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나절 골짜기에 난리가 났다.

(동네가 시끄럽다, 편안한 골짜기 풍경)

by 바람마냥

새벽부터 동네가 시끄럽다. 시끄럽다고 해야 이웃들이 만나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다. 앞 산에 텃밭을 만들어 채소를 심었던 이웃이 내려온다. 옆구리엔 각종 채소를 가득 담긴 소쿠리가 들려있다. 여름이면 반찬 걱정 없고, 마트에 갈 필요 없는 골짜기다. 오이 몇 개가 담을 넘어오고, 호박 한 덩이가 현관에 놓여있기도 한다. 시골에서 만나는 이웃들과 나누는 작은 정이다. 조용하던 골짜기가 갑자기 소란해진 것은 뱀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우아, 뱀이라고?


갑자기 나타난 뱀 한 마리가 동네사람들을 모아 놓았다. 몇 년을 골짜기에서 살았어도 뱀을 구경하지 못했다. 녹음이 우거졌고 곳곳에 풀밭이니 뱀이 있을 것 같지만 큰 다행이었다. 살기 괜찮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 온 동네가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다. 웬일일까? 앞산에 가득하던 나무를 베어서 삶의 터전을 잃어서일까? 곳곳에서 개구리를 만날 수 있고, 두꺼비도 종종 출몰한다. 가끔 뱀도 나오고 벌집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IMG_7098.JPG 새들이 좋아하는 우체통

아내는 늘 걱정이다. 뱀이 나타나면 어떻게 할까? 할 수 없이 뱀이 싫어하는 식물을 심어 놓는다. 향이 강한 민트와 메리골드를 집안 둘레에 심어 놓았다. 민트는 번식력이 뛰어나고 여러해살이지만, 메리골드는 일 년생이기에 매년 심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민트와 메리골드의 덕분인지 많은 효과를 보고 있지만 늘 조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동네에 뱀이 나타난 것이다.


골짜기에는 집집마다 문 앞에 우체통이 있다. 특별한 대문이 없어 쉽게 드나들 수 있지만, 집 앞에 작은 우체통을 만들어 놓았다. 어느 날 이웃집 우체통에 하얀 종이가 붙어 있다. 새가 알을 품고 있으니 우편물을 넣지 말라는 것이다. 우체통 밑으로 작은 바구니를 달아 놓은 이유였다. 그런데 새집에서 난리가 난 것이다.


이웃이 채소밭에 나가면서 우체통을 살펴보니 뱀이 들어 있었단다. 할 수 없이 남편을 불러 뱀을 쫓아 버렸지만 새 새끼는 서너 마리가 자취를 감춘 뒤였다. 우체통이 위로 나무가 드리워 있었으니 나무를 타고 뱀이 들어갔던 모양이다. 동네 이야깃거리가 생긴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삶의 이야기를 나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채소밭을 다녀오던 이웃이 갑자기 호박 한 덩이를 내민다. 지금이 맛이 제일 좋을 때라면서 반찬해 먹으란다. 뱀 소동에 호박 한 덩이를 얻는 횡재를 만났다. 다른 이웃이 벌집 때문에 골이 아프다며 하소연이다.

IMG_2464.JPG 화려한 메리골드

집 앞에 벌집이 있어 오고 가기가 곤란하단다. 호기심에 모두 찾아간 데크엔 작은 벌집에 벌들이 소복이 붙어 있다. 잠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주위를 살핀다. 어떻게 벌집을 제거해야 할까? 벌들이 사람을 해치지만 않는다면 모르는 듯이 살아가면 된다. 하지만 사람이 오고 가는 곳이 아니던가? 갑자기 벌들이 공중으로 솟아오른다. 주위에 사람이 모인 것을 알아 채린 것이다. 얼른 자리를 피하는 때아닌 민방위 훈련을 해야 했다. 다행히 무사했고, 어떻게 벌집을 제거해야 할까 다양한 의견이 오고 가는 골짜기다.


학교를 오가던 초등학교 시절, 벌집이 있으면 반드시 시비를 걸었다. 숨어서 돌을 던져야 했고 나뭇가지로 벌집을 부수어야 했다. 전혀 상관도 없는 벌집인데 그냥 지날 수가 없었다. 개구쟁이들이 벌이는 장난이다. 벌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궁금해 건 시비는 결국 얼굴이 퉁퉁 붓는 것으로 종결되고 말았다. 잘 살고 있는 벌을 건드리면 그냥 있을 리가 있겠는가? 순식간에 달려들어 쏘기도 하고, 옷 속으로 스며들어 나뒹구는 난리를 만나기도 했었다. 이웃집 벌은 그냥 둘 수 없지 않은가?

IMG_1824.JPG 활짝 핀 황금낮 달맞이꽃

벌이 살고 있고, 산새들이 살고 있는 곳에 내가 들어와 살고 있다. 인간이 자연 속에 들어와 살면서 그들의 삶을 방해하면 되겠는가? 산새는 산새대로 살아가고, 벌은 벌대로 살아가면 된다. 서로가 방해되지 않으면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삶의 순리는 사람 사이나 마찬가지다. 부모 자식 간에도 그렇고, 벌과 인간의 관계도 그렇다. 서로에게 불편함이 없다면 서로의 삶을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어떨까? 자식들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부모, 서로의 삶을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면 서로 편하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삶, 소란해진 골짜기에서 나의 삶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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