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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침에 생각나는 세월, 명사산 월하천)

by 바람마냥

이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은 조금 가파르다. 계단을 올라오는 아내의 기척은 금방 알 수 있다. 조금은 힘겨워하는 숨소리 때문이다. 아, 늙어서는 이층 집에선 살 수 없겠구나! 가끔 혼자서 하는 생각이다. 엊저녁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잠자리도 늦게서야 들었는데 속이 불편한지 일찍 잠이 깨다. 새벽에 일층에 내려갔다 올라오는 계단, 조금 숨이 차며 힘이 든다. 얼른 난간을 잡으며 이층으로 올라와야 했다.


결혼을 한 30대 초반, 장인어른은 소주를 한 병정도 하셨다. 젊은 시절이니 관심 없이 술잔을 나누었다. 그렇게 세월이 성큼 흘러간 어느 날, 장인어른은 술 세잔이 끝이었다. 깜짝 놀라 생각해 보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사실이다. 소주 한 병이 소주 세 잔으로 변하셨구나. 세월은 어쩔 수 없었음을 알게 했다. 이젠, 나도 일층에서 이층으로 올라오는 것이 힘이 든다는 것일까?


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는다. 원래 술과는 먼 집안에서 태어났다. 명절에도 그리고 연말, 연시에도 술은 없었다. 아버지가 술을 하지 못하셨고, 할아버지도 그러하셨다. 집안엔 술잔도 변변치 않았으며 술의 맛을 알 수가 없었다. 가끔의 생각, 몇 잔정도의 술은 좋지 않을까?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주변 사람들이 술 한잔에 흥얼거리는 소리도 궁금했고, 어떤 기분일까가 더 알고 싶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술과는 멀리할 수 없었다. 술이 없는 모임은 만나기가 힘들었다. 왜 그럴까?


친구들과 어울리고, 이런저런 모임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술이다. 언제나 술이 있는 일상, 술이 없는 모임은 불가능할까?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아직도 궁금하다. 술 없는 모임을 불가능할까?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가끔은 술을 했다. 소주 두어 병은 거뜬했으니 젊음이 막아준 덕택이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음주 후에 불편함을 이겨 낼 수가 없었다. 술의 양도 줄었지만, 의식적으로 술을 멀리하게 된 이유다. 세월이 철들게 해 준 것이다. 나는 술의 양은 어떻게 변했을까?


힘을 다해 마시면 가능하겠지만, 이젠 한 병정도로 만족한다. 술을 마시면 즐거움도 그렇고, 내일의 걱정을 염려해서다. 내일이야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던 젊은 시절이었지만, 이젠 생각이 달라졌다. 음주 후의 후회, 내일은 왜 생각하지 않았을까? 젊음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었지만 세월이 흘러갔다. 세월은 내일을 걱정하게 만들어 주었다. 밤을 새우듯이 마실 수 없고, 간단한 술 몇 잔으로 만족하는 세월이다.


이층으로 올라와 책상에 앉았다. 약간의 호흡을 정리하며 생각이 깊어진다. 엊저녁에 술을 마셔서일까? 이젠 술의 양도 줄었고, 이층으로 올라오는 것도 전과는 다른 기분인데 정말인가? 아침부터 호흡을 정리하며 생각이 깊어진다. 이젠, 운동으로 모든 것을 막아내는 수밖에 없다. 밥은 굶어도 운동은 해야 한다. 오랫동안의 생각을 저버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다. 힘이 들어도, 비가 오나 눈이 와도 움직이는 것만이 최선이다. 술 한잔을 나누고, 오가는 발걸음이 가볍게 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는 듯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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