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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Jun 18. 2023

추억의 달빛이 거실 창에 달려있다.

(창문에 달린 달을 보면서)

아무도 없는 듯이 골짜기는 고요하다. 저녁 골짜기엔 오가는 산새들만 주절거린다. 멀리서 울어주는 뻐꾸기가 가끔 끼어들고 더러는 고라니가 뛰어노는 앞산이다. 이웃들도 일찌감치 하루를 마감했나 보다. 언제나 좋아하는 작은 어둠이 좋아 텅 빈 거실에 앉았다. 


초가지붕 위 둥근 박이 뒹구는 곳에 하얀 박꽃이 웃고 있다. 조용히 바라보는 달빛 덕에 감나무 그림자도 내려앉았다. 고요함 속에 잠자는 고향 집이 거실 창으로 찾아왔다.


거실 창으로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찾아온 것이다. 적당한 가로등 불빛은 편안함을 준다. 어둠이 더러는 따스함을 주기 때문이다. 가로등 불빛과 눈을 마주치는 사이 또 다른 하얀빛이 찾아왔다. 산허리를 넘어 허공에 달린 달빛이다. 핼쑥한 듯 핏빛 없는 하얀 달은 보름 녘이 되어 온전히 찰 듯 말듯하다. 얼추 차 있는 달은 기다림이 있어 좋다. 가득 찬 달을 기다려서다. 언뜻 바라보는 하얀 달 속엔 많은 사연들이 있다. 

오래전 어머님의 기도가 남아 있고, 집으로 오는 길을 밝혀주는 고마움도 있다. 하굣길을 마친 발걸음을 달래주던 달이었고, 소팔러 가신 아버지 발걸음을 밝혀주는 달이기도 했다. 하굣길을 밝혀주고, 5일장 길을 밝혀주던 달빛은 편안함의 달이었다. 


호젓한 달빛 속엔 추억도 남아 있다. 추석맞이 콩쿠르대회 발길을 밝혀주던 달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이웃 동네 오가던 달빛이다. 가끔은 참외밭을 더듬었고, 이웃 과수원을 드나들게 했던 달이었다. 손톱 같던 작은달은 희망을 주던 달빛이기도 했다. 사범대학을 입학하고 혼란한 심경으로 살아가던 시절이다. 중학교 진학이 어려웠던 아이들을 늦게까지 가르쳤다. 

하숙집으로 돌아오는 길, 손톱 같던 하얀 달빛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희망을 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 감사했고, 도움을 줄 수 있음에 행복했다. 먼 길을 돌아오는 길이 좋았고 살아가는 재미를 주는 달이었다. 한 풀이를 안고 있는 달이기도 했다. 대학을 위한 상경 길이 막히고 시골에서 살아가던 시절이다. 한풀이로 종일토록 산을 헤맨 고단한 몸이었다. 고단함을 무릅쓰고  밤새껏 걸어오는 길이었다. 쓰라린 가슴과 몸뚱이를 밝혀주던 하얀 달빛이었다. 


주어진 삶에 불만으로 홀로 걷는 헛헛한 길이었다. 온갖 사연과 아픔을 안고 밤새 걸어오던 먼 길을 밝혀준 하얀 달을 거실에서 만난 것이다. 어머님의 기도가 있고 희망과 즐거움을 주는 달이었는가 하면, 한 풀이를 바라보던 달이었다.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하얀 달 속 지난 세월을 들여다본 저녁이다. 잠깐 사이에 달의 위치가 달라졌다. 순식간에 창문에서 사라진 달빛,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는가 보다. 저녁에 만난 달빛이 주는 그리움과 행복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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