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동산의 추억을 따라 느린 한 걸음

(뒷동산의 작은 산행 4 )

by 바람마냥

두 시간여를 걸어 거의 산성에 도착할 때가 되었다. 지난 겨울에는 길을 잘못 찾아 산성 막걸리 맛을 뒤로한 경험이 있다. 신중한 선택을 하며 능선을 타고 돌아가면 쉼터이자 많은 사람이 찾는 상당산성으로 향하는 길로 접어든다. 곳곳에 사람들이 오고 간다. 친구들과 동행한 사람들도 있고, 가족들과 함께한 사람들도 있다. 간이 의자에 앉아 살아가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간단히 쉼을 가질 수도 있다. 봄과 여름이면 갖가지 꽃이 피고, 긴 녹음이 산객의 발길을 잡는다. 무슨 할 말이 많은지 삶이 이야기가 골짜기에 가득해진다.


것대산에서 산성으로 이어지는 길은 고개를 통과하여야 했는데, 산을 깎아 개설하다 보니 급경사가 되어 횡단하기가 쉽지 않다. 우암산, 산성, 것대산, 낙가산을 통해 김수녕 양궁장으로 일주하는 등산 코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등산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산성고개 길 위로 출렁다리를 설치하여 등산을 즐기는 시민들의 편의 도모는 물론, 교통사고 예방과 함께 청주의 또 다른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출렁다리를 건너는 사람은 어린아이가 된다. 흔들기도 하고, 머뭇거리기도 하는 모습이 천상 어린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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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반 정도의 인내심을 발휘하면 도착한 곳은 상당산성의 남문 방향으로, 좌측으로 내려가면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이다. 이 길을 택하면 산성에서의 신나는 막걸리를 대할 수 없어 대단한 후회를 하게 된다. 여기까지 오는 날이면 다소 간의 피로가 밀려오게 마련인데, 산성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대하게 되는 것은 아늑한 산성마을과 어우러진 자그마한 저수지이다. 저수지를 둘러싼 산성의 곡선과 맑은 하늘을 담은 저수지가 허기진 배를 달래준다. 허겁지겁 저수지를 가로질러 찾아든 곳은 점심을 곁들인 막걸리 집인데, 점심을 했으면 시큼한 김치에 생두부를 곁들인 주안상이 제격이라 사람이 어찌 붐비는지 시장터를 방불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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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간의 산행 끝에 도착한 상당 산성은 봄이면 따스한 봄볕 따라 상춘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철마다 사람들이 형색을 달리하며 모여드는데, 사람의 무리 속에 비집고 찾은 음식점에는 막걸리에 푸짐하고도 두툼한 두부를 즐기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어느새 자리 잡은 커피집도 있고, 곳곳에 할머니들이 떡을 팔기도 한다. 산을 찾은 등산객들이 시내버스를 타려고 긴 줄을 만들었다. 언제부턴가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일상이 되어 서로가 편리함을 알게 한다. 주차장엔 차가 가득해 한대의 차량도 더할 수 없다. 삶이 풍족해진 뜻인지 갈 곳이 없어서인지 가득한 사람들이 오고 감이 즐거워 보인다. 목도 컬컬하니 말걸리 집에 자리했다.


한적하고 생각의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면서도 산성의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창쪽에 자리하면 좋다. 막걸리에 두부김치 그리고 청국장을 곁들인 식사를 주문하면 점심으로 족하다. 두부김치, 두툼하고도 예쁘게 재단된 두부 다섯 장에 촌스러운 참깨가 송골송골 얹혀있고, 날이 선 부엌칼에 잘려 밑동이 잘 정리된 시큼한 김장김치가 나온다. 여기에 곁들인 탁주 사발에 양은 주전자 술 따르는 소리를 재촉하니,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에 두툼한 두부 위에 올려진 새콤한 김치 맛과 어우러짐은 언제나 대단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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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 잔의 막걸리로 요기를 한 후, 청국장의 한 끼 식사는 나른한 몸에 더해진 게으름을 잊게 해 준다. 좀 더 호사를 누리고 싶으면 향긋한 커피 한잔도 좋다. 언제부터 가까이 와 있는지 너나없이 커피를 한 잔씩 손에 들었다. 고단해진 근육을 달래려면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가끔 찾아오는 택시도 있지만,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없다. 긴 줄 끝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맛도 대단하다. 사람 냄새가 나고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고단했던 삶도 만날 수 있고, 몇 잔의 막걸리에 젖은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참고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내려오는 시내버스에서의 잠깐의 눈 붙임으로 세 시간의 피곤함을 풀 수도 있다. 한 잔의 막걸리에 기분이 좋아진 승객들의 어수선한 소리와 소음이 얼마간의 방해는 된다. 온종일 얻은 좋은 기분에 이 정도는 참아 주어야 한다. 종일토록 보면서, 느끼면서 그리고 걸으면서 찾아낸 오래전 뒷동산의 모습들이 간간이 떠오른다. 할미꽃이 있었고, 찔레꽃이 있었으며 아카시 꽃과 벚꽃이 흐드러지던 동산이었다. 찔레순을 꺾고 진달래꽃을 따러 다닌 뒷동산이었다. 오래전 뒷동산이 마음속에 깊이 숨어 있었다면, 오늘의 뒷동산은 삶을 즐기는 산이 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산아래에 도착한 버스는 사람을 주고받으며 시내로 접어든다. 하루 종일 주고받는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 즐거운 산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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