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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Sep 08. 2023

아침에 만나는 세상사 이야기.

(아침 운동을 나서며, 여름에 만난 자연)

새벽에 눈이 뜨인 건, 엊저녁에 아내와 함께한 소맥 몇 잔이었나 보다. 골짜기에 뜬 소박한 달을 보면서 소맥을 한잔 했다. 오랜만에 마셔보는 집술이다. 조금은 속이 불편했는지 다섯 시에 눈이 뜨였다. 벌써 일어난 이웃집 닭은 길게 목을 늘이는 아침, 왠지 몸은 찌뿌둥하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운동하러 가는 수밖에 없지. 냉혹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체육관으로 향할 준비를 한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가는 체육관이다. 자그마한 면소재지에 있는 체육관은 꽤 괜찮은 편이다. 갖가지 운동기구가 준비되어 있고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데, 이용료는 고작 한 달에 만원이다. 동네 사람들이 가득 모여 운동을 하며 삶의 이야기를 나눈다. 새벽부터 체육관이 붐비는 이유는 새벽운동을 마치고 일터로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서둘러 운전하며 나서는 길은 아침부터 붐비기 시작한다. 거리가 5km 정도가 되는지라 차를 타고 가야만 한다. 수 많은 차량이 오가는 거리, 무슨 할 일들이 그렇게도 많을까? 

앞 산에 달이 뜨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도심으로 가는 차량들이 많았으나 이젠 전혀 다른 풍경이다. 도심에서 외곽으로 나서는 차량들이 많아졌다. 시골 곳곳에 공장들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오래전 나의 아버지가 농사를 짓던 들판에 공장이 들어섰고, 푸르른 산이 무너지고 공장이 들어섰다. 아기자기한 들판 한가운데도 공장이 있고, 뜬금없는 공장모습에 삶의 모습이 완전히 변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가까스로 차량행렬에 끼어들어 가는 도중엔 만나는 풍경이 다양하다. 골짜기를 벗어나면 자그마한 골프장이 두 곳이나 들어서 있다. 작은 산을 다스려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아침부터 골프장으로 들어서는 차량들이 가득하다. 삶이 변했다더니 고급스러운 운동이라 생각하던 골프가 어느덧 대중 운동이 되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산골짜기가 대낮 같은 불빛이다. 아직도 골프장 구경도 못한 사람이지만, 가끔은 한 번쯤 배워볼까도 생각했던 운동이다. 

벚꽃이 가득하다.

이젠 삶의 질도 높아졌고, 살아감의 방식도 달라졌으니 쉽게 접할 수 있는 운동이다. 하지만, 살아가기 바쁘던 시절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이런저런 이유로 접하지 못했던 골프장을 뒤로하고 체육관으로 가는 길엔 작은 시냇물이 흐른다. 제법 수량이 많아 고기도 많고 다슬기를 잡은 사람도 눈에 보인다. 시냇물을 따라 길게 자전거 도로가 있어 자전거를 즐기기엔 너무 좋다. 길가엔 자전거를 대여하는 곳도 있지만 사람이 뜸하다. 냇가에는 많은 식구들이 살아간다. 가마우지가 고기를 잡고 하얀 백노도 눈에 띈다. 부지런한 아저씨는 다슬기를 잡기에 바쁘다. 허리까지 빠지는 냇가에서 부지런히 무언가를 건져 올리고 있다.  


시내에서 나와 노부부가 앉아 피라미를 낚던 낚시터는 비어 있다. 노부부와 기르는 강아지까지 나와 새벽부터 낚시를 하던 노부부다. 멀리 시내에서 나와 피라미를 낚던 노부부, 붕어 낚시는 하실 줄 모른단다. 작은 낚싯대를 갖고 오로지 피라미를 낚던 할아버지다. 할머니는 차량 뒤에서 아침밥을 챙기신다. 아무 말씀도 없이 오로지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할머니, 평생을 그리 사셨을 것이다. 말씀도 없이 할아버지는 오로지 낚시를 하시고, 할머니는 아침밥을 지으신다. 유유히 흐르는 냇물에 눈길을 주고 아침을 맞이하시던 노부부였는데, 자리를 비움에 궁금하다. 며칠째 빈자리가 오늘따라 더 궁금해지는 아침이다. 


언제나 이 길로 갈까 말까를 망설이던 길이 나왔다. 체육관으로 가는 지름길, 차량 한 대가 간신히 지날 수 있는 작은 길이 냇가를 따라 이어진다. 양쪽으론 큰 벚나무가 자리하고 있어 언제나 아름다움을 주는 길이다.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이 가득이다. 여름이 지고 가을이 되면 알록달록한 단풍이 가득한 길이다. 떨어진 낙엽을 따라 오가는 길은 운치가 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좋은 길이다. 운동을 하러 오가면서 포기할 수 없었던 길이지만 고민이 생겼다. 

냇가에서 마난 진객들

언제부터인가 동네 어르신들이 길가 쉼터에 모이기 때문이다.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공공근로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인 모양이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어르신도 있고, 아직은 건장한 모습으로 오신 어르신도 있다. 커다란 비늘 봉지에 빗자루나 집게를 들고 길가를 오고 가신다. 차가 와도 잘 알아보지도 못하신다. 옆 어르신이 알려줘야 차가 오고 가는 것을 알게 되는 어르신들이다. 아침 한나절 쓰레기를 줍고 얼마의 대가를 받는지 모르지만, 어르신들의 삶을 방해하는 것 같아 망설인다. 아름다운 길을 포기할 수도 없어 늘 고민하는 길이다.


등이 굽은 어르신들이 보이고, 유모차에 의지해 간신히 오신 어르신도 있다. 간신히 이것저것을 줍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자식들이 알면 어떤 생각을 할까? 세월은 성성하던 등을 굽게 했고 유모차에 의지해야만 움직일 수 있게 했다. 불편하지만 얼마간의 용돈을 위해 나오신 어르신들, 아랑곳하지 않고 옆에선 파크 골프를 즐기고 있다. 어르신들이 열심히 청소한 덕택에 깨끗한 환경에서 운동을 할 수 있고, 상쾌한 기분으로 오갈 수 있다. 누구나 맞이해야 하는 세월임을 알지만 남의 일인 양 지나쳐 가며 제 할 일을 한다. 

여름이 깊어만 갑니다. 

말하기 좋은 사람들은 100세 시대라 한다. 아흔아홉까지 팔팔하게 살아야 한단다. 하지만 세월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오래전, 어머님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더위가 힘들고, 식사하기가 힘들다 하셨다. 왜 그럴까를 이해하지 못했던 시절이다. 올해처럼 끝없이 더위가 있던 계절을 누가 쉽다고 할 수 있을까? 젊은이야 웬만한 어려움은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버틸 수 있는 힘은 쇠잔해지고 더위도 어렵고 추위도 어려워진다. 작은 소로를 천천히 지나면서 많은 생각이 오고 간다.


운동을 나서는 새벽길에 많은 사람들을 보며 생각이 많다. 일터로 나서는 젊은이들이 있는가 하면 몇 푼의 용돈을 위해 어려운 몸을 움직이는 어르신들도 있다. 얼마간의 벌이를 위해 찬 냇물에서 다슬기를 잡는 사람도 있다. 운동을 위해 나서는 사람들,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 있고 자전거로 바람을 가르는 젊은이가 있다. 냇가를 따라 시냇가 잔디밭에서 파크골프를 즐기는 사람, 체육관으로 건강을 다지러 가는 사람도 있다. 모두 저마다의 처지에 따라 남은 삶을 영위하기에 여념이 없다. 복잡한 머리를 털고 들어선 체육관엔 벌써 운동을 끝내고 일터로 나서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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