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준 상처는 너무 컸다.

(친구가 만난 물난리)

by 바람마냥

창문을 열자 집 앞엔 어느 외진 계곡 산장에 와 있는 기분이다. 도랑물 소리가 온 동네를 흔들고 있다. 멀리 산자락엔 뻘건 산사태 흔적이 보인다. 인간의 힘이 가해진 곳이다. 몇년 전에 벌목한 산자락과 멀쩡한 산을 잘라 길을 낸 곳이다. 끝도 없이 내리던 장맛비가 지금은 주춤하고 있지만 호시탐탐 때를 노리고 있는 듯해 야속하기도 하다. 끝없이 내리던 장맛비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만 했었다.


골짜기의 삶은 좋은 점도 있지만, 걱정거리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살고 있는 골짜기에도 끝없는 장맛비가 내린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펴보니 작은 흙흘림만 있어 다행이다 싶다. 모든 것을 삼킬듯한 장맛비에 가슴을 졸이고 지내던 엊그제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IMG_5071[1].JPG 푸름은 신비하다. 멀리는 산사태가 났다.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내온 죽마고우다. 친구는 가까운 오송에서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고 있다. 언제나 즐거움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명랑한 친구다. 시간이 나는 대로 농장에 들러 채소를 얻어 오기도, 점심을 같이 먹기도 한다. 가끔은 바쁘다면서 일을 도우러 오라는 명령 아닌 명령을 하기도 한다. 친구의 전화는 점심이나 같이 하자는 전갈이지만 뜻을 알고 있다.


가지나 호박을 재배하고 마무리할 즈음이면 갖가지 채소와 가지나 오이를 주는 친구다. 너무 많다고 사양을 해도 친구들에게 인심 쓰라며 실어주는 친구다. 틀림없이 농사지은 호박과 갖가지 채소를 챙겨주려는 생각이리라.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기에 내일 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새벽에 일어나니 세찬 장맛비가 내리고 있다. 골짜기를 흔드는 소리가 폭포수를 연상케 한다. 얼마 있으면 그칠 것을 고대했지만 전혀 기색이 없다. 한참을 기다려도 장대비는 더 쏟아진다. 친구한테 전화를 하고 장대비를 뚫고 갈 수가 없으니 비가 그치면 가겠다는 약속을 했다.


다시 하루가 지나고 친구한테 가려는데 장맛비가 그치질 않는다. 망설이고 있던 차에 오송지하차도에 물이 찼다는 보도가 나왔다. 얼른 친구한테 전화를 했더니 물난리가 났다며 정신없다 한다.

집앞 도랑물이 가득이다.

친구의 농장이 물난리 난 지하도 근처에 있다. 친구가 다급한 소리로 비닐하우스에 물이 가득이란다. 미호천이 범람하여 비닐하우스는 물론이고 살고 있는 살림살이도 전부 잠겼단다. 차량만 겨우 대피해 놓고 몸만 빠져나와 복지회관에 대피 중이란다. 아침에 비가 오지 않았다면 친구한테 갔을 텐데. 차를 몰고 근처에 갔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근처 지하차도에 목숨을 잃은 사람, 실종된 사람들이 많다니 걱정이다


전국 수많은 곳이 물에 잠기고, 물난리를 당했다는 소식에 가슴 아프다. 어떻게 도와줄 수 없음에 답답할 뿐이다. 물이 빠지고 날이 개어야 복구가 시작될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 어째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장맛비가 준 상처는 너무나 크다. 전국의 수많은 수재민들, 장맛비가 그치고 그들이 어서 일어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한 아침이다. 친구의 모든 것이 물에 잠겼다니 식사라도 한 끼 나눠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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