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구미의 아쉬움(그리스, 산토리니)
한 번, 성구미에 가고 싶다. 포구가 지형의 끝에 자리한다고 해서 섬 꾸미라고 불렸던 것이 변해 성구미로 불렸다고 하는 성구미… 충남 당진시 송산면 가곡리에 위치한 포구… 포구는 뿌연 연기가 풍기는 공장지대를 지나면 나타나는 자그마한 포구다. 입구를 들어서는 곳엔 옛 마을이 그대로 남아 있고, 봄철이면 곳곳에 맛깔난 간자미 무침을 파는 상점이 있다. 마을 뒤편으로는 소나무 숲이 있어 서해안의 푸른 뻘과 바다가 어우러진 멋진 그림을 안겨주는 곳이다.
공장지대의 역겨운 냄새를 뒤로하고 꼬불꼬불한 길을 돌아 동네 입구에 들어서면 여기가 시골임을 암시해 주는 주택들이 나타나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포구가 나오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미로가 나 있다. 하지만 간자미를 파는 상점들을 양쪽으로 끼고 돌아가면 자그마한 포구가 자리하고 있으며, 할머니들이 각종 해산물과 건어물을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아기자기한 포구가 나온다.
사람을 부르는 상점에는 커다란 고기보단, 자그마한 좌판에 옹기종기 몰려다니는 자그마한 고기들을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들이 너무나 소박하다. 포구에는 자그마한 아기 돛단배들이 줄지어 파도에 출렁이고, 여기저기에 고기를 잡으려 나가고 들어오는 어부들의 발길이 바쁜 곳이다. 배가 들어서 있는 부두로 다가 가면, 바닷물이 출렁대며 신발을 적실까 말까를 망설이듯이 바닷물이 드나들고 있으며, 서로 매어져 있는 배들이 부딪치며 서로를 달래는 듯하다.
나른한 봄철, 일단 시장을 둘러보고 입구나 시장의 식당에서 기만 원어치의 간자미 무침을 주문한다. 조금을 기다리면 먹음직한 간자미 무침이 나오는데, 썰겅썰겅 썬 간자미에 엇 썰기를 한 오이가 푸짐하게 들어 있고, 길쭉하게 썰어진 미나리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은 저절로 침이 솟아오른다. 거기에 노르스름한 참깨가 고명으로 얹혀 아름다움을 만들어 냈으니 고소함까지 더해져 젓가락을 얼른 들 수밖에 없다.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를 만나면 부근의 장고항에서 맛볼 수 있는 실치까지 덤으로 내주니 만면에 웃음이 피어 날 수밖에 없다. 여유가 있으면 간단히 소주 한 잔을 마시고, 빨간 고추장으로 화장을 한 간자미 무침을 한 젓가락 입에 넣으면 봄이 입으로 한가득 들어와 앉은 듯하다.
식감이 좋은 간자미에 오이가 섞여 있고, 거기에 미나리의 향긋함에 고소한 참깨가 섞여 있으니, 쌉쌀한 소주 맛은 봄 냄새에 중화가 되어 달큼함으로 변하고 말았다. 덤으로 내어주는 실치를 한입에 넣고 나면 성구미에서의 맛으로 봄의 한나절은 성큼 가고 만다.
간자미 무침으로 배를 채우고 나서 포구의 할머니들을 만나러 가면 언제나 유쾌해져 좋다. 봄과 함께 배불리 먹은 간자미 덕에 좌판에 종일 앉아 있는 할머니들에게도 인심을 넉넉히 쓸 수 있어 좋다. 싱싱한 미역줄기에 간간이 손수 뜯어 내온 냉이도 한 움큼 사고, 좌판에 널어놓은 서대를 사면 성구미에서의 한나절은 어떻게 지났는지 알 수 없다.
성구미에서의 봄나들이를 하고 뒤쪽으로 가면 서해바다를 볼 수 있는 해안가를 끼고 많은 상점들이 들어서 있지만, 성구미에서의 후한 대접에 그냥 지나치게 되는데, 가는 길이 자갈길로 대단히 불편하다.
길을 돌아 나가서 길고도 긴 석문방조제를 지나가면 자그마한 항구인 장고항이 나온다. 봄철이면 몸이 실처럼 가느다란 실치가 유명한 곳으로, 거리 양쪽 좌판에 소박한 상점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도 작은 생선을 어떻게 잡았으며, 이것을 잡을 생각을 했다는 것도 신기하기만 하고, 실치를 먹어야만 하는 잔인함도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잔인함을 무릅쓰고 실치를 한 젓가락 입에 넣는 순간, 이런 생각은 순식간에 없어지고 마는 것은 인간의 아둔함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찌 순간의 입맛이 생각을 이렇게도 다르게 바꾸고 말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실치를 고추장을 찍어 한 젓가락 입에 넣으면 고소함과 신선함이 함께 들려오는 듯하니, 또 하나의 봄나들이 맛이기도 하다. 도대체 한 젓가락에 몇 마리의 실치가 잡혀 있을까? 잔인함을 무마하려는 듯 어설픈 생각을 해 보지만 어느새 또 젓가락은 실치 그릇으로 향하고 말았다.
하지만, 성구미를 찾아오면서 만나는 거대한 굴뚝의 연기들은 거기에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거대한 차량들이 오고 가더니 드디어 성스러운 항구, 성구미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입구부터 통행이 제한되더니 어느새 거대한 공장이 자리를 접수하고, 웅대한 괴물들이 앞을 가로막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성구미의 맛은 어느새 사라지고, 인간의 오만함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말았다.
자그마한 항구, 장고항에도 시장의 원리가 도입되었는지 거대한 천막을 치고 장사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오래 전의 장고항은 없어지고 말았다. 아기자기한 성구미 포구의 새콤한 간자미 맛이 사라지고, 덩달아 장고항의 실치 맛까지 없어지니 서해안으로의 발길은 언젠가부터 끊어지고 말았다.
따스한 봄철이 되면 간자미 무침을 먹으러 찾았던 성구미 포구가 생각나면, 성구미를 지나 왜목마을을 찾아가곤 하는데, 중간에서 만나는 장고항도 보기가 싫어 외면하고 마는 것은 나만의 고집인지는 모르겠다. 다시 한번 찾아가고 싶은 성구미의 간자미 맛과 할머니들이 웃음소리, 장고항의 실치와의 만남은 이루어질 수 없는 추억이 되었으니 마냥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