나물이 있었다. 홑잎 나물이 있었고 고사리가 있었으며, 두릅이 있었다. 시원한 새벽 공기를 맞으며 얻어진 보물이었다. 여름날에 상큼한 더덕향이 있다면, 가을이면 주머니를 가득 채워줄 알밤이 있다. 여기엔 함께하는 신선하고 깨끗한 공기가 있다. 오래전에 감나무 밑에서 만났던 그 맛, 아내와 세계여행을 하면서 만나곤 했다. 인천을 찾아가며 만났고, 네팔의 사랑콧 언덕에서도 만났다. 시원하고도 달콤한 공기 맛이다. 이젠, 골짜기에 자리 잡고 늘 만날 수 있다. 잔디밭에 잡초를 뽑으며 만날 수 있고, 나물을 뜯으며 만날 수 있었다. 가을이 영글면 알밤을 주으며 만날 수 있는 신선함이 또 있다. 아침부터 창문을 넘어온 신선한 공기가 만들어준 오래 전의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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