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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Oct 13. 2023

인생여행은 어언 50여 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인생 여행 끝에 더 긴 여행)

평생 친구들의 가을 나들이

평생 여행으로 끈끈한 정이 있고, 서로의 삶을 나누며 살아가는 친구들이다. 고등학교에서 시작해 대학과 사회까지 삶의 동반자인 친구로부터 가을 나들이 소식이 전해졌다. 회장이 갖가지 대소사를 책임지는 여느 모임과 다를 바 없지만, 특이한 것은 언제나 여행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행으로 시작해 여행으로 끝이 나는 신나는 나들이다. 계절마다 이루어지는 나들이, 이번 여행지도 운치 있는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여행지를 돌아보며 맛있는 식사를 즐기고, 삶의 모습들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리스 아테네 공항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일곱 친구 부부가 갈 길을 잡지 못해 헤매고 있었으니 어설픈 인생 여행의 첫걸음이었다. 2003년 1월 3일, 초겨울의 새벽이었다. 고등학교를 거쳐 같은 대학을 다녔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로 평생 같은 길을 가는 소중한 친구들의 세상 여행이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시절, 몇 해 전부터 해외여행은 했지만 보다 여행다운 여행의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친구들과 인생여행은 갖가지 사연과 이야깃거리 끊임이 없다. 모든 여행이 그러하듯이 설레기도 하지만 피곤한 일인데, 배낭여행을 20여 년 넘겼으니 무던한 친구들이다. 여행 며칠은 즐겁지만 서서히 체력이 고갈되면서 예민해지기 시작하고,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기는 어렵다. 서로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말다툼이 벌어지고 단체여행은 종말이 되고 만다. 여건에 따라 각자의 해외여행을 하면서 고단하고 어려운 배낭여행을 20여 년이나 같이 한 친구들이다.

천상의 정원에서 바라 본 '대청호수'

배낭여행보다 긴 여행의 시작

그리스 여행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을 넘나들었지만, 20일간의 북유럽여행을 마지막으로 배낭여행은 마감되었다. 많은 추억과 경험을 한 배낭여행이 벽에 부딪친 것이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여행 출발을 앞두고 코로나가 온 것이다. 모든 것이 준비되어 출발만을 기다리던 아쉬운 배낭여행이었다. 아쉬움 속에 살아온 친구들이 은퇴를 한 후, 배낭여행보다도 긴 인행 여행을 시작한 지도 오래되었다. 오전 9시가 되어 친구들과 만났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던가! 모두가 은퇴한 삶이지만 저마다의 삶은 바쁘게 돌아간다. 자유스러운 몸이 되자 할 일이 제각각이고, 삶의 방식이 달라졌다. 삶의 터전을 바꾼 친구도 있고, 삶의 방식이 변한 친구도 있다. 한꺼번에 어울리기 어려운 이유이다. 일곱 친구의 부부, 14명 중 8명만 차량 두대에 나누어 출발했다. 한 친구는 삶의 터전을 바꾸어 불참했고, 손주 사랑에 빠진 친구는 현장으로 오기로 했다. 근처에서 전원생활을 하는 친구도 도착지로 오기로 했으니 모두 모이면 12명이 되는 셈이다. 


인생 여행지는 10명만이 모여 대청댐을 끼고 수려한 장관을 갖춘 곳, 이름하여 '천상의 정원'으로 더 잘 알려진 수생식물 학습원이었다. 어느 퇴직한 목회자가 지역주민들과 합심하여 시작한 수생식물학습원이 대청호와 어울려 천상의 정원을 이루고 있었다. 자연의 위대함을 몸소 느끼며 만난 화원은 대단했다. 현직에서 은퇴한 고희의 친구들, 오늘만은 '천천히'와  '한가함' 속에 자연 속에 녹아든다. 드넓게 펼쳐지는 대청호와 천상의 정원이 주는 안락함은 오랜만에 온전한 휴식을 준다. 

부소담악의 잔잔함

언제 이런 한가함을 맛볼 수 있을까! 삶의 이야기가 오가고, 신선한 공기 속을 거닐며 한가함을 만끽한다. 천천히와 호젓함 속에 만난 한적한 카페, 여기에도 카페는 비켜갈 수 없는 코스인가 보다. 따사로운 햇살아래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그냥' 앉아 있다. 삶이 무엇이고 남은 삶은 어떻게 살 것인가? 모두는 아무 걱정 없는 발길이지만 세월이 묻은 모습은 많이 변했다. 듬성듬성한 하얀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리고, 어줍은 걸음걸이는 여지없이 은퇴자의 모습이다. 오랫동안의 삶은 인간의 모습까지 변하게 해 놓았다. 서로를 격려하며 한 나절을 보내고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월 속에 삶은 변해 있었다.

두주불사 하던 친구들, 싱싱하던 젊음은 가고 소주 한 병에 맥주 한 병으로 마감해야 했다. 운전도 이유이긴 하지만 온전한 몸을 보전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알게 한다. 늦게 도착한 친구와 함께 점심을 하고 또 다른 풍광을 찾아갔다. 아내와 한 번 찾았던 곳이지만 이름도 낯선 '부소담악(芙沼潭岳)'이다. 연꽃이 물에 떠 있는 '연화부소'형 마을이름이 '부소무니'이고, 부소무니 앞 물 위에 떠있는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 부소담악(芙沼潭岳)이란다. 친구들과 어울려 거니는 물가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세월은 한참, 변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즐거움에 가을이 주는 상쾌함으로 묵직했던 세월의 무게를 씻어낸다. 한참의 거닐음 속에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한가한 카페를 다시 찾았다. 세월의 변화를 안겨주는 듯한 카페, 안락한 주점을 찾아가던 친구들 삶의 형태도 바뀌었다. 앞이 트인 카페에 앉아 아무 생각도 없다. 오로지 한가함만이 존재하는 지금이다. 세상을 다 가질 것 같았던 젊음은 오간데 없고, 커피 한잔을 놓고 앉아 있다. 모두가 홀가분한 듯 하지만, 삶의 무게를 견딘 몸짓이 깊이 남아 있는 친구들이다. 다시, 근처 전원주택에 자리 잡은 친구 집으로 옮겨갔다. 


어렵게 마련한 호젓한 전원주택, 아무도 없는 산 말랭이에 자리를 잡았다. 더없이 좋은 공기가 오가고 산새소리만 들리는 전원주택이다. 갖가지 농작물을 심어 놓고 자식들이 오길 기다리는 곳, 아비의 정성이 가득 넘치는 곳이다. 여기에 아이들은 얼마나 오고 갈까? 아비의 정성을 그들은 얼마나 알아줄까? 


세월의 덧없음이 가득 묻어 있는 전원주택에서 그동안의 삶의 조각들을 모아 본다. 친구가 재배한 미나리를 뜯고, 고구마 순을 다듬는 풍경이 아름답다. 한 조각의 달큼한 가을 배가 가슴을 적셔주고, 간간히 오가는 한마디 한마디가 정스럽다. 세월 속에 감추어진 갖가지 사연이 오가면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친구들과 어울림은 벌써 50년을 훌쩍 넘기고 있지만,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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