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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Sep 04. 2023

골짜기의 아침나절은 아름답다.

(아침나절이 바쁘다, 신비한 도라지 꽃)

구질구질한 빗줄기가 멈추고 햇살이 산을 넘었다. 오랜만에 반가운 햇살에 창문을 활짝 열자 시원함이 흠뻑 넘어온다. 오랜만에 만나는 골짜기의 상큼함이다. 얼른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 기분은 여기 아니면 느끼지 못하는 산뜻함이다. 귀찮던 빗줄기가 남겨 놓고 간 것은 우람한 도랑물 소리인 줄 알았는데, 곳곳에 잡초가 무성해졌다. 눈을 질끈 감고 도랑물로 들어섰다. 야~~ 이런 맛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


발목이 시원하다 못해 시려온다. 얼른 바위로 올라서 물을 털어 보지만 짜릿함은 벌써 온몸을 움츠리게 했다. 여름장마 후에 쇠잔했던 물줄기가 큼직해졌고 소리마저 우렁차게 되었으니 한껏 부자가 된 심정이다. 얼른 호미를 들고 물길을 정리하기로 했다. 급하게 흘러내리는 물길을 잡아 느림의 물길이 보고 싶어서다. 

피로를 씻어주는 집 앞 도랑물 

어느새 아내가 따라 내려왔다. 멋모르고 물에 들어서더니 깜짝 놀란다. 시원함과 시린 발을 견딜 수 없어서다. 아내와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곳곳에 새로 물길을 만들고 작은 소(沼)를 만들었다. 가끔 내려와 세수를 하고 발을 닦을 곳이 필요해서다. 커다란 돌을 옮기고 자갈을 긁어 웅덩이를 만들어 물길을 돌려놓아다. 곳곳에서 무성하게 자란 풀을 제거하니 제법 그럴듯한 웅덩이가 생겼다. 종아리까지 잠기는 시원한 물줄기가 휘돌아 나간다. 오랜만에 골짜기에서 만나는 아침이 좋은 이유이다. 


물길을 정리하고 들어선 잔디밭엔 잡초가 가득하다. 며칠 전에 정리한 잔디밭이 빗줄기가 만든 횡포다. 곳곳에는 비바람의 흔적이 뚜렷하다. 뒷산의 낙엽이 내려와 잔디밭에 날렸고, 짓궂은 빗줄기는 수로를 막아섰다. 잔디밭 잡초를 뽑자 아내도 따라나섰다. 촌에 살면서 풀도 뽑지 않으면 어떻게 살 수 있느냐는 말에 얼른 수긍하는 아내지만,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벌레가 가득하고, 비바람이 그냥 지나지 않는 골짜기에 삶이 그리 쉽다던가? 잡초를 뽑아나가는 정원에는 서서히 가을이 물들고 있다. 

가을은 어느새 우리 곁으로 왔다.

봄철에 하얀 꽃으로 치장했던 산딸나무가 선두를 섰다. 열매가 딸기 모양과 비슷하다 하여 이름 지어진 산딸나무 잎이 가을빛이다. 여름이 와서 더위와 싸우느라 바쁘던 사이에 가을이 슬쩍 다가왔다. 얼핏 앞 잔디밭의 산딸나무에도 가을 내려왔으니 벌써 더위가 아쉬운 계절이 돌아오고 있나 보다. 빨강 코스모스가 꽃을 달았다. 아직은 여름인 듯 하지만 계절은 어김없이 골짜기에 스며들었다. 여름이 더워 힘들었고 기나긴 빗줄기가 사람을 지치게 했었다. 하지만 어느새 8월도 산을 넘어갔고, 달력은 달랑 네 장이 되고 말았다. 


정원에 향긋함을 나눠주던 더덕도 가을 열매를 달았고, 마당 끝 도라지는 보랏빛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신비스러운 보랏빛이다. 냄새와 빛깔을 즐기려는 여름 정원이 가득해진 것이다. 아직도 꽃범의 꼬리는 분홍빛이 흘러내린다. 여름이 지나 심은 상추는 긴 빗줄기를 뚫고 살아났다. 산을 넘은 햇살이 풍부해졌으니 조만간 널따란 잎을 달 것이다. 기어이 아내가 뿌려 놓은 가을 아욱이 고개를 밀어냈다. 찬 바람이 찾아오는 날, 건새우와 된장이 어우러진 냄새가 가득할 것이다. 

향긋한 더덕과 아욱의 아침

잔디밭 곳곳에 삶의 흔적은 가득하다. 아침을 즐기던 방아깨비가 달아나고 개미가 줄을 긋고 있다. 잔디밭곳곳엔 지렁이의 흔적이 뚜렷하고 작은 거미도 가득하다. 한참의 노력 끝에 잔디밭이 말쑥해졌다. 잔디밭을 뒤로하고 들어선 앞 도랑은 여전히 옹알거린다. 바지를 걷고 도랑에 들어서자 종이라가 아프도록 시리다. 얼른 바위 위에 올라서 세수를 하고, 발을 씻는다. 아침나절의 고단함은 오간데 없다. 아무도 오고 가는 사람이 없는 골짜기, 이웃들은 뭐를 하고 있을까? 한참의 노동 끝에 만나는 아침은 평화스럽기만 하다. 신기함에 눈을 뗄 수 없는 자연의 신비함에 숙연해지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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