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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Feb 15. 2023

정월 대보름 날, 어머님의 간절한 기도가 궁금했다.

(어머님의 간절한 기도)

떠들썩한 섣달그믐이 지나고 설날이 밝았다. 작은 골짜기에 자리한 시골동네가 부산하다. 새 옷을 입은 아이들과 바지저고리로 단장한 어른들의 행렬이 오고 간다.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하며 이웃 간에 먹거리를 나눠먹는 정겨운 모습이다. 섣달 끝머리부터 갖가지 음식을 준비했고 외지로 나갔던 가족들이 다 모였다. 어렵게 마련한 선물과 새 옷을 입고 찾아온 고향이다. 오랜만에 만난 자식을 보고 흐뭇해하시는 어머니, 아무리 힘에 겨워도 내색이 없으셨다. 차례상을 차렸고 수없이 드나드는 이웃들의 술 시중을 들어야 했다. 여기에 간간이 찾아오는 친척들의 식사준비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어둑한 부엌에서 설을 맞이하신 어머니, 하루 해가 넘어가야 허리를 펼 수 있었다. 섣달도 막바지에 이르자 어머님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궁핍한 살림을 아껴 먹거리를 해야 했고, 자식들 옷가지라도 준비해야 했다. 오고 가는 세배꾼들을 위한 술독도 채워야 했다. 근근이 아껴온 고추자루와 쌀말이라도 장으로 이어내야 했다. 봄부터 길러온 암탉도 내다 팔아 차례상에 올릴 제수용품을 마련해야 했고, 자식들 양말짝이라도 사줘야 해서다. 고단함 속에 찾아온 설을 어머니는 쉴틈이 없었다. 섣달부터 정월 보름까지 한 달여 동안 새해맞이를 해야 해서다. 서서히 설 무렵이 저물어가지만 어머님은 또 할 일이 남아있다. 새해 농사가 시작되는 농사철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새해 농사를 준비해야 했고, 어머니는 정월 대보름이 기다리고 있었다. 설날도 중요하지만 정월대보름엔 소중한 행사가 남아있다. 대청마루와 부엌 그리고 장독에 놓을 시루떡을 준비해야해서다. 시골엔 설이 지나도 명절 기분이 남아있다. 가끔 찾아오는 세배꾼들이 남아 있고, 서서히 정월 대보름 행사를 해야 해서다. 서서히 동네 사람들이 대보름 행사에 앞장을 선다. 풍물놀이를 하는 이웃들이 집을 돌며 풍년을 기원했다. 어머니는 풍물놀이꾼들의 음식, 술과 안주를 섭섭지 않게 준비해야 했다. 설부터 들떠 있던 시골동네는 대보름이 다가오면서 절정에 달한다. 곳곳에서 윷놀이가 펼쳐지고 아이들은 쥐불놀이를 하며 동네가 요란하다. 


어머니는 이것저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오로지 신령님께 올릴 신성한 시루떡을 해야만 해서다. 정성껏 씻은 쌀을 절구에 넣고 빻는다. 쌀가루를 고운 체로 걸러내는 작업이 온종일 계속된다. 정성스레 곱게 빻은 쌀과 붉은팥을 켜켜이 안친 시루를 커다란 솥에 얹는다. 솥과 시루사이에 김이 새지 않도록 밀가루 반죽으로 바르면 불을 때는 일만 남는다. 허연 수건을 질끈 두른 어머니, 떡이 익을 때까지 불을 때야 했다. 연기가 가득한 부엌엔 어머니의 정성이 가득하다. 온갖 정성 끝에 김이 나면서 시루떡은 익어간다. 기어이 떡이 익어갈 무렵, 시루 뚜껑을 열면 정월 대보름 떡냄새가 집안에 진동한다. 떡이 잘 익었음을 알게 하는 냄새였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시루떡은 어머님의 혼이었다. 하얀 접시에 담은 시루떡, 집안 곳곳에 놓이고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시작된다. 대청마루에 놓이고, 부엌에도 자리 잡는다. 장독대에 자리한 시루떡 앞에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이어진다. 감히 다가갈 수 없는 간절함이다. 무엇이 그리도 간절하셨을까? 해마다 절절한 간절함에도 나아질 것도 없는 살림살이지만 어머님의 기도는 멈추지 않으셨다. 우물가에서 이어지는 기도는 끝날 줄을 몰랐다. 간절하고도 끝없이 이어진 어머님의 기도 후에야 근엄하신 아버지도 떡 맛을 볼 수 있었다. 그제야 이웃집 울타리로 떡 접시가 넘어갔고, 시골동네엔 떡 냄새가 진동을 했다. 


정월 대보름 달 아래 이어진 어머님의 간절함은 무엇이었을까? 알 수 없는 처절함 속엔 당신의 간절함이 녹아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사연, 오랫동안 궁금했다. 서서히 세월은 흘러 어머님의 세월이 되었다. 말없이 이어진 어머님의 기도, 간절함은 당신의 세월이 된 후에야 알게 된 것이다. 처절한 기도 속엔 가족의 안녕이 있었고, 자식들의 가난 없는 성공만이 존재했다. 사시사철 변함없는 부모의 간절함이 그것 말고 무엇이 있었을까? 근엄하신 아버지도 눈을 질끈 감아버린 어머님의 기도, 그 속엔 아버지의 몫도 함께 있었으리라. 밝은 보름달아래 이루어진 어머님의 간절한 기도는 아직도 가슴속에 이어지고 있다.

(2023.02.05.MBC여성시대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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