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의 아침 풍경)
장맛비가 주춤하는 사이, 잔디밭으로 눈이 간다. 언제 자랐는지 알 수 없는 속도로 잡초가 자랐다. 삐쭉 올라온 잡초가 보기 싫어 호미를 들고 나섰다. 그냥 두면 잔디밭이 풀밭으로 변할 것 같아서다. 나름대로 위안을 삼으며 한 포기씩 뽑아 나간다. 시골에서 이런 것도 하지 않으며 살 수는 없다고.
곳곳엔 커다란 풀들이 신이 났다. 맑은 이슬을 먹고 바람에 몸을 맡긴다. 언제 나타났는지 설치 예술가인 거미가 눈치를 본다. 잔디밭에 숨어 먹거리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거미줄에도 하얀 이슬이 내려 떨어질까 말까를 망설이는 모습이 아름답기도 하다. 한 포기씩 뽑아 나가는 잔디밭, 머리를 깎아 놓은 듯이 아름답다. 힘겨운 줄도 모르고 풀을 뽑아야 하는 이유다. 화가 난 듯이 골짜기를 호령하던 도랑물이 싱그럽다.
붉게 물들었던 흙탕물이 화난 듯이 흘러내렸다. 도저이 다가갈 수 없는 물 덩어리였다. 도랑을 넘어 달려올 것 같았던 물이 이젠 진정하며 흐른다. 맑은 물이 바위를 껑충 넘어 솟아오른다. 하얀 물보라가 흩어지는 모습이 위협보다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얼른 뛰어들어 첨벙거리고 싶지만 마음을 접고 풀을 뽑았다. 운동하던 아내가 장갑을 끼고 텃밭으로 향한다. 텃밭을 정리하고 싶은 모양이다.
언제나 채소를 화초같이 길러내는 아내다. 곳곳에 자라나는 오이가 그렇고, 가지가 그러하며 고추가 그렇다. 탐스럽게 익어가는 토마토를 기대했었는데, 덩굴이 실한 오이가 방해를 했다. 햇살을 가리고 덩굴로 감싸 안아 토마토가 짜증을 낸 여름이다. 노란 꽃을 피워 열매를 달았지만 찾아온 장마가 심술을 부렸다. 기어이 열매는 검게 변해 중력을 이기지 못했다. 안타까운 토마토가 밭이랑을 덮고 말았다. 아내는 화초처럼 기른 오이 덩굴을 정리하려나 보다.
장마에 상한 오이덩굴을 걷어낸다. 가까스로 토마토를 살려내려는 아내의 결단이다. 오이덩굴을 정리하자 토마토가 긴 한숨을 토해낸다. 진즉 이렇게 해 주었으면 지금쯤 붉은 토마토를 맞이했으리라. 오이도 기르고 토마토도 맛보려는 인간의 욕심이 화를 불렀다. 싱싱한 오이를 맛보았지만 아직 붉은 토마토를 볼 수 없어서다. 열심히 풀과의 씨름을 마칠즈음, 아내도 밭 정리가 끝이 났다. 밭이라고 해야 서너 평에 불과하지만 우리 집엔 없어서는 안 될 놀이터다.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많다. 오이가 남아 있고 가지고 있으며 부추가 싱싱하다.
잔디밭에서 뽑은 잡초와 텃밭을 정리한 오이덩굴을 버려야 한다. 잔디밭에서 나온 풀들 앞산이 있어 처리할 수 있다. 자그마한 앞산이 모든 것을 품어주기 때문이다. 종량제 봉투에 넣어도 수거하질 않는 잡초를 버리고 오는 길, 시원한 도랑물이 발목을 잡는다. 한 번 들어가 볼까 망설이다 얼른 내려섰다. 야, 이런 시원함을 여기가 아니고 어디서 느낄 수 있을까? 발목이 아플 정도로 시원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얼른 웃통을 벗었다. 이웃들이 바라보면 어쩔까 망설이는 이유다.
골짜기엔 여러 눈이 있다. 이웃이 보고 있고 새들이 오고 간다. 가끔은 고라니도 오가는 곳에서 온몸을 보일 수는 없어서다. 도랑물로 세수를 하고 웃통을 씻어낸다. 깜짝 놀란 심장이 울렁거리다. 오래전 시골집에서 만난 시원함을 앞 도랑에서 만난 것이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시원함에 온몸이 짜릿하다. 순식간에 옷을 입었지만 온몸이 날아갈 것 같다. 잔디밭에서 흘린 땀방울은 오간데 없고, 시원한 바람이 물기를 씻어낸다. 쏟아질 듯 내려오는 도랑물이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날려주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