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의 아침)
어머님, 설날이 왔습니다.
어둑한 저녁나절
객지 자식 동구 밖에 나타날까
담장 너머 바라봐도
긴 그림자 윗동네로 스쳐가니
간간히 오고 가는 사람소리를
그렇게도 그리워하셨지요.
어린 자식 눈에 밟혀
당신 삶은 아랑곳 않고
궁핍한 살림살이 쟁여가며
대목장 구석에서 용케도 찾아낸
검고도 그 두툼한 양말은
한없이 질기고도 따스해
명절이 지나고도 한 동안
당신의 온기를 전해 주었었지요.
어머님, 설날이 왔습니다.
어둑한 설 전날 저녁
동네 방앗간 긴 줄 마다하지 않고
어렵사리 마련한 하얀 가래떡
널따란 도마에 올려가며 썰어내는
당신의 구부정한 그 모습을
흐릿한 호롱불빛이 누런 벽지에 비추임이
지금도 그리운 그림으로 남아있는
설날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어머님, 설날이 왔습니다.
가으내 턴 송홧가루 다식을 빗고
몰래 묻어놓은 굵직한 알밤을 꺼내
투박스러운 칼로 정성껏 깎아
두런대는 자식들 입에 물리며
흐뭇해하시던 그런 설날이
허전한 저만의 설이 되어 왔습니다.
어머님, 설날이 왔습니다.
한 해 동안 앞뒤 뜰을 어지르며
바쁜 손길을 붙잡기도 하지만
날마다 어김없이 하얀 알을 주어
볏짚에 엮인 열 개의 알이
장날마다 비릿한 찬거리를 마련해 주던
커다란 살림 밑천 누런 닭을 잡아
당신의 그릇보다 자식들 입을 찾던
징하고도 그리운 설날이
당신이 그리운 한스런 날이 되어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왔습니다.
먼 거리 딸이 찾아오고
손녀마저 할아버지 찾아온다니
아들 며느리 헐레벌떡 문 두드리면
어느새 둥근 밥상 그득해질 테니
다시 찾아온 설날을 즐기며
오래전 당신을 헤아려 보렵니다.
어머님, 당신이 그리운 설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