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화개장터의 그리움

남도 여행의 추억(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by 바람마냥

2019년 말에 시작된 세상의 어수선함은 끝이 보이지 않아 따스한 봄날의 추억은 온데간데없다. 어쩌다 이런 세월이 되었는지는 아무리 되새겨 봐도 인간의 오만함이 불러온 결과가 아닌가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자연이 주는 그 많은 혜택을 무시하고 인간의 무자비한 무모함은, 우리가 그대로 돌려받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무리 인지 의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따스한 봄날이 찾아왔기에 구례 산동면 산수유축제의 노란 물결이 떠오르고, 다압면의 하얀 매화꽃 속에 넘실대는 사람이 생각나며, 서해안 성구미의 간자미 무침이 생각나는 계절의 즐거움은 올해는 오래전 추억이 되었다.


아침부터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저녁을 해 먹을 간단한 양념을 준비해 하루를 묵어 올 수 있는 남도로의 발걸음은 언제나 즐거운 나들이였다. 매화가 활짝 핀 매화밭에 오르면, 가슴이 터지도록 시원하게 다가오는 섬진강이 아름다운 전경을 배경으로 지리산이 달음박질친다. 하얀 매화나무 아래 앉아 봄나물을 파는 할머니들은 오래전 어머니를 보는 듯해 늘 찾는 봄나들이였다.

언제나 변함없는 섬진강

오랜 역사의 국물이 가득 어린 지리산 바람이 가슴속에 밀려들면 민족의 아픔과 서러움이 어렴풋이 떠오르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어머님이 문득 떠올라, 눈가에 눈물이 촉축해졌던 오래전 나들이가 또 생각난다. 이런저런 궁상스런 생각이 싫으면 훌쩍 차를 몰고 달려가 사람 속에 어울려 보는 용기가 삶의 활력이고 살아가는 의미였는데, 세월의 어수선함이 발길을 꼭 잡아 놓고 말았으니 호소할 길도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구례에서 섬진강가의 도로에 올라 운전을 하며 화개장터 방향으로 가면, 오른쪽으로는 섬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왼쪽으로는 지리산 줄기가 덩달아 달려오고 있음이 언제나 멋진 나들이 길이였다. 더구나 4월 즈음이 되어 찾아가는 섬진강변은 가슴을 죄어오는 아름다움에 언제나 넋을 잃고 서 있던 곳이다. 강가에 내려 시원한 바람과 함께 하며 만나는 섬진강의 고고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고, 섬진강가에 덩달아 피어오른 매화꽃은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풍성한 악양 뜰

불이 나기 전의 화개장터는 그야말로 장터였는데, 다시 복원한 화개장터는 장터가 아닌 시장이 되어버려 언제나 아쉬움을 갖고 휙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곳이 되고 말아 아쉽기도 하다. 지리산 골짜기에서 자란 갖가지 봄나물이 지천이고, 할머니들의 먹거리가 사람의 발길을 잡기에 충분했지만 그것도 오래 전의 아름다운 추억이 된 지가 오래되었다.


다시 길을 잡아 토지의 고향 평사리에 닿으면, 우리의 삶과 한이 서린 과거를 되살려 볼 수 있다. 가문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서희의 고단하고도 당찬 삶을 최참판댁을 돌아보면서 생각해 본다. 근대사의 격동기를 맞아, 개성적인 인물들이 부딪치며 사는 다양한 운명과 의지가 민족의 삶으로 부각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박경리의 대단한 작품 '토지'를 잠시 되새겨보면서 뜰을 나선다.


최 참판 댁 사랑 뜰에서 바라보는 널따란 평사리 들판은 저 멀리 섬진강이 있기에 더 아름답고, 들판에 피어오른 자운영 꽃은 보랏빛이 햇살에 반짝이며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논 한자락엔 논을 가는 부지런한 농부가 멋진 그림을 선사하고, 풋풋한 섬진강 바람 맛은 삶의 활력을 되살려 준다. 가끔 보이는 모진 장사꾼들이 눈살을 찌푸리게도 하지만, 시원한 평상에 앉아 막걸리를 나누는 맛은 여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이다. 언젠가 아이들과 찾았던 평사리의 최 참판 댁 그림은 시골의 맛이 있었고 멋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관광지로 변하는 모습이 싫어 이제는 가끔 둘러보는 것으로 대신하는 곳이 되어 아쉽기도 했다.

악양 들판의 가을

발길을 되돌려 화개 장터 구례로 오는 길을 택하지 말고, 건너편의 매화꽃이 만발한 길을 택해 올라오는 맛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시원한 섬진강과 함께 반대편의 거대한 지리산이 지금이라도 쏟아져 내려올 듯하고, 검푸름으로 변한 산의 거대함에 당장 압도되어 발길을 멎게 한다.


길의 양쪽으로 심어진 벚나무가 멋진 그늘을 만들어 주며, 손을 흔들듯이 바람에 일렁임은 여기가 지리산 자락임을 알려준다. 서서히 구례읍에 도착하면 시장은 그냥 지날 수 없는 멋진 구경거리이다. 우연히 장날이면 더욱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시장 곳곳에 먹거리가 있어 허기진 배를 마음껏 채울 수 있어 좋다.


길을 잡아 담양 쪽으로 길을 잡아 올라오다 만나는 것은 지리산 온천인데, 하루쯤 몸을 고단하게 했으면 따스한 물에 한 번쯤 담가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언제부턴가 대형 온천이 들어서 조금은 식상하지만, 어쩔 수 없이 들러 한때의 노곤함을 풀어보는 것도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이다.

화개장터의 각종 약재

지금은 떠날 수 없는 섬진강 나들이가, 어서 세월의 어수선함이 진정되어 모두가 찾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가득하다. 어려운 코로나 19와 사투를 벌이는 환자들이 있고, 환자들을 돌보고 이를 지휘하느라 밤과 낮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지만, 어떤 간절함이 이런 사태를 불러왔는지 아쉽기만 하다.


도와 주지는 못할 망정 아픈 가슴에 상처를 주고, 일하는 사람의 뒷자락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훌쩍 달려가 도울 수 없는 처지가 안타깝기만 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빛나고 보탬이 되어 이번 사태가 빨리 진정되고, 서로가 참여할 수 있는 나들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래 전의 봄나들이가 생각나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이제는 서로 보듬으며 상처를 치유하고 이 사태가 빨리 해결되어 소소한 즐거움이 오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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