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마냥 Feb 24. 2024

나는  오늘, 무엇을 빌어야 할까?

(보름 날에 만난 생각)

나는 무엇을 빌어야 할까? 언뜻 보름날 아침에 드는 생각이다. 복권에 당첨되게 해 달라 할까? 아니면 거창한 애국자답게 나라가 잘 되게 해 달라 할까?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 오르게 없다. 차분히 아침이나 먹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밖을 내다보니 하얀 눈이 살짝 내려 보기 좋은 풍경이 되었다. 커피 한 잔과 환한 아침이 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느덧 설날이 엊그제였는데 벌써 정월 대보름이다. 짧은 2월이 서러워하는 아침, 오래 전의 열나흗날이 떠오르는 아침이다. 어머니는 오늘도 부산하게 오고 가셨다. 


언제나처럼 머리엔 흰 수건이 얹혀있었다. 가끔은 흐르는 땀도 닦아내고, 몸에 앉은 먼지도 털어 낼 수 있는 용도인 줄 알았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용도는 세월이 앗아가 머리칼을 대신해 썰렁한 머리를 보호해 주는 역할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당신 세월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된 비밀이다. 정월 대보름 날, 일 년에 두어 번 있는 시루떡을 하는 날이다. 추수 후에 조상님께 빌어야 했고, 정월 대보름 날엔 장독대와 우물 그리고 대청마루에 모셔 놓고 절을 해야 하는 시루떡이다. 서둘러 방앗간엘 들려야 하니 아침부터 서둘러야 한다. 여기에 보름날 새끼들에게 먹일 오곡밥에 일곱 가지나물을 준비해야 했다.

지난봄을 뚫고 나오던 수선화

어머님은 할 일은 너무나 많았다. 자식들에게 먹일 먹거리를 준비하고 봄을 맞이할 준비도 서둘러야 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어머님의 바쁜 일과와는 전혀 상관없는 아버지, 언제나 한마디 말씀도 없이 앉아 계셨다. 가끔 나무지게를 지고 뒷산으로 오르는 것이 일과였던 아버지, 왜 그리 말씀이 없으셨을까? 당연히 하실 말씀도 꾹 참아야만 했던 이유는 오랜 후에 알게 되었다. 궁핍한 살림을 꾸리시는 어머니는 늘 신경이 곤두서 있다. 아버지 한 마디에 서너 마디는 하셨다. 아이들은 어떠했을까?


아버지의 말씀에 고분고분했지만 가끔은 어깃장을 놓기도 했다. 아버지의 한 마디에 투덜대는 자식들 소리, 가정의 평화를 위해 대꾸하긴 쉽지 않았다. 서너 마디는 들어야 했던 아버지, 아예 입을 닫고 있는 것이 편했을 것이다. 아버지 세월이 되어서야 알게 된 아버지의 특급 비밀이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오늘도 보름날을 준비하신다. 갖가지 나물을 볶아내고 시루떡을 찌고 있다. 아버지의 고단함이 얹힌 나무를 아궁이에 밀어 넣으며 잠시 쉼을 얻고 있다. 기어이 하얀 김이 길게 뿜어 내는 시루떡이 익어가고 있다. 


대청마루에 옮겨 놓은 시루떡은 어머님의 정성이 흘러내린다. 팥고물에 흘러내렸고, 하얀 떡에 가득 묻어난다. 먹음직한 떡시루에 물 한 사발 떠 놓고 묵묵부답이시던 아버지가 절을 하고, 어머니가 절을 하신다. 한참을 구부리고 일어나시지 않던 부모님, 무엇을 그렇게도 간절하셨을까? 어린 철부지는 절을 하면서도 궁금했다. 나는 무엇을 빌어야 할까? 돈을 달라 할까? 아니며 무엇을 빌어야 할지 모르며 절을 했다. 어느덧 일흔한 번째의 보름을 맞이하는 나, 무엇을 빌어야 할까?

집 앞을 흐르는 도랑물

엊그제 내린 눈을 밀어내고 텃밭을 정리했다. 퇴비를 주고 작은 텃밭을 정리했다. 퇴비가 잘 스며들어 토마토가 잘 열리고, 고추가 잘 달리게 하고 싶어서다. 푸릇한 상추가 잘 자라, 아이들이 찾아오면 삼겹살을 구워주고 싶어서다. 작은 손녀의 텃밭에도 뿌려 놓았다. 혹시 찾아 올 손녀에게 보기 좋은 화단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언제나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를 좋아하는 아내다. 푸릇한 새싹이 올라오는 것을 신기해한다. 여기저기에 씨앗을 뿌려 놓는 이유다. 지난해에 뿌려 놓은 시금치가 아직도 푸릇하다. 살짝 퇴비를 뿌려 놓았다. 


골짜기에 비가 오고 햇살이 내려오면 풍성한 푸름이 가득하리라. 여기에 무엇을 더 바라야 한다던가? 작은 텃밭에 채소를 심고, 손녀의 화단이 화려하면 된다. 가끔 아이들이 찾아오고, 친구들이 찾아올 것이다. 진한 연기를 내며 숯불을 피워내고, 상추를 뜯고 고추를 따 오면 된다. 먹음직한 삼겹살을 구어 온 식구가 둘러앉는다. 푸르른 상추를 손안에 펴고, 삼겹살 한 조각에 아내표 된장을 푹 찍은 고추를 올렸다. 매콤한 마늘도 동참하면 상추를 오므려 떡 벌린 입안으로 밀어 넣으면 된다. 


일흔한 번째의 보름이 찾아 온날, 무얼 빌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빌어야 할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언뜻 떠오르는 빌어야 할 것은 텃밭에 상추가 잘 자라고, 밝은 햇살이 자주 찾아오면 된다. 맑은 이슬이 잔디밭에 내려오고, 산을 넘은 밝은 햇살이 찾아온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맑은 햇살을 보는 날이 많으면 된다. 여기에 운이 좋으면 친구들이 찾아올 테고, 재수가 더 놓으면 아이들이 찾아올 테지. 봄이 오려는 아침에 작은 눈이 내려왔다. 눈을 녹여주는 햇살이 찾아와야 보름달도 볼 수 있으리라. 오래전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떠 올리며 빈 머리로 절을 해야겠다. 그냥, 하루를 맞이함이 감사함에 절을 해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머니, 설날이 왔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