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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Dec 23. 2022

산타 할아버지는 부잣집에만 오셨다.

(나의 크리스마스, 눈이 온 정원)

한 해가 거의 마무리되어 가는 12월 말, 조금은 야속하기도 했었다. 국민학교 시절 그리고 중학교시절의 겨울 방학은 늘 12월 24일이었다. 왜 12월 25일은 방학 중에 있을까? 쉬는 날이 방학에 포함되어서였다. 조금은 야속했던 12월 25일이지만 기다림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과 어림도 없다는 허탈함이 반반인 크리스마스 선물 때문이었다. 12월은 어김없이 하얀 눈이 내렸다. 학교를 오가기도 힘겨웠던 눈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많은 눈이 내린다. 하루도 빠짐없이 내리는 눈, 예쁘기도 하지만 눈을 치우기가 버겁기도 하다. 


부산에 사는 손녀가 그림을 그려 보냈다. 늘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손녀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릴 것을 찾아 나섰다. 특히, 공주 그리는 것을 좋아해 수백 장은 그려냈을 것이다. 할아버지 집에 오면 슬며시 할아버지 서랍을 연다. A4용지를 꺼내기 위함이다. 귀여운 손녀에게도 며칠 전 코로나가 찾아왔다. 어린것이 얼마나 아플까 걱정했지만 잘 견뎌내고 있다. 딸 아이기 일하러 나간 사이 홀로 집을 지키다 그림을 그려 할아버지한테 보낸 것이다. 매일같이 전화를 주고받기에 자랑삼아 보냈다. 할아버지가 도와줄 수는 없을까? 크리스마스가 오고 있기에 선물을 이야기했더니 시큰둥하다.

몸이 불편하니 선물도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산타할아버지 선물을 받고 또,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부탁했던 손녀였다. 예쁜 인형을 원했었고 가끔은 장난감을 원하기도 했었다. 올해는 가방이 낡아 4학년이 되는 기념으로 가방을 원했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가방을 사준다는 말에 설 때 사줘도 된단다.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반응이 없어 선물의 비밀을 알았나 생각했지만, 아직은 알면서도 속아주는 손녀인 듯하다. 선물은 딸아이가 해 줄 테지만, 선물을 줄 수 있는 손녀가 있으니 좋다. 손녀에게 선물을 주는 즐거움이 있고 또 사 달라하니 얼마나 행복한가! 크리스마스 선물, 잊지 못할 가슴속에 숨어 있는 선물이었다. 


아직도 어둑한 아침이다. 아무도 모르게 일어나 방문을 열자 많은 눈이 내렸다. 눈을 헤치고 대문까지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담임 선생님은 산타 할아버지가 대문 앞에 선물을 놓고 가신다고 했다. 아무리 눈이 많이 왔더라도 눈을 헤치고 나가야 선물을 찾을 수 있다. 얼른 일어나 옷을 차려입고 방문을 나섰다. 대청마루에도 하얀 눈이 날려 밟고 가가기 겁이 났다. 뜨락에 내려서자 신발에도 눈이 내렸고 온통 하양의 천지였다. 용기를 내서 신발을 털어 신었다. 새벽바람에 차가운 신발을 신자 발이 깜짝 놀란다. 거칠 것 없이 허리까지 내린 눈을 헤치고 대문으로 향했다. 대문 안까지 하얀 눈이 수북하게 쌓였다.


가까스로 닿은 대문 고리를 열고 대문을 열자 삐그덕 소리가 난다. 살며시 문을 열고 나선 대문 앞에도 하얀 눈이 가득하다. 하지만 대문 앞에는 아무 흔적도 없고, 두터운 흰 눈만 쌓여있다. 누구도 왔다 간 흔적은 찾을 수 없다. 하늘에서 내려왔나? 어디다 숨겨 놓았을까?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눈을 헤집어 봤지만 선물은 찾을 수 없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추위에 밀려 얼른 들어오고 말았다. 누구한테도 물어볼 수 없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어려운 우리 집엔 올해도 외면하고 말았다. 내가 좋은 일을 많이 하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또 가난한 우리 집은 지난해와 같이 오시지 않았나? 

지난해에도 이웃집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오셨다 했다. 삼촌댁인 윗집, 할아버지가 작은 할머니와 살고 계신 집이다. 왠지 우리 집보다는 늘 넉넉하게 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삼촌 집에는 해마다 산타 할아버지가 오셨다 했다. 장난감을 선물 받고 좋아했던 사촌들이었다. 담임선생님은 좋은 일을 하는 아이에겐 틀림없이 선물을 주신다 했다. 웬만하면 엄마 말씀을 잘 듣고, 밤늦게까지 공부도 했다. 엄마와 아버지의 말씀을 잘 들었고, 소풀을 베어 오며 가끔은 나무도 해오곤 했는데. 어디서 무엇부터 잘 못 되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내년에는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할까? 그러면 나에게도 선물을 줄까?


먹고살기도 어려웠던 시골살이, 하루하루 살기가 힘겨웠던 시절이었다. 비탈밭에 곡식을 심고 자갈논을 일구어 근근이 학교를 보낸 부모님이시다. 겨우 기성회비를 내야 했고 수학여행이라는 것도 나에게는 큰 사치였다. 자갈논과 씨름하는 부모님을 두고 여행을 간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힘겨웠던 부모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것을 아시기나 했을까? 담임선생님 말씀에 들떠 있던 철부지, 생각할 수 없는 수수께끼 속 선물의 야속함은 무엇이 잘 못되었는지 속으로 끓여야 했다. 부모님께는 내비치지도 못하는 고민, 산타 할아버지는 부잣집에만 오는 것으로 결론짓고 말았다. 


선물도 주면서 즐거움을 선사받기도 한 아이들은 벌써 성인이 되었다. 가는 세월 속에 손녀가 있어 선물을 주며 즐거웠다. 받으면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이 주는 행복함을 알게 해 준 선물이었다. 손녀도 서서히 자라 12월의 행사를 알아가는 느낌이다. 올해는 아직 알면서도 넘어가 주는 듯한 손녀에게 멋진 가방을 선물해 주어야겠다. 받아서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젠, 주는 즐거움을 가족을 넘어 더 먼 곳으로 넓혀 보고 싶다. 20여 년 전부터 해오는 해외 지원금, 적은 돈으로 더 큰 행복함을 받고 있다. 작은 정성이 처절한 삶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는 소식이다. 저물어 가는 12월, 먼 곳에서 삶에 지친 아이들에게 적은 성금이라도 더 보내야겠다. 산타 할아버지는 부잣집에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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