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 대한 생각, 크로아티아 블레드성)
언젠가, 아프리카 수단에서 성스러운 삶을 살다 고인이 되신 이태석 신부의 삶을 그린 영화 '울지 마 톤즈'를 보고 한없이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누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영화를 보고 느끼면서 생각할 사이도 없이 저절로 눈물 흐르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사람이 보고 느끼는 것을 감성과 이성에 따라서 저절로 표현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똑같은 영화나 사물을 보더라도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따라 받아들이는 차이는 전혀 다를 수가 있을 것이니 어느 것이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리라.
텔레비전이 귀하던 시절, 온 동네 사람들이 멍석 위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감동하고 즐거워하는 시절이 있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드라마 방영 시간이 되면 모든 일을 접어두고 좋은 자리다툼을 벌이던 시절이다.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었기에 감동을 주는 하나의 드라마에 몰입하지만,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도 느끼는 감정이 달라 서로 다툼을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가끔 이루어지는 권투시합을 가슴 졸이며 보면서 하루의 즐거움으로 삼던 시절도 있었지만, 누구는 사람을 때리고 맞는 싸움질을 왜 보느냐는 말을 하기도 한다.
아침 운동을 위해 찾는 체육관에는 러닝머신 별로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어 각자가 본인의 채널을 설정하여 보면서 운동을 하고 있다. 여기에 각자의 취향에 따라 아침부터 격투기를 보는 사람도 있고, 축구를 보는 사람도 있으며 또는 영화를 보는 사람도 있다. 더러는 텔레비전에 관심이 없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운동하면서 하루를 설계해 보기도 하고, 어제의 삶을 음미해 보기도 할 것이니 삶의 방식도 다르다.
보고 싶은 책을 감동적으로 읽고 수많은 상상과 생각을 하면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만들어진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대단한 실망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나름대로의 상상이 무너지고, 가슴속에 있던 것이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표현 방법의 한계가 있었기에 당연한 것이지만, 이러한 과정을 극복해 낸 영화나 드라마가 명화가 되는 것이고, 명 드라마가 되는 것이 아닌가?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은 여러 가지가 있어, 보통 희(喜), 노(怒), 애(哀), 락(樂)이라고 하니, 이것을 어떻게 느끼며 어떻게 표현하느냐 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니 같은 내용을 보면서도 서로 다르게 보고 느끼는 것을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특히,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에게는 스스로 느끼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자유스럽게 주어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 성장하면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우리가 매일 만나게 되는 텔레비전의 모습을 보면 생각이 다르기에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에 전혀 관심이 없어 TV와는 거리가 멀지만, 가끔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 제작자가 느끼는 감정인지 아니면 그러길 바라는 것인지 모르지만, 화면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감정표현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많은 화면에 쓰이는 표현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장면을 보면서도 느끼는 차이가 사람마다 다를 터이고, 더구나 자라나는 아이들은 어떤 현상을 보면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상상력이 성장해 갈 것이다. 그러면 화면에 쓰이는 그 장면은 그렇게 느낌이라는 것인가 아니면 그렇게 느껴야 한다는 것인가?
대가족 시절에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방식으로 삶을 영위해 왔다. 같은 조건에서 같은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왼손으로 밥을 먹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왼손으로 밥을 먹으면 복이 나간다거나 혹은 고집에 세다는 말을 어른들한테서 들은 기억이 난다.그러니 모든 것이 획일적이고 통일된 행동과 생활방식으로 삶이 형성되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왼손으로 글씨를 써도 아무 지장이 없고, 어느 누구도 말을 하지 않는다.
현대사회는 삶의 방식과 추구하는 목적이 모두 다른, 다양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고, 생각하는 방향이 다르며 추구하는 바가 모두 다르다. 텔레비전과는 상관이 별로 없는 삶을 살고 있고, 어떤 지인은 텔레비전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름대로의 삶을 살기도 버거운 시대에 텔레비전에 넋을 놓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 만나는 텔레비전의 화면은 어떤가? 사람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타나는 화면을 장식하는 수많은 표현의 홍수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화면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감정의 표현과 상황을 제시하는 문구들이 너무나 많다. 그렇게 화면에 혼란스러운 표현을 하지 않아도 화면을 즐기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마치 화면에 난 얼룩처럼 제멋대로 나타나는 표현들이 더 혼란스럽지 않은가?
사람들은 그만한 것은 모두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왜 사람이 느끼고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인가? 하지만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된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시청자가 없는 화면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나름대로의 감정을 표현하고 느끼는 자유를 시청자에게 맡기면 훨씬 좋지 않겠는가? 짧은 개인의 소견을 보고 웃음을 머금을 수도 있겠지만,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것이 아닐까?
같은 현상을 보고도 모든 사람은 생각이 다르고 느낌이 다를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느끼는데 따라서는 그렇지 않다고 느낄 수 있으니, 시청자의 몫으로 남김이 훨씬 좋지 않을까? 텔레비전 화면을 채우고 있는 그 많은 표현들이 시청자들의 생각할 수 있는 자유, 자라나는 아이들의 상상력 향상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 일인가를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는 잠깐의 생각이다.