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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Nov 26. 2022

한 박자 반, '대~한민국!'의 계절이 돌아왔다.

(월드컵의 시간이 왔다, 8강전의 현장)

한 박자 반, '대~한민국!'이 돌아왔다. 월드컵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대한민국 위대한 영웅들의 파이팅을 기대하며 밤잠을 설치는 계절이다. 축구하면 2002년, 가슴 설레던 2002년의 노래는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노래 '대~한민국!'이다.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가를 달린다. 모두가 힘겨운 언덕을 오르느라 여념이 없다. 느닷없이 한 친구가 '대~한민국!'을 외친다. 말조차 하기 힘들어하던 사람이 순간적으로 따라 외친다. '대~한민국!'이라고. 느닷없이 울리는 '대~한민국!'은 따로 준비가 필요 없다. 음을 가다듬을 필요도 없는 대중가요가 되어 아직도 회자되는 으뜸, 대한민국 민요가 되었다.


2002년 월드컵, 두고두고 역사에 남을 대 사건이었다. 세계 시선이 모아진 월드컵 경기에서 대한민국이 4강이라는 신화를 쓴 대회였다. 온 나라가 하나가 되어, 한 곳을 바라보던 다시는 올 수 없는 경사이기도 했다. 정치가 필요 없었고, 빈부와도 상관없었다. 늙고 젊음은 없어진 지 오래였고, 좌우가 필요 없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온 나라가 붉은색으로 물들였던 대회, 2002 월드컵 대회는 우리 가족에게도 특별한 대회이기도 했다. 예매하기가 그렇게 어렵다던 8강행 티켓을 구입할 수 있는 행운이 있었고, 그 경기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대회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던가? 그것도 16강에서 8강을 겨루는 경기, 이탈리아전이 아니던가?

아내와 딸 그리고 아들과 함께 대전 월드컵 경기장으로 향했다. 아내와 함께 맞벌이를 하던 시절, 절묘한(?) 핑계로 조퇴를 했다. 딸은 대학생 신분이라 자유로웠지만, 아들이 고3이던 시절이다. 대학입시에 정신이 없어 기숙사에서 대입을 준비하던 때이다. 담임선생님께 공손히 말씀드려보라는 말에 담임선생님이 선뜻 허락해 주셨단다.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있을지 모른다 하시며 두말없이 허락하셨단다. 담임선생님이 멋쟁이라는 말을 하면서 달려간 대전 월드컵경기장, 이탈리아와 8강을 두고 만난 경기다. 이겨야만 8강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야, 사람들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구나! 운동장에 들어서며 온 몸에 전율이 흐름을 확인하는 날이었다. 


입장요금이 130,000원 정도로 3등석, 가족이 4명이니 50여만 원의 거금을 스스럼없이 투자했다. 근처 대학교에 주차를 하고 찾아간 월드컵 경기장은 붉은 물감으로 가득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들뜬 기분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옆사람이 식구였고 이웃이었다. 멀리서 붉은 악마의 함성 소리와 눈에 띄는 현수막, 'AGAIN 1966'이 선명하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16강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올랐던 기억을 되살리자는 의미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기발함을 한껏 담은 문구에 입추의 여지없었던 사람들의 함성은 예상치 못한 광경이었다. 너와 나가 따로 없었고,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대한민국이었다. 이렇게 하나로 뭉친 대한민국, 무엇이라도 해 낼 수 있는 나라였다. 눈물 나는 경기를 보고 돌아온 현실, 이튿날 출근하자마자 난리가 났다. 어제 어디 갔다 왔느냐 한다.


수많은 인파에 밀리면서도 '대~한민국!'을 외쳤고, 사고하나 없는 거대한 굿판이었다. 늦은 밤까지 응원의 목소리가 가득했던 밤을 뒤로하고 출근하자마자 아는 사람한테 전화가 왔다. 8강에 오른 것보다 궁금한 것은 어제 월드컵 경기장에 갔었느냐는 것이었다. 어떻게 알았느냐는 말에 TV 중계방송에 얼굴이 나왔단다. 이탈리아를 이기고 난리가 났던 시간대였다. 옆에 누군지도 모르고 끌어안으며 소리를 질렀다. 아내도 옆사람과 손을 잡고 난리를 치는 중에 TV 화면에 잡히고 만 것이다. 월드컵 경기를 보려고 이런저런 핑계로 조퇴한 것이 탄로 난 것이다. 시아버지 제사를 핑계로, 가정사의 절묘한 핑계는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지나가고 말았다. 모든 것이 용서되고, 웃음으로 해결되는 2002년이었다. 

부탄인의 성지, 탁상 곰파(수채화)

가슴마저 얼얼한 2002 월드컵이 가라앉고 일상으로 돌아온 현실, 친구와 함께 부탄 여행을 떠났다.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었던 나라였다. 첫눈이 오면 임시 공휴일이라는 나라, 부탄엔 어떤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을까? 설렘을 안고 찾아간 부탄의 탁상 곰파, 부탄인들의 성지였다. 탁상 공파의 아슬아슬한 절집에서 한국인들을 만났다. 한 무리의 한국 사람들, 친구가 느닷없이 '대~한민국!'을 외쳤다.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호응해 주며 박수를 친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사건이다. 예상도 하지 못했고 준비도 없었던 순간이다. 축구공 하나가 대한민국을 이렇게 바뀌어 놓고 말았다. 2002년 월드컵의 대단한 위력을 실감하던 부탄 여행이었다. 


오래전부터 음악에 무지한 사람이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했다. 특히 어려운 박자, 그중에도 반박자와 한 박자 반은 어려웠다. 박자를 터득하려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박자와 한 박자 반은 늘 어려웠다. 어떻게 하면 반이라는 박자를 극복할 수 있을까? 쿵! 하면 반 박자라는 말에 어리둥절하던 시절, '대~한민국!'이 등장했다. 어렵게 생각하던 한 박자 반에 '대~한민국!'이 등장한 것이다. 박자에 답답해하던 선생님이 한 박자 반에 들고 나온 '대~한민국!'이다. 우리의 삶의 곳곳에 숨어 있는 '대~한민국!'. 반박자 속에도 들어 있는 '대~한민국!'은 2002년이 남긴 대한민국의 위대한 민요가 되었다. 


다시 찾아온 월드컵의 계절, 신남과 설렘이 기다리고 있다. 위대한 우리의 영웅들은 어떤 모습으로 월드컵 이야기를 써 나갈까? 사우디와 일본이 먼저 축배를 들었다. 이젠 대한민국의 차례였다. 조별 첫 경기는 우승후보 중 하나라는 우루과이와 비기는 승리 아닌 승리를 맛봤다. 우루과이와 대등 또는 우세 속에 무승부라는 대단한 결기를 했다. 남은 경기에 최선을 다해 당당한 걸음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먼 열사의 나라, 카타르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우리의 위대한 민요가 메아리 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도 '대~한민국!'이 울려 퍼지며, 온갖 아픔과 갈등이 녹아드는 멋진 2002년이 다시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한민국의 위대한 영웅들의 파이팅을 외쳐본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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