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의 기억(쿠바인들의 삶)
우리 집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담배를 즐기셨다. 할머니는 대청마루에 앉으셔서 기다란 담뱃대에 담배를 담고 불을 붙여 힘겹게 연기를 빨아들이시곤 했다. 가까이서 들어보면 힘겹게 담배를 빨아들이는 소리가 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뻑뻑거리는 소리가 나기도 해 답답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속이 불편하시다면서 가끔 담배를 피우셨는데, 아버지는 언제나 소리 없이 담배를 말아 불을 붙이셨다.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담배농사를 짓는 사람이 남긴 담뱃잎을 말려 종이로 손수 말아 피우셨으니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는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담배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말아 피울 종이가 있어야 하며 성냥이 있어야 했다. 어쩐 일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그것이 이상하다거나 이채롭게 보는 일도 없었다.
주변 환경이 모두 담배를 피우는 분위기였기에 항상 담배가 담긴 담배통이 있었고, 재떨이가 준비되어 있다. 주변에 담배에 관한 많은 물건들이 준비되어 있어 호기심이 많았던 어린아이들은 담배에 관해서 상당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 맵고도 냄새나는 연기를 코로 나오게 하는 것도 신기하고, 매콤한 연기를 참으며 삼킨다는 것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런 호기심 때문에 가끔 어른들 몰래 담배를 말아 피워보지만, 어른들의 흉내는 도저히 낼 수가 없었고 도리어 기침만 하게 될 뿐이었다.
담배에 대한 폐해 의식도 없었고, 대부분이 담배를 피우고 살았기에 주변에는 언제든지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버스 의자에도 재떨이가 설치되어 있었고, 사무실에도 책상마다 재떨이가 준비되어 있어 언제라도 담배 피우는데 지장이 없었다. 버스에 올라보면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아 언제나 연기가 자욱하고, 사무실 안에도 담배연기가 언제나 가득했었다. 더구나 담배 인심은 너무나 후하기에 모르는 사람한테도 담배 한 대 얻어 피우는 것은 쉬운 일이기도 했다. 비행기 좌석도 앞부분은 금연석이었고, 뒷부분은 흡연석이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오래 전의 이야기이다.
사회적인 건강에 관한 의식도 희박해 담배의 폐해에 대한 홍보나 교육도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라다 보니 담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나도 언제 자라서 떳떳하게 담배를 피워보나를 고대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가 사회에 팽배해 있어 친구들 중에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담배를 피우기도 했던 것을 아이들만 탓하기도 힘들었을 분위기였다.
친구들이나 선배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담배를 사양하다가 대학에 들어가게 되자 담배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학에 입학하자 선배들이 멋진 폼으로 담배를 물고, 하얀 연기를 뿜어내는 모습이 멋과 젊음을 마음껏 누리는 것 같아 보였다. 담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 친구가 어느 날 담배를 물고 나타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임은 언제나 막걸리와 담배가 곁들여진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덩달아 술에 입을 대면서 담배와 가까워진 후로는 나도 모르게 담배 맛을 떨칠 수가 없게 되었다. 술을 한잔하면서 피우는 담배 맛은 떨칠 수가 없었고, 식사 후에 한대 피우는 담배 맛은 언제나 사람을 유혹하는 구수한 맛이었다. 군에 입대를 하고 훈련 후에 피우는 담배 맛은 더 그랬고, 전우들과 어울려 피우는 담배 맛은 언제나 달콤한 휴식을 주었다.
하지만 사회가 서서히 변하면서 담배에 대한 생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담배를 피우고 나서 폐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고, 얼마간의 금연 후에 해보는 운동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한동안 유행이 되었던 마라톤을 하면서 담배를 삼가고 마라톤을 하는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지만, 생각하지 않고 담배를 피운 후에 뛰어 보는 마라톤은 전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참에 담배를 끊어 보자는 결심을 하면서 서서히 금연을 하고자 생각을 굳혔다.
담배를 끊고자 마음을 먹은 것은, 하루에 피우는 양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흡연을 시작한 지 거의 20여 년이 되어서였다. 그렇지만 담배를 끊는 것은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집과 사무실 그리고 차 안까지 가는 곳마다 담배가 준비되어 있었던 것을 치우고 금연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 처음 며칠은 참을만했지만, 며칠이 지나자 서서히 담배 생각이 나기 시작하였다. 참을 만큼 인내심을 발휘하였으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그 당시 많이 있던 재떨이를 찾게 되었다. 혹시, 담배를 피우다 길게 남겨 놓은 것이 없는가를 살피기 위해서이다. 운이 좋으면 장초를 찾아 불을 붙이기도 하고, 담배를 끊고자 잘라 버렸던 담뱃갑을 다시 찾아 불을 붙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담배를 끊는다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살았다.
담배를 끊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을 하다 기어이 담배를 참으며 몇 달을 버티어 냈다. 그래도 술을 마시면 담배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술을 마시며 피워보는 담배 맛은 오래 전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듯하고, 이렇게 좋은 것을 왜 끊으려 고생을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담배를 끊으려 일 년을 끊다, 피우다를 반복하다 기어이 금연을 하게 되었다. 어떤 계기를 만든 것이 아니라 무조건 피우지 말아야겠다는 대단한 각오를 하고 덤벼들었다. 이내 자존심을 생각하면서 담배를 끊고 몇 달이 지나자, 담배를 피워도 맛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이웃에서 담배를 피우는 냄새가 싫고, 멀리서 피우는 담배 냄새도 너무나 싫게 되었다. 담배를 끊고 책상 서랍의 담배, 사무실의 담배와 성냥 그리고 차량 안에 있는 담배와 성냥을 버리고 나니 마음이 그리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주머니가 헐렁하고, 깨끗하기도 했거니와 입에서 나는 기분 나쁜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맡는 담배 냄새 그리고 담배를 피운 나에게서 나는 냄새는 다른 사람들은 어떡했을까를 늘 생각하게 된다. 내가 이웃에게서 나는 담배 냄새가 싫었듯이 그들도 내가 피우는 담배 냄새와 나에게서 나는 냄새가 싫었을 텐데 그것을 알지 못했음이 어리석기도 했다. 나도 흡연 후에 나는 냄새가 싫어 담배를 피우고 언제나 칫솔질을 했으나 남들은 이 냄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담배에 대한 폐해를 국가적으로 인식하고 제도적으로 홍보하여 많은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게 되었다. 이러한 제도적인 지원과 개인적인 의지로 인해 담배를 끊은지도 꽤 오래되었다. 남들이 피우는 냄새를 참으면서 가끔 맡아주기는 하지만, 인간의 삶이란 이런 과정을 통해서 발전하고 진화해 나간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피우던 담배가 나쁘다는 것을 나라에서는 왜 그리 방치하고 있었을까? 그렇게 해로운 담배를 마치 피우기를 장려하듯이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시설을 해주었을까? 곳곳에 재떨이가 준비되어 있고, 그렇게도 흡연실이 준비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 주변엔 아직도 인간에게 해로워 절대로 하면 되지 않을 일들이 너무 많이 있다. 쓰레기 처리 문제, 환경오염을 통한 대기오염, 근래에 자주 거론되는 미세먼지 등 인간의 삶 속에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담배가 인간에게 매우 해롭다는 것을 방심하고 방치했듯이, 환경오염 등도 해로움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담배와 같이 방치하는 오류를 반복한다면, 담배로 인한 해보다도 훨씬 불행한 일들이 인간을 습격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지나친 생각인지 모르겠다.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이 가까이해왔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서서히 감소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담배가 해롭다는 것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국가적인 홍보와 금연운동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인간의 오만으로 인한 환경오염 등도 심각성을 모두가 깨닫고 대응하지 않는다면 서서히 인간에게 다가오는 위험이 더 크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근래에 세계적인 위협이 되고 있는 코로나 19와 같은 인간에 대한 습격은 언제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언제나 인지하고, 담배와 같은 오류는 더 이상 없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