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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Sep 21. 2023

가을비 내리는 골짜기 풍경

(비 내리는 골짜기)

골짜기 날씨는 변덕스럽다. 비가 오다가 햇살이 찾아오고, 바람이 불다 조용해진다. 변화무쌍한 날씨에 민감합 골짜기에선 일찍 찾아오는 추위에 준비해야 할 것은 난방유다. 골짜기 곳곳을 오가는 석유집 사장님, 도랑물이 끊임이 없다며 부러워한다. 일 년 내 끊임이 없는 이 같은 도랑물은 어느 골짜기에도 없다 한다. 즐거움과 산뜻함을 주는 그 도랑물이 쇠잔해졌다. 수량의 변화가 강수량에 따라 조금은 변하기 때문이다.


새벽에 잠을 깨운 것은 줄기찬 빗줄기다. 와~~ 가을비라 하기에는 많은 비다. 조금은 걱정이 되는 골짜기에 거센 비가 내리고 있다. 오래전 빗소리는 한없이 정다웠다. 초가지붕을 타고 떨어지는 소리, 감나무 잎에 머물렀다 떨어지는 소리는 가슴에 긴 여운을 주었다. 툇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먼산 빗줄기는 아련한 그림이었다. 바람에 따라 실타래가 되고 점선도 그렸다. 아련한 추억 속 가을비가 부슬거린다.

비가 그친 골짜기 풍경

얼른 일어나 창문을 열자 물소리가 세차가 들려온다. 도랑물은 어느새 몸집이 거세졌다. 좋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가을비다. 가을비는 들판에 필요 없고, 곡식을 익혀야 하는 따가운 햇살이다. 앞산엔 하얀 안개가 내려와 여기가 골짜기임을 새삼스레 알려주는 그림이다. 바람 따라 오가는 물안개는 빗줄기와 함께 넘실거림에 넋을 놓았다. 바람 따라 산을 넘고 앞산 모습을 바꾸어 놓는다. 갑자기 비가 그치고 햇살이 나타났다. 물안개가 햇살에 쫓기듯 산을 넘는다.


한 여름 장마철같이 변덕스러운 날씨다. 앞 산 언덕에 자리한 얕은 벌판에도 얕은 가을이 찾아왔다.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고마니풀이 붉은 꽃을 피웠다. 드문드문 코스모스도 붉은 꽃을 피웠고, 이른 봄부터 꽃을 자랑하던 금계국도 얼굴을 보여준다. 가을비가 그치고 가을이 익어가면 빨간 고추잠자리가 하늘을 날 것이다. 여기에 가을이 듬뿍 내려오면 황금물결이 넘실거리고, 곳곳엔 가을 흔적이 그득하리라. 여기에 가끔 나타나는 고라니가 동참하고, 산새들마저 하늘을 날면 가을 축제가 가득하리라.

수량이 많아진 도랑물

자그마한 햇살이 찾아온 초가지붕, 툭 떨어지는 물방울은 정스러웠다.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소리는 투박했다. 떨어질 듯 말 듯 물방울이 망설인다. 지나는 바람이 간질이며 참지 못한 물방울, 무심코 지껄이는 말소리 되어 뜰안에 떨어진다. 기어이 모인 빗물은 작은 도랑을 만들었고, 울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는 낭랑했다. 창을 넘어 흘러오는 물소리는 오래 전의 그 소리였다. 그리움에 젖어 바라보는 사이 걱정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바지를 걷고 도랑물로 들어섰다. 위에서 내려온 잡풀을 정리하고 서있는 도랑물, 발이 시릴 정도로 차갑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시원함이다. 얼른 소매를 걷고 세수를 하며 다리를 적신다.  하늘에선 가랑비가 멈추지 않는다. 옷에 젖는지 마는지 상관이 없다.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오르는 도랑물, 차가움에 그리움이 섞여 가을비는 오간데 없다. 한참을 서성이다 올라선 정원엔 다시 가을비가 내린다. 가끔의 생각이다.

골짜기에 가을이 왔다.

작은 도랑엔 사시사철 물이 흐르고, 옆으로는 풀이 수북하다. 도랑의 격을 갖춘 이곳에 고기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송사리가 오가고 미꾸리가 헤엄을 친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풀숲에 얼기미를 대고 풀숲을 밟아 내려오면 고기는 얼기미 속으로 들어갔다. 파닥거리며 뛰는 송사리가 있었고, 굵직한 미꾸라지가 있었다. 가끔은 붕어가 튀어 올라 깜짝 놀라기도 했다. 어머니는 새물 냄새를 맡고 고기가 올라온다 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오래 전의 추억이다. 골짜기에서 만나는 가을비는 자연스러운 소리다.


아파트 창문을 두드리는 무심한 빗소리가 아닌, 나뭇잎을 두드리는 빗소리다. 앞산의 녹음을 적시어 주는 가을비다. 지난여름의 세찬 빗줄기는 두려움이었다. 온갖 삶을 할퀴고 간 물줄기가 야속도 했다. 그리움이 아닌 원망과 원한이 담긴 빗줄기였다. 멀리서 개구리 소리가 들리는 골짜기엔 가을비가 다시 시작되었다. 추적대는 가을비가 끊임이 없으려나 보다. 가끔 오가는 택배차량만 빗소리를 뚫고 지나간다. 가을비 따라 옹알거리는 도랑물이 정스럽지만, 조금은 걱정되는 골짜기의 한나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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