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그 겨울이 다시 돌아왔다.

(어머니의 겨울)

by 바람마냥

어느덧 며칠을 남기고 달력 한 장이 달랑거리는 12월, 찾아온 추위를 잘 견디어야겠다. 그래야 봄을 잘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음은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것 같았지만 어림없는 소리라며 손사래 치는 세월이다.


한 겨울, 하얀 눈이 가득 쏟아지는 새벽에 눈이 떠졌다. 벌써 부엌에서 어머니의 불 때는 소리가 들려온다.

구들장이 미지근해짐이 알려주고, 나무를 분지르는 소리가 또 알려준다.

문에 달려있는 작은 유리로 바라본 마루엔 하얀 눈이 깔려있고 어머님의 버선발자국이 선명한 아침이다.

누구도 일어나기 싫은 아침, 어머니는 벌써 찬 바람 부는 부엌에서 군불을 지피고 계신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문을 열고 들어선 부엌, 싸늘함이 없을 리 없다.

옹기종기 모여 자고 있는 식구들이 잠을 깰까 살며시 문을 열고 나가시면, 싸늘한 겨울이 몸을 떨게 했다.

서둘러 가마솥에 불을 지펴야 식구들이 세수를 하고 또 밥을 지을 수 있다. 서서히 구들장이 따스해 오고

나무 분지르는 소리가 들리는 이유다. 따스한 이불속을 벗어날 수 없다.


몸을 웅크리고 이불속으로 파고든다. 한참이 지나자 방문이 열리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어머님의 발자국 소리, 손에는 따가운 불이 담긴 화롯불이 들려있다. 갑자기 방 안이 환해지며 따스함이 몰려온다.

얼른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나야 한다. 어머님의 수고에 죄스러워서다.

어머님의 말씀도 없이 되돌아 나가심은 남은 아침상을 돌보기 위해서다. 서둘러 나선 부엌엔 따스한 물이 기다리고 있고, 아궁이엔 따스한 불이 이글거린다. 기어이 추위가 사그라드는 아침, 모두가 어머님의 수고였다.


한참이 지나자 어머니가 밥상을 들고 들어오신다. 얼굴에는 추위가 역력해도 내색이 없으시다.

이제야 빙 둘러앉아 밥을 먹는 아침, 늘 어머니가 밥그릇을 들고 식사를 하셨다.

모두 밥상에 앉아 먹는 아침 상, 어머니는 국에 밥 한 술을 떠 넣어 손에 들고 식사를 하셨다.

밥그릇은 언제나 밥상 밑 쟁반에 두고 식사를 하시는 어머니였다.

왜 저렇게 식사를 하고 계실까? 늘 어머니는 쟁반에 두고 식사를 해야 하는 줄 알았다.

식구들에게 편안함을 주기 위해 불편한 식사를 하셨던 어머니,

식사를 얼른 끝내고 이내 빈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향하신다. 얼른 설거지를 하기 위함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밥만 먹던 철부지들, 어머니는 그렇게 사는 것을 당연한 줄 알았다.


세월이 성큼 흘러, 어머님의 세월이 되었다. 책상 위에 달린 달력은 달랑 한 장뿐이다.

방에는 따스함이 가득한 보일러가 웅웅 거리며 겨울을 잊게 한다. 모든 것이 편리한 아파트 생활, 아직도 침대에서 뭉기적거린다. 겨울이어도 겨울이 아닌 듯이 걱정이 없는 세월이 되었다.

기어이 생각한다는 것이 다가온 겨울을 잘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가끔 떠 오르는 어머님의 세월, 늘 어머님의 식사는 그런 줄 알았고

언제나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는 어머니가 해야 하는 줄 알았다.


여름이면 더위가 걱정이 되고, 겨울이면 추위가 무서운 세월이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온 세월, 겨울이 되어 이제야 떠오르는 어머님의 세월이다.

기어이 겨울을 잘 이겨내야 아름다운 봄을 맞이할 수 있다는 오로지, 나만의 이기적인 생각뿐이다.

12월도 서서히 마감되어 가는 연말, 추워도 그리고 더워도 나만 걱정하는 철부지의 늦은 후회뿐이다.

다시는 만날 수도 볼 수도 없는 당신, 올해도 서서히 마감되어 가는 연말이 쓸쓸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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