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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Jul 06. 2022

50년 만의 외출은 그리움이었다.

(학창 시절의 그리운 추억)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 앉아 '수학의 정석'을 풀었단다. 오래전, 아주 오래전 고둥학교 친구의 나에 대한 기억이다. 이름을 듣고 얼굴과 몸짓을 기억하고 있던 친구의 소중한 추억이었다. 자리를 같이 한다는 친구들 이름엔 기억이 뚜렷하기도, 흐릿한 기억 속의 친구도 있다. 눈을 감고 기억을 끄집어 내보는 오래전 친구들 모습이다. 키가 작아 앞에 앉아 있던 친구, 큰 키에 뒷줄에 앉아있던 친구도 있었지만 마음만은 깨끗했던 시절이었다. 공부밖에 모를듯하던 친구들의 오래전 기억들이 쏟아져 나오는 자리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50년이 되어간다. 가끔 동기들의 모임도 있었고, 운동을 하면서 만나 온 친구들도 있다.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친구들은 가끔 보기도 했고, 경조사에서도 종종 만나왔다. 한 친구가 같은 반 친구들의 모임을 추진해 보면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나름대로의 소모임은 있었지만 친구들의 늦은 만남은 아쉬움도 있었다. 졸업 30주년 모임, 동문 체육대회 등의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오래전 추억을 되새기는 조촐한 자리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자리가 마련되었다.


시간에 맞추어 들어선 곳은 아담한 중식당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기억이 되살아 난다. 늙어가는 청춘의 기억력이 점차 깨어나는가 보다. 순식간에 흐릿한 뇌세포가 살아났다. 악수를 하며 나눈 이름을 듣고, 맞지! 그렇다! 야! 오랜만이다, 얼굴은 그대로네!. 온갖 수식어가 다 모아진다. 오래 전의 교실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조밀조밀한 책상에 붙어 앉아 문제를 풀었다. 뛰고 따라가며 장난을 치다 각자 떠났고, 시간은 흘러갔다.

뜰에 핀 나리가 환하게 웃고 있다.

모두가 살아가기 바쁜 친구들, 다양한 방면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친구들이다. 국내외 유명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혁혁한 업적을 남긴 유명인들이다. 의학계와 언론계, 대학교수 그리고 국내외 유수의 기업에서 내로라하는 수재였던 친구들과 함께한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자리다. 은퇴 후에 제2의 삶을 즐기는 친구들도 있고, 아직도 현역에서 젊은이들과 어깨를 겨루는 친구들도 있다. 힘겨운 정치 길에 접어들어 도백의 자리까지 오른 친구도 함께한 자리다. 


친구가 손수 만든 고귀한 술 한잔으로 얼큰한 자리, 거기에 세칭 '건배사'라는 것이 빠질 수 없다. 언제나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는 친구가, '적반하장'이란다. 적당한 반주는 하느님도 장려한단다. 아무 거리낌도 없고, 순수함에 젖어 있는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가 가득해진다. 고3의 고단한 길, 누구 하나 섣불리 할 수 없었던 시절이다. 공부하기 바쁘기에 옆 친구에 눈길을 줄 여력이 없을 듯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야기가 수북이 남아 있었다. 운동하던 이야기며, 오래 전의 소소한 이야기로 끝날 줄을 모른다. 사회생활에 영원한 현역인 친구, 고상한 취미로 삶을 살아가는 친구들이다. 


긴 세월 속에 갖가지 세파에 찌들었겠지만 추억 속의 고등학교 시절로의 외출은 순수했다. 술 한잔으로 허허거림이 부담이 없고, 맑은 유리 같았던 그 시절이 고즈넉이 다가오는 저녁이다. 불그스레한 얼굴에 희끗한 머리칼이 잘 어울린다. 넓게 자리 잡은 이마가 시원스럽고, 길게 패인 주름은 넉넉한 세월의 훈장이었다. 스스럼없이 어깨동무를 하고, 가슴으로 끌어안음이 짠한 그리움으로 전해온다. 아직도 건장한 모습으로 나름대로의 뜻과 의미를 담고 살아가는 자랑스런 친구들, 50년 만에 소중한 기억의 외출은 그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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