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텃밭 이야기, 가을 상추)
시골집 둘레에 있는 몇 개의 화단은 늘 꽃으로 가득하다. 화단은 마당 끝에도 있고, 뒤뜰에도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갖가지 꽃으로 치장된다. 봄부터 꽃잔디와 영산홍이 피는가 하면 벚꽃 등의 다양한 꽃들이 분주하게 피어난다. 여름에 들어서도 꽃범의 꼬리를 비롯해 비비추 등 정원의 꽃들은 멈춤이 없다. 가을의 구절초와 코스모스까지 꽃이 피면 가꾸며 보는 것이 시골살이의 재미다. 여기엔 또 우리의 정원이 있으니 여기저기 자투리 땅에 있는 작은 텃밭들이다.
기껏해야 열 평도 되지 않는 작은 텃밭엔 늘 채소가 들어서 있다. 세 개로 나뉘어 있는 작은 텃밭엔 봄의 상추와 쑥갓등 쌈채소가 있고, 토마토와 고추, 가지가 있으며 오이도 빼놓을 수 없는 단골 식구들이다. 채소를 화초로 생각하며 돌보지만, 특별히 화초처럼 키우는 것들도 있으니 토란이 그러하고, 도라지와 더덕은 먹기보단 꽃과 냄새가 좋아 심는다. 아침에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쫓아온다. 텃밭에서 나는 더덕냄새다.
뒤편에 자리 잡은 작은 텃밭엔 오늘도 마술꾼 토란잎이 무성하다. 적당한 정도의 물만 이고 흔들거리는 토란잎은 늘 시선함을 주고 있지만, 주변의 상추는 더위와 장마에 지쳐 망가지고 말았다. 도저히 볼 수 없는 처절한 모습에 얼른 지워버리고 말았다. 상추와 케일이 없어진 자리는 어떻게 할까? 아내와 고민 끝에 다시 채소를 심기로 했다. 채소라 하지만 두 식구가 먹는 것이 얼마나 될까?
텃밭에 심어지는 채소는 채소의 역할보단 화초의 역할이 훨씬 크다. 파릇한 잎이 하루마다 커지고, 이슬이 앉아 반짝이는 모습은 황홀하다. 우선은 가을 상추를 심기로 했고, 여기에 배추와 깻잎을 위한 깨를 심어 보기로 했다. 두 식구가 먹는 채소라야 한 줌이면 족하다. 하지만 소중한 텃밭을 그냥 둘 수가 없다. 밭에 맞는 정도의 모종을 구입하기로 했다. 작은 시골이지만 도시에서 나와 사는 사람들이 많아 모종을 파는 곳이 여러 곳이다. 농약을 파는 상점에서 모종을 파는 곳이 서너 곳이 된다. 아침 운동이 끝내고 찾은 상점엔 다양한 모종은 아니지만 얼마간의 모종을 팔고 있다.
우선은 30 포기의 상추를 구입하자, 주인이 깜짝 놀란다. 그걸 어떻게 다 먹느냐는 표정이다. 상추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이웃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라는 말에 수긍을 한다. 배추 15 포기에 대파를 구입하고, 깻잎을 먹을 깨모종을 구입했다. 열 포기를 달라는 말에 주인은 여섯 포기면 충분하다며 이것만 사란다. 물건을 팔면서 왜 달라면 주지 적게 주느냐는 말에 자기가 키워봐서 알고 있단다. 괜히 쓸데없이 많이 심지 말고 여섯 포기면 충분하다며 손사래를 친다. 거금 만 원어치로 부자가 된 듯이 돌아와 텃밭에 채소가 아닌 화초를 심는다.
두둑을 돋우고 심을 자리에 물을 준다. 정성껏 심어 나가는 채소 아닌 화초는 귀엽기도 하다. 자그마한 모종을 심어 열심히 물만 주면 커다란 모습으로 자라난다.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모습으로 자라나는 식물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신선한 야채를 뜯어먹을 생각도 있지만 커가는 채소의 모습이 더 신기하다. 채소로 심었지만 언제나 신기한 화초로 바라보는 텃밭이 거의 완성이 되었다. 이젠, 남은 곳에 열무를 뿌려 볼까 아니면 아욱을 심을까 고민 중이다. 열무를 심어 놓으면 벌레가 그냥 두질 않으니 망설여진다. 언젠가 어렵게 키워 놓은 열무를 줄기만 남기고 다 먹어버린 벌레들의 식성이다. 아욱씨를 뿌려 볼까?
문을 닫고 먹는다는 아욱국이 아니던가?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자그마한 씨앗을 뿌렸다. 며칠간 물을 주고 돌보는 사이에 그 작은 씨앗이 문을 열었다.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작은 싹이 올라오는 모습은 언제 봐도 앙증스럽다. 먹을 아욱이 아니라 보는 아욱을 뿌려야겠다. 가끔 건새우가 들어간 시원한 아욱국은 잊을 수가 없다. 시골살이니 얻을 수 있는 다슬기가 들어간 아욱국, 짜릿함에 몸서리가 처지는 맛이다. 시골 할머니가 손수 잡아 손질한 다슬기가 주는 맛은 잊을 수 없는 진한 맛이다.
된장이 곁들여진 아욱국은 어머니가 좋아하셨다. 버리듯이 뿌려 놓은 아욱은 언제나 실망시키지 않는다. 꽃을 피울 때까지 잎을 주는 가을 아욱이었다. 어떻게 아욱으로 국을 끓일 생각을 했을까? 여기에 된장을 곁들일 생각은 어떻게 했고. 된장과 곁들여 끓인 얼갈이배춧국도 잊을 수 없다. 구수함에 시원함을 얹어주는 된장은 무엇과 어울려도 안아주는 맛이다.
잠깐의 노력으로 텃밭에 화초처럼 기르는 채소를 가득 심었다. 가을 상추에 배추가 심어졌고, 일 년 내 먹을 대파도 한자리 차지했다. 여기에 향긋한 깻잎이 한 자리 거들었고 이젠, 아욱씨은 채소가 아닌 화초로 길러야겠다. 야채밭이 아닌 화초를 길러가는 작은 텃밭은 오늘도 일거리를 주는 것 같지만 일거리가 아닌 즐거움을 주는 소중한 재산이다. 맑게 개인 산골 아침에 한껏 안개를 몰고 온 햇살이 반짝인다. 장마의 인심으로 후해진 도랑물이 옹알거리는 골짜기 텃밭은 오늘도 부자가 된 듯이 신선한 아침을 찾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