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내리는 날, 5월은 싱그럽다.

(봄비가 주는 하루)

by 바람마냥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어린이날이 서러워하는 봄비, 하지만 여름 직전에 내리는 비는 달콤했다. 긴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이기 때문이다. 뒤뜰 연초록으로 무장한 감나무가 물을 흠뻑 먹었다. 연초록에 앉은 맑은 방울이 바람에 흔들린다. 떨어질까 말까를 망설임도 잠깐, 산 넘은 바람에 몸을 떨구고 말았다. 봄바람에 꽃 핀 시골마당은 신바람이 났다. 분홍과 하양이 섞인 금낭화, 맑은 물방울을 매달았다. 연초록에 물방울도 바람그네를 즐긴다.


동네를 오가는 산새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긴 전깃줄도 텅 비어 있음에 한가함을 안겨준다. 오로지 가느다란 도랑물만이 옹알거리는 골짜기다. 봄비는 도랑에 살을 찌워 걸걸한 소리로 지껄인다. 벌써 잎새를 키운 화살나무가 물기를 흠뻑 먹었다. 잔잔한 연초록 가지에 앉은 빗방울을 감당하기 힘겨운가 보다. 지난주에 심은 토마토도 힘을 얻었다. 어느새 줄기를 곧게 세우고 봄비를 즐기고 있다. 하얀 꽃을 매달았던 산딸나무는 아쉬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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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하양으로 하늘 속에 빛나던 꽃을 다 떨구었다. 짓궂은 비바람에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널따란 잎을 자랑하던 산딸나무엔 푸름만 남아 있다. 화려한 개키버들은 신이 났다. 벌써 푸름에 하양을 곁들였고, 가끔은 분홍빛으로 여름을 준비하고 있다. 봄비에 옷을 적시고 바람에 흔들거리는 가지, 마치 긴 치맛자락을 연상하게 한다. 빗물에 허덕이는 것이 안쓰러워 적당한 가지만 남겨 놓았지만 오늘도 힘겹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붉음의 공작단풍은 위세가 대단하다.


진한 붉음으로 무장한 공작단풍이다. 마치 공작이 긴 날개를 드리운 모양새, 어느새 땅에 닿을 만큼 가지를 늘였다. 어디서 저런 색깔이 나왔을까? 짙은 붉음으로 봄비를 맞이하는 공작단풍이다. 바람과 함께하는 봄비는 사선으로 떨어진다. 먼 산을 넘은 빗방울이 바람결에 실타래가 된다. 줄줄이 흩어지는 실타래가 바람결에 몸을 맡겼다. 대청마루에 앉아 바라보던 오래 전의 빗방울이다. 산을 넘은 바람이 남겨주는 아름다운 사선, 역시 곧은 직선보다 부드러움이 있다. 곧게 떨어지는 빗방울보단 정감이 있는 빗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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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텃밭에는 생기가 가득이다. 다복한 상추가 싱싱함에 넘실거리고, 케일은 밭이랑을 덮고 말았다. 붉음의 겨자채가 몸집을 불리자, 수줍은 곰취도 자리를 넓혔다. 밭이랑을 보여주지 않는 푸른 쑥갓이 바람에 팔랑 인다. 여기에 자잘한 아욱이 촉을 내밀었다. 문을 닫고 먹는다는 아욱국엔 말린 새우가 제격, 며칠 전 아내가 뿌려 놓은 씨앗이 대지를 밀어냈다. 가뭄뒤에 내리는 봄비가 주는 축복이다. 영산홍이 푸른 잎을 내밀자 철쭉은 하얀 꽃잎으로 마주한다. 영산홍의 붉음이 지고 철쭉의 하양이 드러낸 것이다. 잔디밭 푸름이 심심할까 하양과 붉음이 자리를 바꾸고 있나 보다.


여기에 나무수국이 키를 불리고 있다. 얼마 있으면 하양으로 치장할 나무수국이다. 무심한 듯 바라보는 불당나무도 꽃을 준비 중이다. 연초록을 먹은 꽃잎에 물기를 먹었다. 작은 화단에는 자잘한 기린초가 자리를 넓혔고, 곳곳에 자리한 황금낮달맞이 꽃이 텃세를 한다. 금계국에 지지 않는 황금달맞이꽃의 번식력이 텃세를 하는 사이 여름 꽃, 금계국도 자리 찾아 힘을 모았다. 마당끝자락을 차지한 구절초가 힘을 불리자 밀릴 수 없다는 금계국이다. 금계국과 황금달맞이꽃 그리고 구절초가 처절한 자리싸움을 하는 사이, 봄과 여름의 사이에 내리는 사이비가 짙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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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서서히 멎어지면 더 많은 꽃들이 찾아오리라. 벌써 꽃범의 꼬리가 꿈틀거리고 있고, 대문옆 칠자화도 그냥 있을 리 없다. 나리가 불쑥 키를 키웠으니 경쟁하듯 꽃을 피우리라. 여기에 하양의 말발도리와 붉은 병꽃나무, 홍화산사나무도 분홍의 꽃을 피웠다. 가뭄 끝에 내리는 비가 도랑물 소리를 높여 놓았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반가운 소리든가! 컬컬한 목소리가 그리웠던 봄날이었다. 보랏빛 붓꽃이 고개를 들고, 빨강 단풍나무는 빨갛게 볼을 붉혔다. 가뭄과 긴 눈치싸움을 하던 늦봄의 끝자락이 여름으로 치닫는 싱그러운 5월, 봄비에 시끌벅적한 골짜기의 마당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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