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를 보면서, 사진출처: 인터넷)
며칠째 오던 장맛비가 잠시 멈추었다. 장맛비 덕에 집 앞 도랑에 흐르는 물소리가 여느 산장을 방불케 한다. 황톳빛 흙탕물이 도랑을 가득 메우며 흐르는 모습이 무섭기도 했다. 하늘에선 쉴 사이가 없는 장대비가 내렸고, 모든 매체에서 다양한 경로로 장마 소식을 전해준다. 아침부터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자그마한 골짜기의 삶은 자연과 함께한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살고, 눈이 오면 오는 대로 살아야 한다. 뒷산에는 물안개가 가득하고, 앞산엔 사선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끊임이 없었다. 며칠째 내리는 장대비가 야속하기도 했다. 모든 것을 망쳐놓고 있다는 생각에 원망스럽기도 하다. 여름내 식탁을 빛내주던 상추는 완전히 녹아버렸고, 주렁주렁 달려있던 오이는 덩굴이 축 늘어졌다.
서서히 여름이 오면서 붉은색으로 치장할 방울토마토는 구경도 할 수 없다. 며칠째 내리는 장맛비로 검게 물든 병에 걸려 안쓰러운 표정이다. 여기에 보랏빛으로 텃밭을 빛내주던 가지도 엉거주춤이다. 마디마다 보랏빛을 자랑하던 가지가 처량한 표정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오래 전의 장맛비나 지금의 장맛비는 같은 비지만, 보임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다.
초가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운치가 있었다. 골을 타고 내리는 빗방울이 마당을 한 바퀴 돌며 소용돌이를 친다. 흙탕물도 맑게 되어 빙그르 도는 모습에 넋을 놓았던 장맛비였다. 감나무잎에 머물다 떨어진 빗방울은 동전크기의 동그란 원을 그렸다. 뒤뜰 감나무밑에 그려진 물방울 흔적이 마냥 신기했던 장맛비였다. 아파트에서 보는 장맛비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야말로 그냥 바라보는 '비멍'일뿐이었다. 골짜기로 이사를 와서 만나는 장맛비는 느낌이 다르고 마주함이 다르다.
집 앞에 있는 도랑 물소리가 작으면 늘 안타까웠다. 비라도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의 마음은 간사한가 보다. 그 비가 조금 많아지면 불안하기 시작한다. 더 많이 오면 텃밭의 채소가 망가지고, 도랑이 넘칠까 불안하다. 밤새도록 잠을 설친 엊저녁이다. 우렁차게 내리는 장맛비를 밤이 새도록 원망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만 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예상했던 대로 많은 사고를 치고 말았다.
언제나 푸름으로 평안함을 주던 앞산을 망가트렸다. 엄청난 생채기를 내며 푸름을 흩트려놓고 말았다. 들려오는 소리로는 곳곳에 많은 인명피해를 보게 했단다. 물이 이렇게 무서운 것은 어른이 되고서였다. 흙탕물이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너무나 무서웠다. 넘실대는 흙탕물은 구경거리가 아닌 위협적인 존재였다. 골짜기에서 만나는 장맛비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갑자기 퍼붓는 물줄기가 마치 쏟아붓는 듯이 내렸다. 갑자기 도랑이 가득해진 물줄기가 헉헉대며 달려오고 있다. 낭떠러지를 만난 물줄기는 기어코 굉음을 내며 골짜기를 호령한다.
농토와 집이 물에 잠긴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점심 한 끼가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했다. 궁평지하도 옆에 위치한 친구네 농장, 제방이 무너져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었단다. 손쓸 여력도 없이 살아 있는 것이 다행이란다.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그리움과 추억을 주던 그 장맛비가 원망스럽다. 언제나 장맛비가 완전히 그치려나? 많은 생채기를 아물게 해야 하는 시간이라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