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자장매를 보고)
겨울과 봄이 눈치 싸움 하는 날, 부산에 사는 딸한테 가기로 했다. 아비의 쌀과 아내의 밑반찬을 가득 실었다. 늙어가는 고희 청춘은 아직 운전을 즐기며 여행을 한다. 가끔은 노래를 듣기도 하고, 더러는 어울리지 않는 영어회화를 웅얼거린다. 얼마 전부턴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책 읽어주는 방송을 듣는 것이다. 안정된 목소리로 읽어주는 이야기는 아내도 좋아한다. 수필을 또는 편안한 단편 소설을 선택한다. 입시용으로 읽던 느낌이 아닌 소설은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즐거운 여행길에 책 읽는 소리에 젖어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의 가이드는 언제나 사위가 자처한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가이드, 늘 소화하기 힘겨울 정도의 탄탄한 스케줄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장인을 위한 밥상은 부산에 걸맞은 싱싱한 횟감이 으뜸이다. 몇 잔의 소주잔이 오가며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밤이다. 벌써 40을 넘어섰다는 딸, 벌써 그렇게 세월은 서둘러 왔다. 4학년이 되는 손녀가 합기도 초단에 승급했다는 자랑이다. 미술에 대단한 흥미가 있고, 음악에도 관심이 많다. 체육에도 다양한 취미가 있어 다행이다. 얼큰해진 행복한 저녁이 깊어만 간다. 내 집을 떠났으니 모든 것을 떨쳐낸 편안한 밤이 지나간다. 밤은 순식간에 지나고 아침이 밝아왔지만 늙어가는 몸은 고단하다. 지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서둘러 일어났다. 아침을 해결하자 가이드는 오늘 일정을 안내한다.
양산 통도사에 매화가 피어 많은 사람이 찾는단다. 엊저녁 텔레비전에도 활짝 핀 매화가 소개되었다. 양산 통도사, 감회가 새로운 절집이다. 40여 년 전, 결혼을 하고 찾았던 절집이다. 신혼여행 장소를 찾던 중에 부산 바닷가를 보고 통도사를 찾았었다. 어떻게 찾아갔는지 기억은 없지만, 시골버스를 이용했던 기억이다. 오래된 절집엔 오래전 기억의 흔적이 없다. 허름한 상점이 있는 여관이었다. 여관은 흔적도 없고 절집 근처까지 도시화가 되어 있다. 절집도 많이 변했지만 풍경은 외국의 어느 관광지와도 뒤지지 않았다. 와, 통도사가 이렇게 변했구나!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오래전 기억이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들어선 절집 입구, 많은 사람들이 북적인다. 역시 봄이 왔다는 징조이다.
사람들이 활짝 핀 매화 사진을 찍고 있다. 거대한 사진기를 들고 마치 전쟁터 같다. 분홍과 하양이 적당히 섞인 매화가 일품이다. 자장매(慈藏梅)라 하는 통도사의 매화는 자장율사의 통도사 창건을 기리기 위해 1650에 심어져 무려 370여 년의 수령을 자랑한단다. 순수한 아마추어 실력으론 이렇게 찍어도 그렇고 저렇게 찍어도 실물만 못하다. 이래저래 마음속에 가득 담아 놓고 절집으로 향했다. 언제나 부처님은 외면할 수 없다. 아내는 절집에 오면 언제나 부처님께 기도를 했지만, 모르는 척 외면했던 사람이다. 어느 순간엔가 절을 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러운 자세가 되었다. 어린 손녀는 오래전부터 사찰에 오면 절을 했다. 스스럼없이 절하는 손녀를 보고 깜짝 놀랐었다.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하더란다. 오늘도 손녀는 거리낌 없이 절을 한다.
절을 하고 나온 손녀에게 물어봤다. 무엇을 빌었느냐고? 오래전, 내 어머니가 하던 소리를 한다. 가족의 안녕과 건강을 빌었단다. 사람의 삶은 언제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초등학교 3학년인 손녀의 어른스러움에 깜짝 놀라고 만다. 40여 년 전에 신혼여행을 왔던 절집, 여기에 세 식구를 더 거느리고 찾아왔다. 아들과 며느리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세월의 덧없음을 생각하며 돌아본 절집이 감회가 새롭다. 오랜만에 고즈적함에 젖어 돌아 나오는 절집, 점심공양을 하고 가란다. 어쩔까를 망설이다 손녀에게 보여주고 싶어 발길을 돌렸다. 식당에 들어서자 많은 봉사자들이 바쁘다. 긴 줄에 서서 기다리는 시간, 손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커다란 그릇에 밥을 뜨고, 갖가지 나물을 얹었다. 담백하면서도 깔끔한 점심공양, 손녀도 맛있게 먹는다. 아무 거리낌도 없어 먹어주는 아이, 벌써 철이 들었다는 생각을 하며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맛이 있었느냐는 물음에 좋아하는 미역국에 고기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다. 절에서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설명에 얼른 수긍하는 손녀, 40여 년은 많은 것은 변하게 했다. 강산이 네 번 변했을 40여 년, 나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내 아버지와 어머니는 떠나셨고, 이젠 내가 아이들을 거느리고 사는 세월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돌보았듯이 나도 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나 돌봐 줄 수 있을까? 서둘러 부산가이드는 다음 코스로 안내를 한다.
먼 길을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은 수제 맥주집이다. 아이들 덕분이라는 고마움과, 골짜기 삶의 불편함도 어른거린다. 다양한 수제맥주를 준비해 놓고 맛을 본만큼만 값을 지불하면 된다. 언젠가 남아공 여행길에서 만났던 와이너리, 다양한 와인이 눈길을 사로잡았었다. 마치 외국의 와이너리에 와 있는 느낌에 세월의 다름을 알게 한다. 아이들은 능숙하게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는 맥주 맛이 새롭다. 한두 가지 맥주가 전부인 것처럼 생각을 하던 시절, 독일을 여행하던 기억이 난다. 맥주를 한 잔 마시고 깜짝 놀랐다. 이런 맥주도 있단 말인가? 전혀 다른 맥주였다. 가끔은 골짜기의 삶이 세상을 서투르게 만들기도 한다.
차를 타는 방법도, 맥주를 마시는 법도, 문화생활을 하는 수준이 다르다. 갖가지 맥주를 마시고 서둘러 베이스캠프로 올라와야 했다. 서두르는 할아버지, 손녀가 발목을 잡는다. 제발 하루만 더 주무시고 가란다.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서둘러 딸네 집에 도착하자 손녀가 손을 끌고 어디론가 안내한다. 언젠가 찾아갔던 어린이 용품점, 많은 어린이 용품이 있다. 손녀가 원하는 것은 아이돌 가수의 사진이었다. 사진 몇 장을 고르더니 이만하면 됐다 한다. 사진 몇 장인데 가격은 천 원이란다. 몇 개를 더 사도 좋다 해도 흔들림이 없다. 엄마하고 그렇게만 약속을 했다면서 사양한다. 손녀는 더 곤란하게 하지 말라는 말에 상점 주인이 빙그레 웃는다. 양심이 있어 천 원어치만 사도 된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용돈을 주시는데 더 살 수 없다 한다. 기꺼이 천 원어치를 사주고 돌아오는 길, 그래도 사 줄 수 있는 손녀가 있어 행복했다. 투정 부리지 않고 원하는 만큼만 얻으려 하는 마음이 기특하다. 아직은 건재하게 운전을 할 수 있고, 조금은 여력이 있으니 딸 집에 와도 괜찮다. 사줄 수도 있고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세월이 조금 더 흘러가면 어떻게 될까? 괜히 쓸데없는 걱정이 떠오른다. 어깨 처진 아빠가 되지 않을까? 거침없이 마시던 소주잔도 수가 줄어들 테고, 힘겨워하는 삶이 되면 어떻게 할까? 아직은 더 버티며 살아줘야 한다. 언제나 운동을 하고 활기차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다. 오랜만에 찾은 딸네집, 추억 속 기억을 되새기는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추억여행 속 삶을 되돌아보는 사이, 봄은 어느새 우리 곁에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