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를 맞이하며)
어머니, 입추입니다.
가을밭에 수수가 뻘겋게 익어가고
하늘엔 빨간 고추잠자리 수놓는
그런 입추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파란 하늘에
고추잠자리 뱅뱅 돌고
철 모르는 매미 소리
귓가를 가득 채울 때
여름이 멀찍이 물러가야 하는
그런 입추가 다시 찾았습니다
어머니, 입추가 다시 찾았습니다
고추밭이 뻘겋게 물들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앞 논 물꼬에 물 흐르는 소리
청량하게 다가오는 그런 입추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았습니다
이젠 여름이 물러나고
가을이 선뜻 들어서면
푸른 들녘은 노란 물감 쓰고
여름내 영근 곡식을 주겠지요
이렇게 가을이 익어 가면
또 겨울이 뒤를 기다리니
어렵게 찾아온 입추는 다시
내년을 기약하며 물러가겠지요
어머니, 당신이 없는 입추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듯이
세월은 가는 둥 마는 둥 하지만
어느덧 허연 머리칼을 주고
이내 마음마저 세월의 흐름 따라
어느새 당신들을 닮아 갑니다
어머니, 입추가 찾아 왔습니다
당신이 없는 허전한 입추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