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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May 25. 2024

열흘간의 여행길에 집주인이 바뀌었다.

(골짜기의 여름 풍경, 키르기스스탄에서 만난 풍경)

친구와 떠났던 여행길은 화려한 나라가 아닌 소소한 나라였다. 언제나 말없이 따라나서는 친구가 있어 가능했던 여행, 아무런 대꾸가 없어 심심해도 언제나 진국이다. 조금 부족해도 말이 없고, 고마우면 즉각 반응이 온다. 배낭을 베개 삼아 세계 곳곳을 떠돌았던 친구부부다. 이번 여행은 카자흐 사람들의 삶이 궁금했고, 키르기스스탄엔 무엇이 있으며 어감이 좋은 타슈켄트는 어떤 모습일까가 알고 싶어 떠난 여행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 등 동남아로 향하고, 유럽으로 발길을 돌릴 때 거리낌 없이 길을 잡았다. 


배낭여행이 조금은 버거워 찾아 나선 패키지여행은 낯설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재미도 있었지만 갖가지 행동을 보면서 조금은 아쉬웠고, 여행의 초보인 듯한 나라의 여행지 선택은 고개를 갸우뚱하게도 했다. 어떻게 이런 여행지만 계획하고 소개할까? 가끔은 의견을 내고 싶지만, 어림도 없는 이야기이기에 따라나서야 했다. 지루하지만 가끔 만날 수 있는 푸른 초원은 마음을 비우기에 충분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은 만주벌판의 드넓은 옥수수밭을 연상케 했고, 하루종일 만났던 인도 노랑 밭을 기억하게 했다. 

우즈베크 부하라에서 만난 야경

세월의 탓인지 몸은 고단했다. 느긋한 시간에 시작하는 여행일정이지만 조금은 더운 날씨가 앞을 막아섰고, 언제나 찾아가는 공원과 모스크 그리고 야경은 조금 어설프기도 했다. 저녁에 찾은 야경을 낯에도 찾아갔고,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은 눈으로만 보고 마는 풀밭이었다. 멀리서 양이 풀을 뜯고 말이 노니는 곳은 먼 곳에 있는 그림이었고, 몸으론 다가갈 수 없는 아쉬움이었다. 거대한 호수를 밋밋한 뱃놀이로 마감해야 했고, 끝없이 펼쳐지는 만년설은 먼 산 위에 눈에 불과했다. 몽골의 게르에서의 하룻밤의 추억, 쏟아질듯한 별을 보는 별바라기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야생화천지가 그리웠고, 골짜기의 물 흐름은 황홀하기만 했다. 하지만 사람의 삶은 언제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갖게도 했다. 


한국어에 솔깃한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있었다. 한국어가 반가워 말참견을 했고, 사진에 동참해 달라는 수줍은 부탁은 그들의 삶을 상상하게 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 한국으로 돈벌이를 나섰던 사람들이다. 월남전을 기억하게 하고, 중동바람과 독일광부 그리고 간호사들의 고단했던 삶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한국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을 되살리며 눈시울을 적시었고, 짓궂은 일을 하며 얻은 부는 삶을 윤택하게 해 주었단다. 여전히 한국은 대단한 나라임을 인정해 주었고, 젊은이들의 우상임에 감사한 여행이었다. 

키르기스스탄, 이식쿨 주의 푸른 초원

저렴한 물가는 만원으로도 찾기 어려운 점심을 떠 올리기에 충분했다. 우리의 물가는 왜 그렇게도 뛰었을까? 하루의 삶이 팍팍한 오늘을 고민하게 하고, 어려운 일은 거들떠보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했다. 여행사의 일정은 어설퍼 다시 배낭여행을 꿈꾸게도 했다. 여행의 본질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여행임을 알게 하는 일정이 아쉬웠다. 가능하면 많은 일정보단 함께하는 여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지나친 기대라는 것을 알게 패키지여행의 숙명이었다. 아쉬움과 편안함이 함께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골짜기는 여전했지만 변함도 있었으니 자연 속의 삶임을 알게 해 준다. 


10일간의 짧지도 길지도 않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 온 집은 격하게 변함이 있었다. 우선은 집주인이 바뀌어 있었고 모습도 바뀌었다. 산새들이 제집인양 드나들어 집주인을  바뀌어 놓기엔 많은 손이 필요했다. 잔디밭 잡초를 정리하고, 텃밭을 가지런히 가꾸고 떠났던 집이었다. 그간의 날들은 나무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고, 텃밭은 무성해 발을 디딜 수가 없었다. 언제나 제집인양 드나들던 새들이 천국을 맞았다. 

부하라의 하늘 색깔에 눈이 멀었다.

곳곳에 분비물은 분홍으로 변해있었고, 갖가지 검불로 가득했다. 익어가는 버찌가 분비물을 변하게 했으며 곳곳에 둥지를 틀고 싶어 안달이 났다. 토마토는 어느새 듬직한 줄기로 변해 긴 가지를 늘여 놓았다. 자그마한 고추는 어느새 열매를 열게 했고, 수돗가 보리수는 큼직한 열매를 달고 있다. 금계국은 노랑꽃을 얹었고, 백당나무와 개키버들의 모습은 알 수 없는 모습이다. 열흘의 여름날은 갖가지 모습으로 변하게 했으니 주인의 발걸음을 바쁘게 만들었다. 서둘러 텃밭에 물을 주고, 갖가지 손놀림을 쉼이 없어야 했다. 


이웃에게 선심을 쓰게 했던 상추밭은 살을 찌어 빈틈이 없다. 자연의 신비함을 다시 한번 알게 하는 텃밭이다. 쑥갓이 한층 키를 불려 놓았고, 겨자채는 널따란 잎으로 고랑을 덮고 말았다. 서둘러 발길을 재촉해야 했다. 텃밭을 정리하고 뒤뜰에 풀을 처리했다. 하루에 할 수 없을 정도의 잡다한 일, 시골에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이것도 하지 않으면 골짜기의 삶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잔디밭을 정리하는 일, 마음을 가다듬고 잔디를 깎아야 한다. 끝없이 뻗어버린 나뭇가지를 가다듬고 잔디밭을 정리하면 모든 것이 자리를 잡는다. 며칠 간의 비움이 이렇게 클 줄이야 알지 못했다. 

여름날의 선물, 텃밭 상추

여러 풍경이 변했고 주인이 바뀌어 있음에 섣불리 떠날 수 없는 여행길이다. 아파트에선 전혀 걱정되지 않는 일이 커다란 일이 되었다. 시골살이의 어려움이지만 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가? 새들과 눈치 싸움을 하고, 잡초와 기싸움을 하는 사이 이틀이 훌쩍 지났다. 오늘도 무심한 뻐꾸기 소리는 여전하다. 심심해 우는지 님을 찾아 우는지 알 수 없지만, 골짜기의 한 나절을 심심치 않게 하는 소리다. 어느새 집주인을 돌려놓았으니 잠시 쉼을 찾아 오후를 남겨 놓아야겠다. 즐거운 여행의 말미는 고단하지만 즐거움과 어려움이 함께하는 골짜기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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