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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Jan 02. 2024

골짜기의 겨울은 고요하다.

(골짜기 겨울 풍경)

작은 골짜기의 겨울은 숨소리도 없다. 두꺼운 겨울 옷을 입은 이웃집 닭장도 닭이 있는 듯 없는 듯이 고요하다. 산을 넘은 햇살이 동네를 깨우는 아침, 가느다란 도랑물만이 옹알거리는 아침이다. 서둘러 일어난 이웃이 닭장을 향하고 있음이 닭이 살아 있음을 알려준다. 먹이를 줘야 하고 물을 건네줘야 하기 때문이다. 앞산엔 엊그제 내린 눈이 살짝 덮고 있다. 탐스런 눈이라도 와줬으면 하는 아침 골짜기다.


영하 10 여도를 밑도는 골짜기의 분위기다. 여기저기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름은 골짜기의 추위 농도를 그대로 들어낸다. 바쁘게 올라가는 연기는 강한 추위가 온 것이고, 드문드문 올라가는 하얀 연기는 아직도 느긋한 추위임을 알려준다. 조용한 골짜기에 정적을 깨우는 것은 가끔 오가는 택배차량뿐이다. 오늘은 특별한 트럭이 동네를 휘젓고 있다. 고물을 찾아 이 동네 저 동네를 오가는 차량이다.

'메밀묵이나 찹쌀떡!'이 오래 전의 추억을 불러준다면, '고물 사세요!'가 동네를 깨워줌은 골짜기에 자리를 잡고 알아냈다. 추위가 엄습한 동네에 처절하고도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거친 추위를 이겨내며 소리치는 '찹쌀떡이나 메밀묵!'이었다. 얼른 튀어 나가야 잡을 수 있는 발걸음, 왜 이리도 빨라 골목을 달아나는지 야속하기도 했었다. 골짜기의 세월은 달라졌다. 익숙한 트럭에 거대한 음향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언제나 익숙한 동네 아저씨 목소리다. 혹시나 해서 고개를 디밀어 본다. 실제 사람이 하는 소리인가?


어리석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내 실망하는 것은 어김없이 기계음을 이용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가끔 소리가 바뀌어 들려오는 소리도 있다. '창틀이나 고장 난 문짝 고치세요!', 겨울임을 알려주는 소리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막아야 하고, 고장 난 문짝을 고쳐야 겨울을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과 여름이 바뀌었음은 품목이 달라짐으로 알 수 있다. 메뉴 중 '방충망'대신에 '창틀'로 바뀐 것이다. 언제나 엉킴이 없는 정확한 소리는 기계음의 소리였기에, 가끔은 엉킨 아저씨의 목소리가 그립기도 한 소리다.

여름내 부지런히 알을 낳던 닭도 겨울엔 쉬어야 하나보다. 하루에 20여 개를 주던 계란도 몇 개로 대신하고 마는 겨울이란다. 움직임도 둔해졌고, 먹고살기도 힘겨워하는 동물의 세계도 겨울을 실감하나 보다. 가끔 찾아오던 고라니도 모습을 감추었다. 가끔은 엉성한 뜀박질로 웃음을 주던 고라니 새끼도 자취를 감추었고, 동네를 휘젓고 다니던 산까지는 얼굴도 보여주지 않는다. 처마밑에 자리했던 참새는 또 어디로 갔을까?


처마밑이 아니면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참새도 자취를 감추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이 추운 겨울을 지내고 있을까? 자그마한 새집이라도 지어줘야겠다는 야심 찬 생각을 실행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아침이다. 새 봄에는 반드시 새집을 해 달아야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 자그마한 판자 한 개도 구하기 어려운 골짜기가 아쉽기도 하다. 이제야 동네 지킴이가 한 마디 거드는 아침이다. 어렵게 올라온 햇살에 겨우 밝아진 골짜기, 가느다란 도랑물만이 아직도 옹알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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