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 서너 개가 주는 기쁨)
일주일에 한 번은 친구들과 산엘 오른다. 서너 번 체육관엘 가고, 하루는 자전거를 타며 산행을 한다. 운동을 기본으로 살아가는 늙어가는 청춘의 삶이다. 운동을 하고 남은 시간에 여러 가지 취미생활과 삶을 꾸려가는 하루하루다. 앞에서 산을 오르던 친구가 바위에 걸터앉더니 배낭을 뒤적인다.
싱싱한 오이를 하나 꺼내 뚝 분질러 건네준다. 아삭한 오이를 입에 넣고 씹는 맛은 표현할 수 없는 맛이었다. 아삭함에 달큼함이 섞여 있고 시원함마저 숨어 있으니 포기할 수 없는 맛이다. 오이는 늘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채소다.
아침 현관문을 열고 나선 텃밭에서 오이를 만났다. 초봄에 오이 모종 5 포기를 텃밭에 심었는데 며칠 전 노란 꽃이 피었었다. 보랏빛 가지도 그렇고, 고추도 화초인양 키우는 텃밭 작물이다. 붉은 방울토마토도 아름다운 화초이고 오이도 그러했다. 노란 꽃 위에 달렸던 자그마한 오이는 빗물과 햇살값을 하느라 그대로 있질 않았다. 어느새 몸집을 불려 커다란 모습으로 잎 속에 숨어 있었다. 푸르름에 싱싱함을 안고 씩씩함까지 묻어 있는 파란 오이다. 오이에 대한 많은 추억이 있다. 오래전, 초등학교 시절에 만났던 오이가 생각난다.
허기진 배를 참으며 들어선 시골집은 텅 비어 있다. 부모님은 들녘에서 일을 해야 했으니 그러려니 하는 일상이다. 배가 고파 부엌으로 들어갔지만 적당한 먹거리가 없다. 어렵게 찾은 찬밥을 물에 말았어도 비스듬히 누운 찬장엔 간장과 고추장뿐이다. 얼른 뒤 울을 넘어 들어선 텃밭에 고추가 달려있고 오이가 있었다. 얼른 고추 몇 개와 오이를 따서 울을 넘어온다. 찬물에 말은 찬밥을 한 술 떠 넣고, 고추장을 찍어 베어 무는 오이맛은 표현할 수 없었다. 세상에 이런 오이도 있단 말인가! 세상에서 가장 맛이 있는 오이였다. 다시 오이를 만났다.
오이를 만난 것인 오랜 세월이 지나 서다. 초등학교 졸업 후 진학을 위해 고향을 떠나왔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늘 타지에서 살아왔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자주 가던 고향은 점점 멀어졌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가끔 찾아가는 고향집이 되었다.
고향에는 어릴 적 친구들이 몇 명 살고 있다. 그중 친했던 친구가 오이 농사를 짓고 있다. 가끔 들러 만나는 친구 농장엔 엄청난 오이가 쌓여 있다. 야, 어떻게 이런 오이를 만들었을까? 전문가의 손길은 전혀 달랐다. 오래 전의 오이를 친구 농장에서 만난 것이다.
마트에 들러도 농산물에 관심이 많아졌다. 값이 싸면 친구의 땀이 생각나고, 값이 비싸면 친구의 웃는 모습이 떠 오른다. 많은 오이를 보고 생각나는 친구와 고향이었다. 오늘 아침 텃밭에서 만난 오이는 또 전혀 달랐다.
오이 서너 개의 값이 얼마나 되겠는가? 친구 농장에선 무더기로 얻어 오던 오이다. 텃밭 오이는 오래 전의 추억이고, 내가 기른 삶의 음식이었다. 오래전엔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반찬이었고 시골집의 성찬이었다. 아내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오이가 신기한 모양이다. 시간이 나는 대로 오이 숲을 뒤적이고 있다. 얼마나 컸나 궁금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오이 덩굴을 제치고 눈 맞춤을 한다. 하얗고도 푸르른 오이가 덩치를 한 껏 불려 놓았다.
시골에 자리 잡고 만든 작은 텃밭이 주는 선물이다. 저렇게도 소중하게 기른 오이를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 화초처럼 기르는 텃밭 작물들은 상추가 꽃이고, 쑥갓은 아름다운 꾸미다. 여기에 자줏빛 가지는 빛나는 조연이고, 부추는 아름다운 꽃 수술이다. 여기에 커다란 오이가 달렸으니 텃밭을 축하해 주는 계절의 축복이었다. 오이는 아침저녁의 정성이 만들어준 멋진 선물이었다. 텃밭에 달린 몇 개의 오이를 보며 꺼내보는 아름다운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