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마냥 Feb 06. 2024

세조길에 만난 친구, 삶의 이야기가 가득이다.

(친구와의 동행)

고등학교를 같이 다니고, 대학에서 같은 전공을 했다. 사회생활도 같이 했으니 어언 50여 년, 참 긴 세월을 같이한 친구가 전화를 했다. 언제 세조길이라도 걷지 않겠느냐고. 가끔 지루하기도 하고, 또 운동도 해야 하기에 얼른 날짜를 잡았다. 원래 오랜 기간 같이 했기에 집안 사정도, 오래 전의 부모님까지도 알고 지내는 사이다. 친구는 열심히 살아 학교장까지 지냈고, 친구 아내는 교육장까지도 역임했으니 나름의 성공길을 걸은 친구다. 어쩌다 보니 성질이 까다로워 그 길을 걷지 못했지만 늘 어울리며 살아온 친구다.


친구들과 어울려 수십 년 세계 배낭여행을 했고, 친구와 둘이선 많은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친구부부와 감출 것도 물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모로코 사막을 거닐었고, 이집트의 아부심벨에서부터 나일강을 거쳐 피라미드를 헤매고 다녔다. 머나먼 나라 멕시코와 쿠바를 전전했으며 우루무치에서 낯선 거리를 같이 걸었다. 오랜만에 속리산 세조길에서 만난 친구부부는 언제나 부담이 없다. 

쿠바에서 만난 풍경

언제나 조용하고 말과 생각이 비슷하니 함께 어울리기 쉽다.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은 서늘한 바람이 옷깃에 스민다. 봄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세조길을 찾았다. 악회에서도 찾았고 가족을 동반한 사람들도 가득이다. 삶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친구와의 대화, 가까이 다가올 설날 풍경이 오고 간다. 오래전, 내 아버지의 설날이 떠오르고 아이들의 설날도 대비된다.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변함에 순순히 따라가야 한다는 것은 동감이다. 아이들한테까지 떠 넘길 유산이 아닌듯함도 같으니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간다. 

우루무치 여행중, 명사산 월아천에서

많은 세월이 흘렀기에 생각도 변했고 삶의 모습도 변했다. 아이들도 변했으니 그들의 삶에 어울리게 응해 주어야 한단다. 거절할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은 생각도 변하게 했다. 온 동네를 돌며 세배를 하고, 정월대보름이면 윷을 놀고 뒷동산에 올라 쥐불놀이를 했다. 이젠 민속촌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오래전 이야기다. 그들의 삶이 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음을 부인할 수 없다. 맑은 물이 산에서 내려오다 얼음으로 변했다. 하얀 얼음이 아직은 겨울임을 알려준다. 


서서히 오르는 데크길은 여기가 산인지 어딘지 알 수가 없다. 인간의 편안함이 만들어 준 길,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도 드다. 테크길도 모자라 야자매트로 깔아 놓았으니 편하기는 하지만, 길은 어떻게 숨을 쉴까 쓸데없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무심히 서 있는 듯한 나무도 봄을 준비하고 있다. 어딘가 숨을 듯이 푸름이 멎어있고, 초록의 풀도 가득하다. 어떻게 이 겨울을 버티어 냈을까? 작은 바람에도 바르르 떠는 모습에 어서 봄이 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다정하게 삶을 나누는 사람들이 길에 가득이다. 우리의 모습도 변해 즐기는 삶이 되었음은 오래전이다. 죽도록 일만 하는 세월은 흘러갔고, 놀이와 일이 균등한 세월이 되었음을 실감한다. 우리는 왜 그렇게 죽을 듯이 일만 했을까?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목숨을 건 듯이 아이들을 가르쳤다. 일요일도 공휴일도 없었지만 보상은 생각치도 않았다. 내 아이는 돌볼 틈이 없었고, 가정은 아내가 떠맡아야 했다. 어떻게 버티어 냈던 삶이던가? 괜히 쓸데없는 생각에 잠시 생각이 멎는 사이 세심정이 보인다. 마음이라도 깨끗하게 씻고 내려가야겠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착한 세심정, 여기까지만 걷기로 했다. 세상에 마음 씻는 일보다 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문장대까지도 가볍게 오르고, 천왕봉도 간단했었는데 이제는 여기까지가 적당한 거리가 되었으니 세월의 무심함을 탓해본다. 굳이 오르려면 못 갈 곳도 아니지만 구태여 힘쓸 세월은 지난듯해서다. 이왕 올라왔으니 파전에 막걸리 한잔을 해야 하지 않을까? 언제나 삶에 재미를 주던 술, 이젠 서서히 줄이기도 했고 더러는 끊어야 하는 친구들도 있다. 아직은 몇 잔 마실 수 있으니 천만다행이지 않은가?

모로코의 쉐프샤우엔

두툼한 파전에 막걸리 한잔이 서먹서먹하다. 밤을 새우며 같이하던 술잔이 두어 잔으로 족하다. 주문한 두툼한 파전은 맛깔나지만 막걸리는 어쩐지 어설픈 맛이다. 술이면 다 같은지 알았는데, 오랫동안의 입맛은 이것도 구별해 낸다. 친구 아내는 준비한 과일을 내놓는다. 산 중턱에 앉아 두툼한 파전에 막걸리 한잔, 그리고 과일은 천하에 둘도 없는 주안상이다. 언제나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는 슬쩍 여행길을 제안한다. 혼자도 훌쩍 떠나는 친구, 발틱 3국 여행을 해 보자한다. 지난해에는 이름도 낯선 코카서스 3국을 같이 다녀오기도 했다. 


친구와 어울려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배낭을 메고 수없이 지나온 흔적들, 삶 중에 가장 잘했다는 배낭여행이다. 많은 나라 여행을 했기에 낯선 나라들에 눈이 가는 이유다. 오래전 부탄이 그랬고, 티베트가 그랬으며 네팔과 스리랑카가 그랬었다. 지난해 찾았던 코카서스 3국에 이어 발틱 3국에 눈이 머문 것이다. 이젠 망설일 것도 없이 서둘러야 여행도 할 수 있다. 세월이 조금 더 지나면 여행사에서도 불편해하는 나이다. 보험사에 따라 다르지만 80세가 넘으면 보험가입도 해주지 않는다. 올해는 발틱 3국으로 한 번 향해볼까? 


여행에 대한 의견을 조율하고 앉은 근처 식당, 오래전에 신혼여행으로 각광받던 호텔이다. 이젠 세월따라 조촐한 식당으로 변신했다. 변모한 호텔이 초라하기보단 어엿한 모습이다. 넷이서 앉아 따스한 국물로 목을 축여본다. 따스함에 으스스한 몸을 녹여줌이 너무 좋다. 친구와 함께함이 더 좋았으리라. 언제나 소주와 함께했어야 하는 식탁이 텅 비어 있다. 맛깔난 점심으로 몸을 데우고 나서는 식당, 봄이 무르익으면 동학사에서 만나볼까 생각이다. 서둘러 발틱 3국 여행길을 예약해야겠다. 친구와 봄을 맞으러 나갔던 세조길을 하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