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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Apr 15. 2023

뒷동산의 추억을 따라 느린 한 걸음

(뒷동산의 작은 산행 3)

산길에 들어 반 시간정도가 지났다. 좌측으로 내려오면 저수지와 포도밭을 만나지만, 오던 길을 곧장 오르면 풀어 주고 당겨 준 근육이 활발해 다소의 땀방울이 맺히게 된다. 언덕을 요리조리 돌고 돌아 오르면 자그마한 쉼터가 나온다. 이쯤에서 한 모금 물로 숨을 고르고 산을 오르면, 안나푸르나는 아니지만 로프가 설치된 가파른 산등성이 나온다. 고른 숨을 발판으로 고된 발걸음을 재촉한다.  


옆으로 오르고 앞으로 걸으며 10여 분 오르면, 준비된 근육이 활발해지고 숨어있던 근육마저 운동을 시작한다. 뻐근한 온몸을 풀어주는 청량제가 따로 없다. 시원함과 상쾌함이 동반하는 산길이다. 산등성이에 오르면 소나무가 품어내는 솔향이 그윽하고, 좌우에는 산목련이 하얗게 치장했으니 점심때쯤이면 김밥 한 줄에 시원한 맥주 한잔이 으뜸 성찬이다. 넉넉한 마음으로 땀을 식히면 발길마저 가벼워 덩달아 흥겹다. 


얼마간의 휴식으로 산을 오르면 출발한 지 한 시간, 자그마한 봉우리에 간이 의자가 있다. 누가 이런 수고를 아끼지 않았을까? 소박한 의자에 앉아 바라보는 시내는 눈 아래 있다. 가슴 시원해 좋고, 산행을 알리는 표시가 있어 여유를 찾으려는 서민들의 발걸음을 알 수 있다. 긴긴 햇살은 피부 노화를 부추기는 절대적 요소이니 가능하면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거나 차양이 달린 모자가 유용하다. 

산길에서 만날 수 있는 찔레꽃

서늘한 바람으로 땀을 식힌 후 발길을 재촉하면 여러 갈래 길이 혼동을 준다. 좌측으로 잡으면 절집 부근으로 내려가게 되고, 얼마를 더 올라 좌측으로 길을 잡으면 것대산 정상 밑 양궁장으로 갈 수 있으며, 다시 곧장 오르면 낙가산 정상에 오르게 된다. 언제나 갈등을 조장하는 산길이다. 푸름을 가득 진 나무들이 힘겨워 보이지만 계절의 흥겨움에 절로 신이 난다. 갖가지 나무들이 나름대로 추억을 전해주고, 긴 오르막길도 널브러져 길손을 맞이한다. 숲에 모인 작은 초록들이 잠들어갈 즈음 산은 정적에 숨이 멎었다.


좌측으로 길을 잡으면 고요한 절집을 만날 수 있다. 시내를 굽어보는 것대산과 이어지는 낙가산 중턱에 신라시대 창건한 유서 깊은 보살사가 자리하고 있다. 층층이 쌓아 올린 언덕 위에 앉은 절집, 언제나 고즈넉함이 편안함을 전해준다. 절집을 돌아보며 고즈넉한 산사의 한가로움을 찾을 수 있다. 봄이면 봄대로 연초록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고, 여름이면 검푸른 녹음의 향연을 즐길 수 있으며, 가을이면 노랗게 열린 감을 바라보며 단풍에 넋을 잃는다. 겨울이면 겨울대로 하얀 눈이 덮인 골짜기를 맛볼 수 있다.


등산으로 근력이 소진되었으면 오가는 시내버스로 육신의 피로를 덜 수도 있고, 저수지 제방을 타고 넘어 양궁장에서의 한나절도 즐거움으로 메울 수 있다. 저수지에서 양궁장에 이르는 길은, 초봄이면 민들레를 비롯한 해맑은 새싹들이 시선을 잡으며 좌우에는 가득한 포도밭이 손님들을 반긴다. 저수지에는 가끔 태공들이 한가함을 즐기고 있다. 고기를 낚는 건지, 세월을 낚는지는 구분할 수 없다. 양궁장에 들어서면 파란 잔디밭이 시원함을 선사하고, 파란 잔디를 배경으로 신세 졌던 근육을 풀어주면 이보다 좋은 산행 후 뒤풀이는 없다. 

산벚꽃이 소담스럽다.

양궁장까지 산행이 성에 차지 않으면 낙가산 줄기에서 벗어나지 말고 것대산 줄기로 갈아타면 되는데, 출발지에서 낙가산 정상까지는 두 시간 정도 소요된다. 양궁장 뒤편에서 정상으로 향하면 철탑과 더불어 산불초소가 나온다. 정상으로 가는 길엔 수십 년 소나무들이 굽어 보고, 널찍한 길은 걷기 좋을 만큼 평평하다. 햇살을 막고 뿜어내는 솔향은 그윽하기만 한데, 세월 속 숨멎은 가지들이 아직도 여전하다. 산아래로 시원한 바람이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 준다. 선뜻 윤석중 선생이 작사한 '산바람 강바람'이 생각나는 바람을 맞으며 힘겹지만 정상에 도착한다. 


봄이면 산벚꽃이 만발하여 발길을 잡는다. 간이 의자에 앉아 삶은 계란 한두 개나 달콤한 고구마로 허기를 메운 후, 능선을 따라 것대산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등산객도 드물고, 이름 모를 산새들만 지저귄다. 이 생각과 저 생각을 짚어 볼 수도 있고, 좋은 사람과 동행했다면 산새들이 놀라지 않을 정도의 자그마한 소리로 주고받으며 한가함을 만끽할 수 있다. 깊은 숲은 햇살이 비집고 들어올 틈도 없다. 간간히 산새들만 오고 가는 길이다. 여기에도 굵은 소나무들이 가득 들어서 있다. 다시 만난 솔향은 땀이 흐른 코를 그냥 두지 않는다. 서둘러 발길을 재촉해도 힘겹지 않아 좋다. 


봄철이면 산성으로 향하는 길에는 다복한 조팝나무가 반겨준다. 어릴 적 싸리꽃이라 착각했던 조팝나무 꽃은 풀숲 속에 모여 피기에 너무나 다복해 언제나 정이 가는 꽃이다. 꽃이 피면 조를 튀겨 놓은 것을 연상시킨다 하여 조팝나무라 부른다는 조팝나무, 시골에선 못자리를 시작으로 농사철이 왔음을 짐작할 수 있는 꽃이다. 어린 시절을 되뇔 수 있도록 마음 깊이 자리한 꽃이지만, 이젠 돌아갈 수 없는 추억으로만 가슴속에 자리한 넉넉한 꽃이기도 하다. 곳곳에서 하양이 가득해 언제나 넋을 빼앗고 만다.

온 산을 가득 메운 봄꽃들의 잔치

낙가산 정상에서 것대산으로 넘어가면 녹음이 그득해져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가득이다. 겨울에는 응달에 얼어붙은 얼음으로 산행이 불편하다. 잠깐의 발걸음으로 도착한 이정골 뒤편, 행글라이더 출발지가 되는데 현대인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산 정상에는 자그마한 정자가 있다. 힘이 들면 정자에 앉아 물 한 모금 마셔도 좋고, 지나는 산새들과 지껄여도 좋다. 멀리 시내가 보이지만, 뿌연 시야가 눈에 거슬린다. 미세먼지, 황사라는 듣도 보도 못하던 시절이 그리운 세상이다. 가끔 만나는 등산객들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반대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이쯤 되면 다리도 피곤함을 호소하니 쉴 수밖에 없는 산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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