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마냥 May 11. 2023

여행은 뗄 수 없는 평생의 업이었다.

(여행의 시작과 끝, 노르웨이에서)

어렵게 자란 사람,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다. 부지런히 공부하고 검소한 삶이 필요했던 이유다. 아이들에게만은 그럴 수 없다는 내 아버지의 생각, 어쩌면 나도 그랬으리라. 정적인 풍요를 모르고 살았기에 내 아이들에겐 그럴 수 없었다. 많은 것을 보여주고 체험하게 해 주고 싶었다. 바로 여행이었다. 바쁜 일상에도 많은 곳을 헤매고 다녔다. 국내 유명지를 한 달에 두어 번은 찾아 나섰다. 전국을 돌고 도는 여행의 끝, 해외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친구들과 소주 한 잔 나누던 자리, 해외여행을 제안했다. 일 벌이는 데는 선수였던 사람이다. 


친구들을 설득해 해외여행을 추진했다. 90년대 초반, 해외여행이 낯설던 시절의 해외여행은 패키지였고, 배낭여행이란 소문만 들렸다. 해외여행의 초보, 패키지여행으로 시작했고 첫 번째 해외여행은 태국과 베트남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여권을 들고 가이드를 따라다니다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여행의 의미를 담을 수 없다는 결론, 어떻게 할까?  한 번으로 마무리한 패키지여행은 결국 배낭여행으로 이어졌다. 친구들끼리 모여했던 패키지여행은 여러 명과 함께 했다.

몽골 만달고비의 해 질 녘

배낭여행, 구성원이 너무 많은 10여 명이었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된다 할 수 없어 전원이 떠났던 첫 번째 배낭여행, 그리스와 터키를 향해 출발했다. 첫날 숙소만 예약하고 떠난 배낭여행은 많은 경험을 하게 했다. 숙소를 정하고 여행일정을 짜야했으며 이동수단을 알아야 했다. 많은 사람이 할 일이 많았고, 말도 많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은 일을 분담하는 수밖에 없었고, 많은 인원은 단점도 있었지만 장점도 있었다. 많은 인원을 감당할 식당이나 숙소선정이 어렵지만 버스등의 예약의 장점이 있고, 불안함이 없는 든든함이었다.


여행에 관한 일을 나누어 진행했다. 일정을 짜는 사람, 숙소를 정하는 사람, 유적지 공부를 하여 알려주는 사람 등, 모두가 여행안내자였다. 20여 일간의 첫 번째 배낭여행을 끝내고 얻은 교훈은 매우 어렵고도 고단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칠 수 없는 여행병에 걸리고 말았다. 많은 예산이 필요하기에 적금을 들어야 했고, 순번을 정해 여행을 주도했다. 하지만, 많은 인원을 이끌고 가기엔 힘에 겨워 여행사를 이용하기도 했다. 방법을 다양하고도 유연하게 이용하면서 많은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우선은 기존 여행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다.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해 질 녘

첫 번째 배낭여행이 끝나고, 몇 차례는 독자적인 배낭여행을 시도했다. 모든 일정을 회원들이 정해 시도하는 것이었다. 항공권만 확보되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모두가 주어진 과제를 성실히 실행하며, 회장의 진두지휘하에 이루어졌다. 우선은 네팔과 인도여행이 그랬고, 베트남과 캄보디아 여행도 독자적으로 시도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배낭여행도 독자적으로 시도하면서 많은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대부분이 20일 가까이 일정을 잡았으며, 인원은 대부분 동일했다. 여행을 거듭하면서 노하우가 생기가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쉽고도 편안한 여행이 될 수 있을까? 기존 여행사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여행국가와 일정이 정해지면 여행사와 접촉을 했다. 여행국가의 도시와 유적지를 선정하고 여행사가 일정을 소화해 주는 방법이었다. 많은 인원이기에 가능했으며 여행사도 국가와 여행도시 등, 일정을 잡아주는 것에도 적극적이었다. 이런 방법으로 시도해 본 것이 남인도와 스리랑카 여행이었고, 남아공과 나미비아 그리고 보츠와나 여행도 같은 방법이었다. 다시, 남미의 페루와 볼리비아, 칠레여행은 독특했다. 남미 여행일정을 잡고 안내할 가이드를 고용한 것이었다. 가이드가 안내하며 숙소를 정해 일정을 조율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별난 배낭여행도 있었다. 몽골여행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절, 2008년 여름이었다. 희망인원 4 부부가 출발했던 배낭여행이다.

티베트의 아침

현지 여행사와 접촉해 도착한 울란바토르, 전혀 예상 밖이었다. 여행에 관한 초보여행사를 만난 것이었다. 어떻게 할까? 과감하게 계약을 파기하고 현지에서 여행사를 찾아 나섰다. 운이 좋았는지 한국인이 운영하던 여행사를 만나게 되었고, 현지 차량 두대를 전세 내어 열흘간 고비사막을 누볐다. 길도 없는 막막한 사막을 계약서 한 장 없이 몸을 맡기는 무모한 여행이었다. 계약서가 왜 필요하냐는 현지 반응에 어쩔 수 없는 여행이었지만, 곳곳을 내 마음대로 다녀본 신나는 여행이었다. 젊음이 있었기에 가능해던 모든 여행이 지금이었으면 어떻게 하였을까? 궁금하기도 했던 여행이다. 다시 찾은 몽골 흡수골, 여행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안락한 여행이었다. 따스한 게르에 장작불이 타고 있다. 온화한 기분으로 하루를 맞이하는 여행, 뜻깊은 여행이었다. 북유럽 배낭여행은 다시, 독자적으로 시도했다.


핀란드로 입국하여 스웨덴,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여행하는 20일 일정이었다. 모든 것을 손수 결정하고 운전하며 여행이다.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출발하고 싶은 시간에 가면 되었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여행이었고, 아이슬란드 여행은 아들과 둘이 떠난 배낭여행이다. 단지 오로라를 보기 위해 떠났던 여행은 흥미로웠다. 눈이 쌓인 빙하를 찾아 온종일 헤맨 여행에 오로라를 만났고, 뜨거운 물을 뿜어내는 온천의 신기함을 만난 여행이다. 미리 준비하지 못했던 곳은 패키지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쿠바와 멕시코가 그런 형식이었고 이집트나 모로코 그리고 스페인, 포르투갈이 그랬다. 하지만 부탄 같은 경우는 독특한 경우였다. 일본과 중국을 수시로 드나들었고, 미얀마는 두 집이 다녀온 안락한 여행이었다. 

명사산 월하천

모든 것이 국가가 관장하는 부탄의 여행 시시템이어서 친구부부와 떠났던 여행이 훨씬 안락했다. 차량과 가이드가 배정되고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여행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그 외에 티베트나 동남아는 대부분 패키지를 이용하는 편리함을 추구했지만 조금은 아쉬움이 남아 있는 여행이었다. 고산증세로 병원신세를 저야 했던 티베트 여행은 아직도 남아 있는 아픔이다. 칭짱열차의 42시간 여행은 잊지 못할 여행이었다. 설산에서 시작해 사막과 초원 그리고 늪지대가 나타나는 열차에서의 풍경, 북경에서 만난 엄청난 매연과 대조되는 아름다운 열차여행이었다. 


동유럽과 우루무치의 패키지여행은 고단했다. 곳곳을 누비는 고단한 일정은 패키지여행의 운명이었다. 갈 곳이 많이 남아 있는 시절, 코로나가 왔다. 북남미의 아름다운 여행, 마추픽추는 대단했고 티티카카호수와 우유니 사막의 아름다움은 숨을 멎게 했다. 언덕에서 만난 라파스의 풍경에 넋을 놓으며 숨을 헐떡거렸다. 다음 여행지인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여행을 결정해 놓고, 시기만 기다리고 있는 사이 코로나가 막아섰다. 어떻게 할까?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남미여행이지만, 서서히 코로나가 종식되고 있다. 여기에 눈에 띄는 곳이 있었으니 코카서스 3국이라는 신선한 나라였다. 친구와 함께 떠난 코카서스 3국의 여행은 어떠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뒷동산의 추억을 따라 느린 한 걸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