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마냥 Feb 10. 2024

어머니, 설날이 왔습니다.

(설날의 아침)

어머님, 설날이 왔습니다.

어둑한 저녁나절

객지 자식 동구 밖에 나타날까

담장 너머 바라봐도

긴 그림자 윗동네로 스쳐가니

간간히 오고 가는 사람소리를

그렇게도 그리워하셨지요.


어린 자식 눈에 밟혀

당신 삶은 아랑곳 않고

궁핍한 살림살이 쟁여가며

대목장 구석에서 용케도 찾아낸

검고도 그 두툼한 양말은

한없이 질기고도 따스해

명절이 지나고도 한 동안

당신의 온기를 전해 주었었지요.


어머님, 설날이 왔습니다.

어둑한 설 전날 저녁

동네 방앗간 긴 줄 마다하지 않고

어렵사리 마련한 하얀 가래떡

널따란 도마에 올려가며 썰어내는

당신의 구부정한 그 모습을

흐릿한 호롱불빛이 누런 벽지에 비추임이

지금도 그리운 그림으로 남아있는

설날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어머님, 설날이 왔습니다.

가으내 턴 송홧가루 다식을 빗고

몰래 묻어놓은 굵직한 알밤을 꺼내

투박스러운 칼로 정성껏 깎아

두런대는 자식들 입에 물리며

흐뭇해하시던 그런 설날이

허전한 저만의 설이 되어 왔습니다.


어머님, 설날이 왔습니다.

한 해 동안 앞뒤 뜰을 어지르며

바쁜 손길을 붙잡기도 하지만

날마다 어김없이 하얀 알을 주어

볏짚에 엮인 열 개의 알이

장날마다 비릿한 찬거리를 마련해 주던

커다란 살림 밑천 누런 닭을 잡아

당신의 그릇보다 자식들 입을 찾던

징하고도 그리운 설날이

당신이 그리운 한스런 날이 되어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왔습니다.


먼 거리 딸이 찾아오고

손녀마저 할아버지 찾아온다니

아들 며느리 헐레벌떡 문 두드리면

어느새 둥근 밥상 그득해질 테니

다시 찾아온 설날을 즐기며

오래전 당신을 헤아려 보렵니다.

어머님, 당신이 그리운 설이 왔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아버지 마음 싣고 딸네 집으로 달려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