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의 즐거움, 노르웨이 Atlantic Road)
초봄을 맞이해 잎을 삐죽이 내밀던 잔디가 작은 마당을 가득 메웠다. 초봄에 내민 푸릇한 잎이 어느덧 마당 구석을 골고루 메우며 검푸른 마당이 되었다. 나무 밑에는 잔디가 잘 자라지 않아 고민을 했지만, 화단에 있던 잔디를 이식해 놓은 것이 무성해져 마음이 편안해졌다. 푸르른 잔디밭이 언제나 편안한 기분을 안겨주고, 잔디밭 둘레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아름답게 장식해 주는 꽃이 그득해 언제나 부자가 된 듯하다.
초봄이 왔어도 마당가에 죽은 듯이 숨죽였던 꽃잔디가 하나둘씩 파랗게 물이 들고, 따스한 봄볕 따라 붉은빛의 꽃을 아기자기하게 피웠다. 옆집 꽃잔디는 예쁘게 피어도 소식이 없어 조바심이 났지만, 보살핌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드디어 꽃을 피워주었다. 마당가에 우뚝 서서 오가는 사람을 무뚝뚝하게 바라보던 산수유도 서서히 꿈틀대며 작은 싹이 나왔다. 며칠이 지나 노란 꽃을 피웠지만 토질이 불편한지 꽃은 실하지 않아 안쓰럽기도 했다. 땅심을 돋아줄 걸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크다.
지난해 옆집에서 자라던 금낭화가 남몰래 울을 넘어왔다. 어느 날 바위틈에서 빨간 꽃을 달고 방긋 웃어 깜짝 놀랐다. 잘 돌봐주지도 않은 빨간 금낭화가 초롱초롱 빛을 발하는 모습을 아침, 저녁으로 바라보며 고마워한다. 뒤 울에 자리한 키다리 벚꽃은 날씨가 썰렁해 심통이 났는지 드문드문 꽃을 피워 속이 상했었는데, 도랑 건너에 있는 벚나무가 보상이라도 하듯이 한아름 꽃을 피워 좋다. 여기에 뒤질세라 도랑가에 무성한 고마니 풀이 보랏빛 꽃을 피워 도랑을 예쁘게 장식하고 있다. 이 꽃, 저 꽃이 다투어 피는 사이 화단가 돌 틈에 자리했던 작은 돌단풍이 하얀 꽃을 피워 음울한 바위틈을 밝게 비춰 주었다.
돌단풍이 배시시 웃음을 짓고, 집 둘레에 가득한 영산홍이 화답을 하면서 꽃잔디 위에 붉게 덧칠을 해준다. 작은 손녀가 만들어 놓은 화단엔 패랭이와 수선화가 밝게 피어났다. 아침, 저녁으로 풀을 뽑으며 공을 들이는 잔디밭에 요령껏 숨어 있던 제비꽃이 군데군데 보랏빛 꽃으로 화답을 하고, 땅 위에 바짝 엎드린 민들레가 곳곳에 숨을 죽이며 노란 꽃을 피워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다.
시골에 위치한 집이기에 더러는 벌레들이 출몰하고, 날파리들이 지나는 길을 방해하기도 한다. 혹시나 뱀이 나타날까 무서워 아내는 박하를 마당가에 줄을 지어 심어 놓았다. 일 년이 지나자 박하는 얼마나 번지고 말았는지 영산홍을 뛰어넘게 키가 자라고 말았다. 여름이 익어 조금 더 있으면 많은 박하가 꽃을 피우며 시원한 향을 가득 뿜어 벌레들을 능히 퇴치하리라. 그 사이에 자리해 미워하던 개망초도 꽃을 피워 여름 꽃잔치에 한몫을 한다.
계단을 오르는 양쪽에 심은 주목이 언제나 열중쉬어 자세로 근엄하게 서 있다. 근엄함을 푸근함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한쪽 주목 주위엔 서양톱풀을, 반대쪽 주목 주위엔 국화를 심어 놓았다. 그리스 신화에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부상당한 병사를 이 풀로 치료했다 하여 Achillea라고도 하는 서양톱풀이다. 잎이 마치 톱과 같이 생겼지만, 붉은 꽃을 피우고 근엄한 주목을 훨씬 돋보이게 해주고 있다. 반대쪽 주목 주위에 있는 국화는 잎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서늘한 바람이 불고, 서리가 내리면 하얀 꽃이 엄숙한 주목나무를 웃게 하리라.
봄이 서서히 오면서 영산홍에 섞여있던 철쭉이 꽃을 피워 존재감을 과시한다. 아침, 저녁으로 내리는 안개를 먹이 삼아 싱싱한 꽃잎을 자랑하고 있다. 그 사이로 숨을 죽이며 몸집을 키우던 큰 금계국은 작은 몽우리를 가지마다 맺더니, 갑자기 찾아온 더위가 꽃망울을 그냥 두지 않았다. 작은 꽃망울이 하나, 둘 입을 벌리고 여기저기에서 꽃을 피우며 야단이 났다. 마당가에 가득한 큰 금계국이 노랑으로 색칠을 해 놓았고, 바람을 타고 일렁이는 모습은 가을날의 코스모스와 같다.
산 밑에는 올봄에 심어 놓은 황매화도 파란 잎에 기대어 드문드문 꽃을 피웠다. 어린 솜털이 묻은 애기똥풀은 노란 꽃을 피워 어두운 숲 속에 노랗게 물들였다. 아래쪽으론 하얀 수국이 소담한 꽃을 피워 우울하던 뒷마당을 훤하게 밝혀 놓았고, 앞 화단에는 껑충하게 키를 키웠더 밥티시아가 보랏빛 꽃을 피워 우아함을 과시한다. 아래쪽으로 핀 일본 조팝나무가 자잘하게 붉은빛 꽃을 이고 생글거린다.
수도가엔 앵두나무가 없어 구색이 맞지 않는 듯했으나, 보리수나무가 꽃을 피워 그 자리를 매워주었다. 자잘하던 보리수 꽃이 열매로 변신해 파랑과 빨강을 번갈아 색칠을 해줘 샘가가 훨씬 훤해졌다. 보리수 옆에 조용히 자리 잡은 장미가 붉은빛으로 입술을 바르더니, 만첩빈도리가 하얗게 꽃을 피우고 마치 겨울이 온 듯 하얀 눈발을 날린다. 이에 뒤질세라 무늬개키버들은 푸름과 하양으로 물들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서 있다.
바위틈에 자리 잡은 황금 낮 달맞이 꽃은 노란 꽃을 피웠지만, 달맞이 꽃은 껑충한 키로 아래를 굽어보며 언제 꽃을 피울까 망설이고 있다. 봄 내내 나물 역할을 충분히 했던 취나물은 하얀 꽃대를 드러내며 고고한 듯 바람에 하늘거린다. 얼마 전에 심어 놓은 구절초는 소식이 없지만 전년도에 자리했던 몇 그루의 구절초는 벌써 하얀 꽃을 피워 언덕 위를 호령한다. 바위틈 루드베키아는 아직도 늦잠을 자듯이 소식이 없고, 군데군데 꺽다리 개망초가 자리 잡고 꽃을 피워 그 자리를 메워주고 있다.
껑충한 모과나무는 올해에는 노란 모과가 달렸으면 하는 마음에 퇴비를 주고 아침, 저녁으로 돌본 덕분인지 많은 꽃을 안고 있어 올해는 기대할만하다. 추운 곳이라 감나무는 살 수가 없다는 주민들의 말에 반항이라도 하듯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전년도에 비해 겨울에 잘 보살펴서인지 무성한 잎을 피웠지만 아직 꽃은 달지 못해 서운하다. 내년이면 꽃이 피리라는 기대로 열심히 돌보고 있는 사이, 옆에 자리한 홍화 산사나무는 빨갛게 꽃을 피워 감나무를 위로한다. 노루가 살만한 산에 서식하며 오줌 냄새 같은 지린내가 난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노루오줌이 빨간 꽃으로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모과나무 밑으론 중국의 전설 속의 동물인 기린의 뿔과 같이 생겼다는 기린초가 가득히 자리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노랗게 꽃을 피우고 침침한 나무 밑을 훤하게 밝혀놓았다. 아직은 서늘한 바람 때문인지 키가 껑충한 나리는 잎만 나풀거리고 꽃을 보여주지 않지만 머지않아 꽃을 피워 벌과 나비를 유혹할 태세이다. 지난봄에 심어 놓은 작은 구절초는 어느새 자리를 잡고 느긋하게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 원래 번식력이 뛰어난 꽃범의 꼬리는 잔디밭 곳곳에 뿌리를 내려 속아내기를 포기했지만, 꽃범의 꼬리도 때가 되면 하얗고도 분홍빛 꽃을 피워 잔디밭을 꽃천지로 바꾸어 놓고 말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내린 사나운 소낙비는 큰 금계국을 그냥 두지 않았고, 주변의 만첩빈도리도 흔들어 놓아 꽃들이
온통 난리를 만났다. 꺽다리 큰 금계국은 이리저리 쓰러져 몸져누웠고, 만첩반도리는 꽃을 흠뻑 쏟아 놓아 하얀 눈밭이 되었다. 아내는 일일이 끈으로 큰 금계국을 세워 놓느라 분주했지만, 몸도 가누지 못하도록 큰 키는 봄부터 아침, 저녁으로 준 물 덕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미안해진다.
사는 곳이 고도가 높아 조금은 서늘한 편이다. 온화한 곳에서 자라는 감나무는 아직 꽃을 피우지 못했고, 대추나무와 모과나무는 자잘한 꽃을 피웠지만 아직은 따스함이 더 필요한 듯하다. 감나무 밑에 심어 놓은 강낭콩은 보랏빛 꽃을 피워 콩 꼬투리를 준비하고 있고, 파밭 가운데 생뚱맞게 자리한 호박은 실한 덩굴을 과시하고 있어 얼마 되지 않으면 넉넉한 호박꽃을 피우리라. 여름 한나절 쌈을 싸 먹기에 향긋함이 좋아 심었던 신선초는 아기자기한 잎을 내밀었다. 며칠이 지나 하얀 꽃을 우산처럼 펼치며 이중삼중으로 아름다움을 안고 산 밑을 치장했다.
아침에 읽어나 밝은 햇살에 바라보는 꽃들도 아름답지만, 저녁 달빛에 맞이하는 큰 금계국은 신비스러움을 안겨준다. 덩달아 배경음을 깔아주는 산 뻐꾸기 덕분에 서늘한 여름날의 저녁은 부자가 된듯하다. 하지만 드문드문 들려오는 고라니 소리는 으스스함을 함께 주는데, 꽃이 있고 달빛이 있어 으스스함은 금세 묻혀버리고, 종일토록 갈갈대는 도랑물 소리는 저녁따라 싱그럽다.
마당을 중심으로 푸른 잔디가 편안함을 주고, 무늬 개키버들은 아직도 우아함을 자랑하듯 바람에 일렁인다. 아직도 흰빛과 푸른빛을 담은 무늬 개키버들 잎새가 바람 따라 일렁임이 한없이 너그러워 좋다. 키다리 목백일홍이 꽃을 피우려 잔뜩 긴장하고 있고, 앞산 밤나무는 하얀 꽃을 가득 피우며 벌을 모으고 있다. 이제 가을이 되면 올해 심은 바위틈 구절초가 꽃을 피우면 좋을 테고, 국화와 키다리 달맞이 꽃이 훤하게 꽃을 피워 마당을 밝게 비추어 주리라. 여기에 키다리 코스모스가 마음이 변했는지 자그마한 몸집으로 곳곳에 자리했으니, 가을이 오면 빨간 고추잠자리와 진빨강 빛으로 한바탕 가을 잔치를 할 것이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하얀 눈꽃이 파란 잔디와 곳곳에 자리한 꽃을 덮고 감싸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