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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Jul 09. 2024

골짜기 장맛비엔 즐거움과 어려움이 섞여  내린다.

(장마철의 골짜기 풍경)

저녁을 먹고 잠깐의 쉼을 할 즈음,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요란하다. 뜰 앞 도랑물이 순식간에 흙탕물로 변했고, 사방은 오직 컴컴함뿐이다. 잠시 후, 바람과 함께 몰아치는 빗줄기는 여기가 어딘가를 의심케 한다. 야,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빗줄기가 두렵기만 하다. 골짜기의 삶은 언제나 습기와의 싸움인데, 습기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비가 와도 걱정인 이유다. 도랑물도 점점 흙탕물이 불어 우렁차다. 경쾌한 물 흐름이 아름답지만 조금은 위협적이다. 골짜기에 삶이 어려운 이유다. 

맑은 도랑물이 되었다.

비가 오지 않으면 텃밭이 문제다. 자그마한 텃밭이 물이 없으면 모든 것이 초라해진다. 수돗물을 아무리 부어도 빗물과는 다르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지만 땅만 굳어질 뿐, 잠시후면 흔적이 없다. 빗줄기가 잠시 지나간 자리엔 흙이 부드러운 텃밭에 작물이 춤을 춘다. 자연과 인간의 다름을 여실히 보여주는 골짜기다. 가슴을 졸이며 두어 시간 지나자 빗줄기가 주춤한다. 모든 것이 걱정되어 외등을 모두 켜 놓고 집둘레를 둘러본다. 아무 이상이 없음에 잠자리에 들어보지만 앞 도랑은 으르렁거리며 지리산을 연상케 한다. 


잠깐의 빗줄기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은 듯하다. 전화기에선 재난 문자가 연신 울린다. 잠잠해진 빗줄기를 보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새벽에 잠이 깼다. 날이 훤하게 밝아왔고 이웃집 닭은 어느새 재잘거린다. 얼른 일어나 뜰 앞에 나섰자 도랑물이 호령을 하는 골짜기에 멋진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앞 산에는 물안개가 가득이고, 도랑은 거센 물결이 경쾌하게 흐른다. 오래전 피아골에서 만난 골짜기와 다르지 않다. 

장맛비를 견딘 토마토

이 맛에 골짜기에 삶을 차렸지만 언제나 걱정이다. 비가 와도 걱정이고 오지 않아도 걱정이다. 비가 오지 않아 근심이 많았는데, 오늘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걱정이다. 아내가 뿌린 시금치와 아욱이 비닐로 덮어 피해는 면했지만, 상추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거센 비바람에 견딜 수가 없었나 보다. 여기에 토마토와 가지 그리고 고추도 장맛비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물기를 털어내고 힘을 보태주지만 빗줄기가 멈추길 기다려야겠다. 


빗줄기가 주춤한 사이 바람이 내려왔다. 앞산에 작은 자작나무가 잎을 흔든다. 앞면을 보여주는 듯하더니 뒷면을 보여준다. 바람 따라 살랑이는 자작나무가 빗줄기에 훌쩍 자란 모습이다. 하얀 개망초가 빗물에 고개를 숙였고, 도랑가에 고마니풀은 도랑물에 쓸리고 말았다. 오래전엔 미꾸라지가 올라오고, 붕어가 헤엄치던 도랑물이었다. 싱그러운 물살이 좋아 얼른 도랑에 내려섰다. 차가움에 얼른 소매를 걷고 세수를 한다. 참을 수 없는 시원함에 장맛비 걱정은 오간데 없다. 골짜기의 장맛비가 즐거움과 근심을 함께 주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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