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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Aug 28. 2023

그대들 터전에 살게 되어 미안하오.

(골짜기에서 삶, 여름정원은 아름답다)

푸른 잔디밭은 좋지만 조금은 고민이다. 그냥 두자니 잡초와 늘 전쟁을 해야 하고, 밭으로 만들자니 무한한 노동력과 고단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는 지인이 잔디밭을 만든다며 신이 났다. 파란 잔디가 가득한 정원을 갖고 싶은 모양인데, 말릴 수도 없고 어떻게 할까 고민한 적이 있다. 


시골살이는 좋은 점도 많지만, 고단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언제나 남의 둥지, 남의 동네에서 살아야 하고 골짜기 식구들에겐 이방인이다. 산새가 그렇고 산짐승이 그러하며, 각종 벌레와 곤충이 있고 온갖 식물들이 살고 있던 곳이었다. 


여름장마와 푸짐한 습기는 잔디가 자라기 좋은 조건이었다. 여기에 동반하여 잡초가 열렬이 환영하는 조건이니 골짜기의 어설픈 가드너는 고단하기만 하다. 한 줄기 빗줄기가 지나고 나면 잡초는 곳곳에서 손을 든다. 여기저기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잡초들, 얄밉기도 하지만 씩씩함이 대단하다. 뽑아도 자라나고 밟아도 살아나는 잡초, 오죽하면 잡초 인생이라 하지 않던가? 뒤 뜰에 심어 놓은 벚나무는 칡넝쿨이 덮고 말았다. 긴 칡은 넘실대며 보랏빛 꽃까지 피워 놓았다. 

뒤뜰을 점령한 칡덩굴

지난해엔 긴 싸움 끝에 칡을 평정하는 수고를 했지만 올해는 해외를 드나들며 시간에 쫓기어 시기를 잃고 말았다. 울 너머에는 환삼덩굴이 진을 치고 있고, 얌전한 척하던 돌콩이 신이 났다.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각종 나무를 칭칭 감고 올라섰다. 여기에 보랏빛 꽃이라도 피웠으니 다행이지만, 감겨있는 소나무며 병꽃나무는 기를 펴지 못하는 형국이다. 


언제쯤 이 나무들을 해방시켜 줄까? 시원한 날이 오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잔디밭을 지나 텃밭으로 향한다. 아침마다 만나는 잔디밭엔 잡초와 벌레들의 나들이 자국이 곳곳에 있다. 


먹거리를 위해 쳐 놓은 거미줄은 아름답다. 하얀 거미줄에 이슬이 내려앉고 햇살이 얹히기만 하면 아름다움이 극에 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바람이 찾아오면 환상적인 그네의 행렬은 숨을 멎게 한다. 곳곳에 만들어진 하얀 그네 행렬은 산에도 그리고 들에서도 춤을 춘다. 하지만 곳곳에 불편한 곤충들과도 동거해야 하는 시골 살이다. 지렁이가 있고 방아깨비가 있으며 각종 해충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시골살이다. 

잔디밭 곳곳에 삶의 흔적이

파란 잔디밭에 흙무덤이 수두룩하다. 여기에도 흙이 쌓여있고 저기에도 있다. 수도 없이 많은 흙무덤을 보면서 그들의 세상에 들어와 살면서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하는 생각을 또 하게 된다. 파란 잔디에 이슬이 내린 아침은 아름답다. 여기에 햇살이 내려오면 환상적인 그림을 얹어 주는데, 지렁이가 만든 곳곳의 흙무덤은 어찌해야 할까?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한다. 


엊그제 텃밭엔 자연의 신비함을 보기 위해 대파도 심어 놓고, 깻잎을 얻기 위해 깨모종 그리고 상추와 배추를 심어 놓았다. 아침에 텃밭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골짜기의 삶이다 보니 산식구 고라니와 같이 살고 있다. 밤마다 짝을 찾는 고라니의 울부짖음은 그냥 지나치는 소리가 되었고, 저녁 운전 길레 만나는 몇 마리는 일상이 되었다. 고라니가 작은 텃밭에 기웃거린 것이 아닌가? 먹을 것도 없고 구경거리도 없는 텃밭에 큰 발자국이 있다. 


고라니를 제외하면 이렇게 커다란 발자국이 있을 수 없으니 고라니의 소행이다. 벌목한 앞산에 자주 뛰어다니는 고라니가 찾아온 것이다. 어떻게 말릴 수 없을까? 다시 푸르게 자리를 잡아 신기했던 상추는 여기저기에 상처가 나 있다. 무슨 일일까 하여 잎을 뒤적이자 거기엔 방아깨비가 식사를 하고 있다. 

밝은 가을날을 기대해 봅니다.

손바닥만 한 배추밭도 예외일 수는 없다. 엊그제 심어 놓은 작은 배추모종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잎이 모조리 잘라진 형태로 심어 놓은 흔적이 없다. 땅 속에 숨어 있다 밤중에 배추를 잘라먹는 거세미나망 애벌레란다. 여기저기에 많은 배추모를 잘라 놓고 말았다. 


땅 속을 헤집으니 실체가 드러났다. 어쩔 수 없이 보식을 해야 하지만 어떻게 할 수는 없을까? 배추를 심기 전에 살충제를 뿌려야 하지만, 결국은 배추를 타고 올라오면 나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머뭇거린다. 배추를 다시 심기로 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골짜기 산식구들 터전에 내가 들어와 살고 있다. 무슨 특권이 있다고 그들의 삶을 방해할 수 있다던가? 편한 마음으로 벌레가 먹고 남은 것을 먹고, 고라니가 뜯어먹고 남은 것만 먹고 말아야지. 주인인 그대들도 먹고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마음 편하게 마음을 다잡은 아침은 평화롭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에 내가 들어와 미안하오! 산식구들을 위한 큰 도움은 아니어도 그들과 동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내년에는 산새들이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집이라도 몇 개 걸어줘야겠다. 산식구들의 보금자리였으니 조금은 양보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편해진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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